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다에 강하게 빛을 주는 시간. 눈 부신 윤슬이 어두워져 가는 바다에 일렁인다.
반짝이는 빛이 파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한 번 더 달라진다.
파도가 몰려와 부서지는 소리와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
저녁을 기다리는 바다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동해에서 해지는 시간, 뜻밖에 윤슬을 만나 반가웠던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직 코가 살짝 시린 봄 바다이지만 이 순간이
내가 볼 마지막 바다인 것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아름답게 찍힌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서 그린 그림은 색을 올리면 올릴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겹겹이 쌓이는 레이어들.
하지만 색을 올릴수록 점점 더 사진과 비슷하지 않은 거 같았다.
색을 지우고 또 색을 올리고의 반복이었다.
내 손은 그림에 있었지만 눈은 사진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리 수정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눈에는 계속해도 미완성이었던 그림.
우연히 이 미완성 그림을 몇 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좋은 반응들에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아직 못 올린 색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완성된 그림을 보여줬다.
더 놀랍게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좋아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왜 이 그림을 좋아하는지 의아했다.
아직도 내 눈엔 못 올린 색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림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변명하듯이
"사진이 더 아름답게 찍혔는데 제 그림은 다 못 담았어요."라고도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좋은 반응이 나는 의문 투성이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있던 사진을 지우려고 노력하며
내 그림에 시선을 맞추고 집중해 봤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드러운 물결이 보였다.
윤슬의 빛나는 흐름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색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꽤 잘 어울렸다.
내 시선이 사진에 머물러 있을 때는 내 그림은 미완성이었는데,
시선을 바꿔 내 그림에만 머물게 되니 꽤 그럴듯한 완성작 같아 보였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일들에서 시선을 더 좋은 곳에 두고
내 일은 작게만 보았을까.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보고 있는 시선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보고 있는 것만 맞다 생각하며 지내진 않았을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날로 돌아간다.
코끝을 시리게 했던 아직은 차가웠던 봄 바닷바람,
물결에 따라 일렁이던 윤슬,
그런 윤슬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 어두운 물결.
그리고 나의 아집으로 똘똘 뭉쳤던 시선.
그림은 경직되어 있던 나의 삶을 조금은
부드러운 물결로 만들어 준다.
내가 보던 시선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도
그대로의 멋으로 그림은 소화해 낸다.
이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떤 느낌으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있을까?
흘려보낸 이 그림이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는 시선을 바꿔준 그림이다.
그래서 조급함이 들고, 더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못 그리는 내 실력만 보일 때
다시 시선을 나의 미완성된 윤슬들에게로 돌린다.
나에게 미완성이란 말을 듣지만 마치 그림은
이미 오래전에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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