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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샘 wisefullmoon Aug 04. 2021

면접 중에 울음이 #01편

면접 시크릿

2003년 1월 첫회사 입사는 나에게 큰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지사의 규모는 아주 작았지만 토익 870점에 아무런 자격증도 없던 내가 입사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어찌나 간절하게 입사를 원했던지, 지원서를 넣기 전부터 나는 그 회사 앞까지 수차례 다녀오곤 했다. 지원서 제출일 기한까지도 여러 번 그 회사를 찾아가서 주위도 둘러보고 해당 층에도 올라가서 그곳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반드시 이곳에 입사를 할 것이라고 계속 다짐했다.


사실 급여는 월 200만 원만 돼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글로벌 기업이기에, 어찌 됐건 외국계 회사의 재경팀에서 첫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매일 기도를 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합격한다. 나는 합격한다. 나는 합격한다. 경쟁자가 누구든 최종 합격자는 나다."


이렇게 하루 종일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이력서를 제출했고, 서류 통 연락이 왔다. 어찌나 기뻤던지, 나는 그 회사 앞에 가서 지금의 신랑과 데이트도 할 겸 면접날이 오기 전까지 계속 그 주위를 맴돌았다(지금 보니 정말 간절했나 보다).


1) 면접 1차: 실무진 면접

무난한 일반적인 질문들이 오고 갔다.

자기소개를 영어로 해보세요.

건물 관리소에서 임대료 관리해본 경험을 이야기해주세요.

성격의 장단점을 이야기해주세요.

지원동기를 말해주세요.

커리어 골이 뭐죠? 등의 질문을 받았고, 꾸밈이나 거짓 없이 진심을 다해 성의 것 답을 했고, 1차 면접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영어 자기소개는 문장을 일일이 써서 달달 외웠었다. 하지만 그 평소에 내가 썼던 표현들이 아니기에 면접장에서는 50%도 제대로 말을 못 했다. 평소 익숙한 문장도 아니고, 나의 진짜 문장이 아니었기에, 긴장한 상태에서 그냥 다 날아가버리고 버벅거리기만 했다.


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가능하면 멋지고 화려한 문장보다는 자기를 쉽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신에게 익숙한 자신의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엄청 버벅거렸지만 일단 열심히 입을 열어 쉬운 표현으로 나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부끄럽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면접장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2) 면접 2차: 상사 면접

주로 성격의 장단점과 업무 관련 경험(건물 관리소에서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그리고 여러 사례를 던지며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상황 대응 질문을 많이 했다. 즉, 상사와의 면접은 책임감과 성실함을 주로 테스트했다.


3) 면접 3차(최종면접): 지사장 면접

시작부터 영어로 질문을 했다. 대부분의 외국계 회사들 면접 시 한국인이 면접관이라도 영어로 면접을 본다. 한국어로 질문할 때도 있고 갑자기 영어로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지금부터 영어 질문을 할게요.'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한국어로 대화하던 중에 영어로 물어보면 면접자도 그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영어로 답을 해야 한다.


3차 면접에서는 주로 커리어 골에 관련된 질문을 했고,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사실 다른 지원자들의 토익점수는 900점이 넘거나 만점이라고 하며, 내가 가장 점수가 낮은 지원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이상하게 "그게 뭐?"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입사 후에도 계속 영어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에 실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히려 지금 부족하기에 다른 경쟁자들보다 입사 후 더 많은 노력으로 더 큰 발전을 할 것이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즉, "나의 포텐셜을 봐주세요!"를 강하게 외쳤다.


3차까지의 면접이 끝난 후 정말 하루하루 속을 애태우며 지냈다. "제발 이 자리를 저에게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했다.


그렇게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그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회사로 잠깐 와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당시 나는 수업이 막 끝난 상태여서, 갈색 떡볶이 코트에 청바지, 운동화, 면티에 백팩의 차림이었다. 회사에서는 내 상태를 이미 알았는지, 복장은 상관없으니 바로 와달라고 했다. 최종 합격도 아니고. 그저 뭔가를 더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친 듯이 바로 달려갔다. 학교가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 2시간 반이 걸려 회사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뛰어 간 덕에 머릿속에서부터 목덜미까지 땀이 물 흐르듯이 흘러내렸다. 머리는 바람에 날려서 엉망이었고, 얼굴은 화장은커녕 열이 올라 시뻘겠다. 그 상태로 면접관들을 마주했고, 또다시 면접 아닌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의 상사가 될 사람과,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줄 실무자가 또다시 면접을 시작했다. 나를 급하게 부른 이유는 최종 합격자 2명 중 내가 한 명인데, 또 다른 지원자는 AICPA(미국 공인회계사)에 토익 만점, 유학파라고 하며, 지사장과 회계팀장은 그 사람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무자인 자신은 내가 더 적임 자라는 생각이 들어 의견 충돌이 발생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정아영'이란 사람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식은땀이 더 흘렀다. 이 자리가 내 목숨을 결정하는 자리구나! 숨이 더 막혀왔고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되고 얼어버린 기분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초 긴장' 상태인 것일까? 머릿속에서는 계속 '내 운명이 지금 이 순간 달려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 그럼 질문을 하겠습니다."라고 회계팀장이 입을 열고 질문을 했다.


회계팀장: "갭"이 뭐죠? "갭"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나: "...............", '차... 이'... 요.


순간, 면접장에는 무서운 정적이 흘렀고, 회계팀장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붉어지고, 나를 뽑으려는 실무담당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에서 말머리 풍선을 보았다.


회계팀장: "아니, GAAP(갭: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도 몰라? GAAP도 모르는 애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거야?"

실무담당자: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회계팀장이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말투로,

"GAAP이요. GAP(차이) 말고 GAAP(Generally acccepted accounting principle,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 "


옆에서 실무담당자는 서둘러 나를 변호해줬다.

"하하하.. 이 분이 너무 긴장하셨나 봐요. 하하하..."


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그동안의 긴장과 설움(?) 같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너는 이제 끝이구나'라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슬픔이 마냥 올라왔다. 너무 슬퍼서 냉동실 얼음 만한 눈물이 그냥 뚝뚝 흘러내렸다.


두 면접관은 눈이 똥그래지며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일이죠?!!"라고 당황해하며 물었다. 나는 울음이 멈추지 않아 계속 울었다. 울다 보니 부끄러워서(쪽이 팔려서) 더 울었다.

          

면접장에서 운 24살 어른이 (이미지 출처: 구글)

당시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급하게 달려온 탓에 머리는 땀으로 범벅, 얼굴도 시뻘겋게 달아올라있고, 온 얼굴은 눈물범벅, 옷 차림새는 칙칙한 갈색 떡볶이 코트에 밑단이 너덜너덜 다 해진 청바지, 그리고 더러운 운동화... 내가 본 면접 중 최악의 장면으로 꼽힌다.


그렇게 나의 최종면접은 끝이 났고 집에 오는 길에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마음으로 전철 안에서 계속 울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바보다! 넌 바보다!


그날은 밤새 면접 장면이 떠올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그 회사다! 그 회사!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떡하지........."

덜컥, 전화를 받는 것이 두려워졌다.


"수고하셨어요." or "축하해요."

어느 쪽일까?


예상되는 결과는 뻔했으나, '0.00000000001%의 확률로 혹시라도 뽑히지 않았을까?'라는 좁쌀만 한 희망을 부여잡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면접 중에 울음이 #0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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