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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Dec 09. 2019

1. 아이에게 반쪽 짜리 사랑을 준다

애엄마에게 아무 말이나 하지 마세요

"사실 혼자였으면 오롯이 부모 사랑을 받았을 아이들인데..."


벌써 세 번째다. 어린이집 선생님, 면접을 보러 온 베이비시터, 그리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까지. 사람들은 나의 쌍둥이를 안쓰러워한다. 혼자였으면 오롯이 사랑받았을 아이들인데 '하필이면 쌍둥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한다며 나보다 더 속상해한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라면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했을 테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정말 속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한 명일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어느 정도로 사랑을 쏟아부을까. 아이를 한 명만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내가 알 턱이 없다. 나의 첫 육아는 애초에 둘로 시작했으니. 

하지만 아이를 한 명씩 두 번, 세 번 낳은 부모들이  첫째, 둘째가 혹여 소외감을 느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종종 보았다. 한 육아 전문가는 TV프로그램에서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배우자가 침대에서 다른 이성과 있는 걸 본 것과 같은 수준의 충격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쌍둥이에게도 이런 가설이 적용되는 걸까. 쌍둥이는 애초에 부모가 나만의 우주였던 적이 없다. 쌍둥이의 우주는 처음부터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이지 독차지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상실감도 단태아 아이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정도의 충격일까?


아무리 전문 서적을 뒤져봐도 쌍둥이의 육아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산술적이고 기계적으로 말할 뿐이다. "혼자였으면 오롯이 부모 사랑을 독차지했을 아이들인데... 더 많이 안아주세요"라고.  


그런데 나와 남편은 아이들이 32개월이 되어가는 요즘 의문이 생긴다. 대체 더 많이 얼마나 안아줘야 하는 걸까. 우리는 충분히 시간이 나는 족족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는데, 단태아 아이들이 부모에게 안기는 시간의 곱절로 안아줘야만 객관적으로 단태아만큼 사랑받는 아이가 되는 걸까? 만약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두 배, 세 배로 안아줄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주어진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다. 그래서 육아 외에 밀린 일을 하려면 한 시간을 더 안아주기에도 빠듯하다.  


이렇게 발끈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다. 어디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의 '나'는 나약한 '엄마'가 돼 버렸다. 나마저도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이 너무 부족하진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은 혼자만 누릴 수 있는 부모라는 우주를 왜 이 아이들은 공유해야 하는 걸까 하는 안타까움이 없진 않다. 


나는 정말 아이들에게 반쪽짜리 사랑을 주고 있는 걸까?  근데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 아닐까. 내가 일부러 쌍둥이를 만들어 임신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많이 사랑하는데, 그 마음을 수치화 한다면 나는 늘 뒤처진 부모가 되는 걸까? 


#쌍둥이 #쌍둥이 육아 #하필 내게 쌍둥이가 생겼다 #룰루랄라 #육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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