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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Apr 01. 2024

충동적 퇴사에 대한 회고

3주만 더 다니면 퇴직금이 나오는데 그만둔 이유

지난 3월 초, 근속 1년을 3주 남기고 충동적인 퇴사를 했다. 작년 12월에도 퇴사 면담을 요청했으니 짧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동적 퇴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이번 면담을 요청할 때 사실 나와 대표님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작게나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청 메시지를 보내고, 대표님이 퇴사하시는 거냐고 물었을 때, 맞다고 해버렸다.


회사의 상황이 특수하여 인수인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퇴사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근무를 종료하는 날에 1지망 회사의 신입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지원을 결심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항은 성장계획이었다. 이 문항을 쓰면서 내가 그동안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퇴사사유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면접에서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어떻게든 지원서를 제출하기는 했으나, 분명한 건 내가 왜 퇴사했는지 짚고 넘어가야 커리어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 퇴사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는 사실 이어져있었다. 번아웃이 왔기 때문에 퇴사했고, 번아웃은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즉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하나로 보고 일단 왜 내가 성장하지 못했는지를 고찰했다. (이 과정에서 유튜브 퇴사한이형을 시청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퇴사사유에는 근본적인 이유와 결정적 이유, 즉 트리거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치지 않고 팀원과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는데, 그럴 마음과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왜 마음과 체력이 동나버렸을까? 이유는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의 사정상, 나는 Product Designer이지만 노코드툴을 학습해야 했었다. 그러나 배우는 속도가 느렸고, 대표님과 합의한 학습 기간을 늘려야 했는데 이를 설득할 용기가 없었다. 전문성은 툴이 손에 익고 나서 기획과 디자인을 고민하는 시간에 생긴다. 그러나 툴이 익숙해질 시간조차 부족했다.


대표를 설득할 용기가 없었던 이유는, 이미 내가 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이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입사 후 반년 간의 업무 프로세스는 대표의 의견이 주되게 반영된 기획안을 바탕으로, 내가 세부적인 정책을 작성하고 UX/UI 디자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텍스트로 고민의 흐름을 전달하는데 미숙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표님은 바쁘시니까...' 하며 의논하기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쁘시기도 했다.) 이로 인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잦았고, 대표에게 이렇게 하는 건 월권이라는 피드백도 받았다. 이는 끝까지 고치지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프로젝트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의 R&R은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서로 맞춰나가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퇴사를 결정한 직후에는 내가 왜 지쳤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막연히 큰 규모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회고를 작성하면서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목표)는 몸과 마음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2주 정도는 기초체력을 만들면서,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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