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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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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y 02. 2022

모든 생명이 행복하길


*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우리 집에는 늘 개가 있었다

집을 지키는 용도로 기르기 시작한 개였지만 늘 있었다

많게는 네 마리까지 길렀던 기억이 있다


어느 해 개가 새끼를 낳을 때면 아빠가 뒷바라지를 다 하셨고

꼬물거리며 눈도 못 뜬 강아지가 우리집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대지 못했다

강아지에게 내 손가락이 닿을 때의 물컹거림이 견딜 수가 없었던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개가 혀로 핥는 그 느낌이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고 이따금 집엘 가면 대문 저 멀리서부터 우리 집 개가 컹컹 짖는다

내 발자국을 어쩜 그리 정확히 아는지

대문이 열리고 들어서면 달려들듯이 반갑게 꼬리치며 짖었다

그런 개를 단 한번도 손으로 쓰다듬어주질 못했다

대신 발로 쓰다듬어줬다

손을 댈 수 없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니 나도 그 마음에 뭔가 답례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던 세레모니가 고작 발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싫어하는 감촉 때문에, 그 싫어하는 마음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했던 내 행동을 지금 여기서 참회한다...


충직한 동물로 개를 묘사하곤 한다

여전히 개를 잘 모른다

오늘 김포시에 있는 한 중학교에 강의를 가면서

시간을 착각해서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런, 세상에

시간을 착각해서 늦을 것만 같아

집에서 전철역을 자전거로 전속력을 다해 달려서는

전철역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땀은 또 얼마나 흘렸는지..

그런데 전철을 타고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을 착각했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라 또 병이 도지는구나.. 그래그래 난 정상인 게야

이러고 갑자기 여유로워져서는

일찍 도착한 김에 한 카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


개를 그리고 싶었다, 이미 어제 이 생각을 했었다

어찌보면 요새는 그냥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는 듯한..

그렇다고 무슨 대작을 그리는 것도 아니지만

삶에 큰 에너지를 준다, 그림을 그린다는 이 취미가!


개 털을 직접 만져보지 못했지만

이제.털을 그려봤다

한발 가까이 간 거겠지?


**

강의 마치고나니 6시가 훌쩍 넘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하교 시간도 훌쩍 넘겨 강의를 들으러 모였는데

자발성은 얼마나 사람을 진지하게 만드는지

집중해서 너무나 집중해서 잘 들어줬고

질문도 좋았고

싸인하러 온 청소년들은 심져 책 표지에 싸인을 해달라고...ㅎㅎㅎ


발랄한 모습이 참 좋았다

그 학교 출신 고등학교 1학년이 한 명 같이 들었다

끝나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육과정에 기후, 환경 교육이 스며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정책제안도 하려 한다고

시민들을 동지로 삼으라 조언했다

청소년은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적 시민의 일원이라고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 살아야할 주체라고

그러니 그 미래를 날려먹지 못하다록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함께 행동하자고


***

집 오면서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너무나 슬픈 사진을 한 장 봤다

어느 둠벙 한 가운데 그물이 깔린 위로

오리 한 마리 다리가 그물에 얽히고 설켜

그 그물을 끊으려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있는 사체였다...

얼마나 살려 발버둥 쳤으면 그 질긴 그물이 절반은 끊어져있었다......ㅜㅜㅜ


모두가 유한한 생명이지만

고통스럽게 갔을 오리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집 오는 내내 마음이 참 불편했다...

오리를 위해 기도했다


집에 와서 어둠이 짙게 내린 창밖에 대고

동고비 박새 소쩍새 까치 까마귀 멧비둘기 오목눈이 붉은머리오목눈이 참새

물까치 노랑턱멧새 그리고 내가 미처 이름 불러주지 못한 많은 숲 속 생명들에게

잘 자라고 밤에 활동하는 소쩍새를 비롯한 새들은 밤새 안녕하자고

인사나눴다...


모든 생명이 다 행복할 수 있었으면


20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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