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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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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15. 2022

그리운 스승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이런 저런 생각이

내 속에서 디글디글 일어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중인지라

어제는 자려고 누웠는데

오늘 마감인 원고를 깜빡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나서

또 고민고민..

이 나라 정치를 걱정하는 건 아니니 오해 없길.


새벽에 단톡방 한 군데에서 법정스님 법문 유튭이 올라왔다. 

법정스님, 다른 사람들에게 유명짜했던 그 분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유명한 사람에 대한 불신이랄까..

한 동네에 살던 목사 사모님인 지인이 

어느 날 길상사에 놀러가자 했다. 

목사 사모면서 절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운전이 가능한 나를  꼬드겨 길상사로 가자는 거였다. 

마침 날은 또 얼마나 좋은 가을날이었는지

대원각 시절 가본 적은 있었지만 

오래된 기억이었고 무튼 이쁜 절이었다.


그날 불자도 아닌 내가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왔다.

금요일 오전 봉사였는데 

금요일 오후엔 한 문화대학에 강의를 가던 때였다.

내 삶은 걍 이벤트의 연속이구나 싶은 게

기억 속 나는 그냥 즉흥적으로 일을 만드는 사람이더라는


맑고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를 수식하는 말인데

참으로 매력적인 말이다, 그떄나 지금이나

공용화장실 청소가 해야 할 일

비위가 엄청 엄청 약한 나는 헛구역질이 났다.

눈물까지 쏟을 정도로

봉사를 마치면 바로 점심을 먹고 강의를 가야했는데

한 두 번 점심을 굶었다. 

못한다고 말할까

사려깊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갈등하며


그런데 청소일을 두 시간쯤 하고 나면

손이 덜덜 떨릴만큼 배가 고프고

드디어 나는

비위가 몬가요, 로 바뀌었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는 곧장

씩씩하게 빈 그릇을 내놓았으니

비위가 약해서 못 먹겠어..는 내 관념이 지어낸 하나의 허구였구나

싶었다.


당시 길상사는 부처님오신날에 등값을 매기지 않았다.

법정스님은 아예 등을 달지 않길 원하셨을 텐데

뭐 절마다 사정은 있으니까

이 시스템이 참 맘에 들었다.

법정스님에 대한 불신이 조금씩 걷히고

강원도 오두막에서 산나물이며 옥수수를 차에 잔뜩 싣고 오시는 모습

카랑카랑 날카로운 법문, 

살아있는 권력의 4대강 사업을 서슴지 않고 비판하시는 모습에

불신을 완전히 걷어냈다.


조계종의 경전 한글화 훨씬 전부터

예불에 필요한 모든 의례를 한글화하셨던 분

그래서 불교를 처음 접하는 나조차

쉬운 우리말이 들려주는 천수경이며 반야심경이 그냥 이해되었다.


사찰에도 도서관이 필요하다며

지장전을 새로 지으면서 

한 층을 아예 도서관 공간으로 정해놓으셨던 분

당신이 정기구독하던 녹색평론을 꾸준히 실어나르셨고

그곳에서 나는 처음 녹색평론을 접했다..


어느 해 부처님오신날 등접수를 받는데

행색이 초라한 노인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낮은 소리로 묻는다, 등값 얼마냐고

그런 것 없어요.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

그 분 얼굴이 환해지더니 

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주섬주섬 꺼내놓으셨다.

식구들 이름이 깨알같이 많았다.


또 한번은 초등학생 어린이가 와서는

동전을 와르르 쏟았다.

십원 백원..ㅎㅎㅎ

여기 등 값 맘대로 내도 되죠?

아주 당당히!

그리고는 가족들 이름을 불러줬다.


그밖에도 몇몇 아름답고 재미난 기억들이 있다.

소문이 나면서 돈에 용기가 생긴 사람들이 찾아오던 그 시절

부자 신도들도 많았지만 문턱이 낮은 그 절로 사람들은 그렇게들 모여들었던 때가 있었다.


법정스님의 법문을 앞부분만 듣다가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들던 생각이 조금 정돈되었다.


우리는 모두 난파선에 올라탄 사람들

가진 거라고는 널빤지 한 개가 전부

그러니 서로 도우며 힘을 보태며 살아가야할

운명공동체라는 글을

페북 담에서 읽고는

아침에 듣던 법정스님 법문과 맥이 닿아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오늘 마감, 담주 마감 그 담주 또 마감...

마감 스트레스에

너덜거리던 마음 추스리며

이렇게 주절주절 

머리는 약간 띵~하지만 마음은 개운한^^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을 평생 해 본 적 없는 내가

그림을 날마다 그리려니

바쁜 날은 고역이다.. 관둘까 싶은 생각이 10일 전후로 아주 간절했다가. 시간이 흐르니

걸어온 길이 아까워 내처 걷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간단하고 쉬운 거 뭐 없나 찾다가 숲을 또 그렸다.

숲을 그릴 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한 건

그림이 간단해서일까, 내가 숲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둘 다 일 것 같다.

타이가 숲인 듯도 하고!


202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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