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출근 준비(3)
그간 우리의 선택지는 독박육아와 출퇴근 시터 뿐이었다. 시터를 쓰는 일은 대한민국 모든 가정에서 그렇겠지만 그 자체로 큰 부담이다. 우리가 고연봉 전문직 부부도 아니고, 한 사람의 월급을 오롯이 다른 이의 월급으로 갖다 바쳐야 하는 결심은 쉽지 않다. 남과 함께 생활하는 게 불편하다거나 남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게 마음 아프다거나 하는 등의 고민은 사실 돈 문제 앞에서 죄다 사치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힘이 달렸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옷을 스스로 입겠다고 우기면서 팔 나오는 곳에 머리를 넣고 허우적거리지 않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그냥 누워 있는 아기의 입에 분유 젖병만 꽂아 주면 되던 그때가 호시절이었다는 걸 돌 즈음 알게 됐다. 혼자서 두 명의 아기에게 동시에 분유를 먹이는 '묘기'를 하며 깔깔거리던 게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이제는 손이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어느 엄마나 여러 명의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밭도 매고 농사도 지었다고 하질 않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육체와 정신은 두 배, 세 배 이상 지쳐갔다.
지친 건 나뿐이 아니다. 남편 역시 매일 밤 지친 상태였다. 남편은 룰루랄라가 태어난 이후 저녁 개인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다. 일 때문에 바쁜 날이 아니면 친구를 만나거나 거래처와 저녁 약속을 잡는 일이 한 달에 기껏해야 한 번 정도였다. 워낙에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술 마시고 흥청망청 노는 것만이 지상 최대의 행복인 '나'는 안다. 그건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을 인정사정 없이 볶았다. 한 달에 한두 번 늦게 오는 것조차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가혹하게 굴었다. 출퇴근 시터가 8시에 퇴근하는데 남편이 그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거나, 혹은 그 시간이 임박해 돌아온다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출퇴근 시터는 8시 퇴근 전 할 일이 정해져 있다. 6시께 나와 함께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킨다. 한 아이를 씻기는 동안 다른 아이를 돌보는 일을 다른 한 사람이 해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아이를 모두 목욕탕에 넣고 함께 씻기면 수월할 텐데 애석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날 때부터 체구가 작아 목욕탕에서 자꾸 미끄러져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저녁 마지막 우유를 주고 울고 불고 싫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붙잡고 양치를 시키고 나면 8시가 된다. 하루 중 가장 전쟁 같은 시간이다. 남편이 그전에 오면 나는 최소한 양치질 정도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방에 들어가 잠시라도 누워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차가 막히는 날이면 그마저 늦어지곤 했다.
남편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 서둘러 달려오면서 가슴을 졸였다. 퇴근하면 아내의 화난 얼굴과 난동을 피우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우리는 몹쓸 표정으로 거실에 앉았다. 두어 시간은 대화 조차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배달음식을 시키고 다른 한 사람은 리모컨을 돌려 오늘 밤 볼 예능프로그램을 찾는다. 상사 때문에 지친 프로젝트 팀처럼 자연스럽게 치킨이 오면 맥주를 마시면서 TV를 보고 11시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아이를 재우는 '당번'은 아이들 방으로, 당번이 아닌 사람은 해방의 안방으로.
남편은 내가 새로 온 시터를 어찌나 마음에 들어했느지 잘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화풀이하고 우울해하는 일이 부쩍 줄었으니까. 그런데 그 시터가 잠적해버렸다. 이건 남편에게도 비상이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 한 번 입주 베이비시터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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