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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Jul 25. 2019

4. 매일매일이 에피소드

일상이 취재가 됐다

"70개 에피소드를 쓰라고요?"


필름출판사는 작가와의 미팅이 자주 있다. 작가와 소통을 자주 해서 책에 반영하겠다는 건데 아이 키우느라 시간을 내는 게 어려울까봐 시간을 거의 전적으로 내게 맞춰주는 편집자와 디자이너 등 스탭들의 배려에 늘 감사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 그들은 '얄짤없었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은 고작 19개 에피소드. 이게 무슨 책이 되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팅에서 출판사는 최소 70개 이상의 에피소드를 요구했다. 스토리텔링만큼은 어디가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없고 애 낳고 키우는 얘기로 70개의 판을 벌릴 수가 있는건지 의문이었다.


그러자 출판사가 내게 아이디어를 줬다.

"작가님, 임신 32주에 에쵸티 콘서트 간 얘기를 써 보면 어떨까요?"


이보시오, 편집자 양반. 내가 브런치에 매일 매일 매일 아프다고 투덜댔는데 만삭에 콘서트 간 이야기를 쓰면 되겠습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집에 와서 주저리 주저리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꽤 쓸만한 이야기였다.


임신기간 중 태교는 전혀 하지 못했다. 평소 즐겨듣던 클래식도 임신 중엔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회사만 내리 다녔다. 그저 임신 기간을 견디고 또 견딜 뿐이었다. '엄마가 즐거운 게 태교'라는 남편의 말이 오히려 진정한 태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이 됐다. 엄마가 즐거운 게 태교라면 지금의 나에겐 동화책도, 클래식도 태교가 아나ㅣ다. 출산 3주를 남겨두고 임신 기간 내내 아픈 몸으로 우울하기만 하던 내가 가장 활기차고 신난 날, 오빠들의 콘서트가 나에겐 최고의 태교였다.
-하필 내게 쌍둥이가 생겼다, p.114-


하지만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한 이후로는 거의 매일 일상을 기록해야했다. 가끔 '오 이런 이야기도 쓰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기록해두지 않으면 얼마 후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던데 진짜다. 5분 전 일도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매일 스마트폰 앱에 글감이 될 만한 에피소드를 기록해 뒀는데 좀 지나니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트루먼쇼(영화)도 아니고 나는 아이를 들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인가, 글을 쓰기 위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인가... 주객이 전도돼 가끔은 그럴싸한 에피소드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죄책감을 느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지만 신이 내 편인지, 불행 중 다행인지 쓸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남편과 나는부부싸움을 한 적이 거의 없는데 아이를 낳고는 그렇게 매일 싸웠다. 그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오늘 일은 책으로 고발하리라. 그리고 아이들이 백일이 되기 전에 입원을 하질 않나, 그리고 입원 기간 중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들이 들으면 "뭐야, 갑자기"라며 깜짝 놀랄 만한 '훅 들어오는 에피소드'가 지난 8개월간 파도처럼 계속 들이닥쳤다.


 하지만 파도는 잔잔했다. 나는 계속 일상을 살아야 했고 그래서 글이 이어질 수 있었다. 육아에 대한 르포르타주 기사를 쓰겠다는 거창한 계획까진 아니더라도 어쨌든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책이 나와도 되겠다' 싶을 정도의 글감도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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