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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Jul 23. 2019

3. 지면낭비

아주 긴 르포 기사의 시작

내가 기자질을 하면서 제일 많이 쓴 단어 중 하나가 '지면낭비'다. 어느 날 내 기사가 너무 거지같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우와 오늘 기사는 지면낭비네. 나무에게 미안해서 아마존에 가서 사과하고 와야겠어"라고 말하곤 한다.


책을 쓰면서 남편에게 매일 물었다. "오빠, 이거 좀 지면낭비가 될 거 같지 않아?"


그냥 내가 임신해서 아프고, 애 낳느라 고생했고, 애 키우는데 힘들어 죽겠다는 내용이 왜 책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서점에 이 책이 올려져 있으면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게 왜 책이야? 사실 그건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출판계는 에세이 붐이다.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나는 서점에서 어떤 책을 펼쳐보다 '아니 이 책은 너무 자기만족을 위한 출판 아니야?'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이 책이 그런 책이 되면 어쩌지?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절망했다. 사람들은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까?


이미 브런치에 쓴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한 1부 '인생을 계획한대로 살 수 있다는 착가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쓰는 데는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써 놓은 내용이니까. 그런데 거기까지 쓰고 집필을 잠시 중단했다. '왜 써야 되는데'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집 서재에 꽂혀 있는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힐빌리의 노래>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모두 개인의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힐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울림을 주는 내용을 담는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실리콘밸리의 젊은 사업가인 저자는 가난했던 과거를 회고하며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모순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21년간 외과 중환자실에서 일한 김현아 작가는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간호사로 일한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려가는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의사만큼이나 어려운 일을 하지만 그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두 권의 책을 읽어보고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왜 써야 하는지'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임신은 아프고 육아는 힘들다. 그런데 아이는 사랑스럽다. 이 모순된 두 문장이 어떻게 육아 현장에서 공존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아이는 축복이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다들 알아야 한다. 애를 낳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출판사에게 말했다.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긴 르포르타주를 써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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