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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Apr 06. 2020

4. 우리는 언제 시터가 필요한가

"이런 시국에 무슨 입주 시터를 들여?"


베이비시터를 주 5일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입주형으로 찾아봐야겠다는 나의 말에 친정 엄마가 펄쩍 뛰며 말했다. 이런 시국. 그렇다. 지금은 2020년 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시국'이다.  


"모르는 사람 함부로 집에 들이는 건 좀 그렇지 않니"


항상 아이 돌보는 일에서는 전적으로 내 의견을 들어주시던 시부모님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셨다. 전염병이 도는 상황도 그렇지만 검증되지 않은 타인과 잠까지 함께 자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였다. 


자신이 없어졌다. 원래 있던 시터도 혹시나 감염 우려가 있어 집에 오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새로운 사람을 들인다니, 내가 생각해도 아주 좋은 판단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불편한 걸 참지 못하는 내 성향상 모르는 이와 집을 공유하는 게 가능이나 한걸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래서, 대안이 있나? 남편과 나는 부모님의 의견에 대해 합리적으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우선 1. 출근이 코 앞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영역은 출근 전 아침, 퇴근 전 저녁 시간이다. 출근을 시작하면 나는 집에서 아침 7시 30분께는 출발해야 한다.  남편은 8시 30분에는 나가야 한다. 아이들은 7시 30분쯤 아침을 먹는데 지금까지는 남편과 함께 먹였지만 복직을 하고 나면 이 일을 남편 혼자 해야 한다. 더 일찍 먹여도 되지만 그러면 아이들이 막 잠에서 깨어나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밥을 거의 다 남길 것이다. 


아침을 먹이는 것만 문제는 아니었다.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 등원을 남편 혼자 시켜야 하는데 동네 어린이집에 물어보니 가장 빠른 등원 시간이 8시 30분쯤이었다. 이렇게 되면 아침에 남편 혼자 아이들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등원까지 시켜야 한다. 


어느 정도 한정된 기간이라면 '나도 했는데 너는 왜 못하니'라며 강행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기간 내내 이 일을 남편 혼자 해야 한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철이 들어 제 스스로 옷을 입고 밥을 먹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걸어서 가게 되는 날까지 말이다. 짧으면 1년일 수 있지만 길면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한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날은 어떤가. 급하게 양가 부모님 중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 둘 중 누군가는 또 회사 일을 뒤로 미뤄야 한다. 두 사람이 모두 야근을 하게 되면 어쩌지, 차가 막혀 둘 다 어린이집이 끝나는 저녁 7시까지도 집에 도착하지 못하는 날은 어찌해야 하나.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 키우는 일을 부부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해결하는 게 가능이나 한걸까. 부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회사 일을 최소화 해야 했고, 복직을 앞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최대치'로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덜 열심히하겠다고 결심해야 하나. 


이쯤 되면 누군가는 '얼마나 성공하려고'라며 비아냥 거릴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누가 와서 육아를 도와주더라도 어차피 부모는 일정 부분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 근무 시간을 오롯이 일에 집중하는 건 앞으로 계속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파 시터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후 출근했다면 나는 오전 시간을 온통 전화기만 바라보며 보내게 될 것이다. 어디가 아픈 건지, 무슨 일인지 걱정하면서 말이다.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거나 베이비시터가 있다고 해서 부모인 나와 남편이 매일 10시, 11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다만 꼭 6시에 퇴근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어린이집 하원을 시켜야만 하는 의무에서 다소 벗어날 뿐이다. 가끔은 좀 더 마음 편하게 8시, 9시께 퇴근하는 게 가능해질 뿐이다. 대단한 성공을 하기 위해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게 아니다. 그저 나를 엄마 외에 다른 존재로 살게 하는 생활 자체를 지속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남'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2.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까. 


사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우리의 이런 생각에 충분히 동의했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내가 매일 아침마다 너희 집에 와서 애들을 봐주면 되잖아'라고 먼저 제안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일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나 많아 육아만 하는 건 나를 끝없는 우울감으로 몰아간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허망할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아는데 그건 내가 엄마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은퇴 후 아침에 눈 뜨면 갈 곳이 없다는 사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할 일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엄마가 아침 출근 시간에 아이들을 봐주겠다는 제안은 꽤 솔깃했다. 그리고 오후 시간에 새로운 출퇴근 시터를 찾아 부탁하고 아이들이 아프거나 비상사태가 있을 때는 시부모님께 부탁드리면 된다.  시부모님께서도 입주 시터를 쓰는 것보다는 본인들이 와서 도와주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을 내셨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고민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부모님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손주 보러 가야 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부모님도 서운하고 나도 마음이 안 좋을 것이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부모님 건강보다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회사에 휴가를 내느라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양육은 온통 비상상황의 연속인데, 여기에 미취학 어린아이를 돌보는 양육뿐 아니라 아픈 곳이 늘어나고 신체가 급격히 변화하는 노년의 성인을 보살피는 일까지 더하는 건 오히려 부담이다. 양가 부모님이 아직 정정하시지만 앞으로는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께 "시터가 집에 있어도 부모님 도움이 필요한 날은 꽤 많을 것이다, 그런 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달라"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3. 시터와 동거하자 


우리의 결론은 다시 베이비시터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고수한 출퇴근 베이비시터를 다시 찾을 것인가. 남편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마음은 입주 베이비 시터로 이미 굳어졌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침, 저녁 시간에 깔끔하고 여유 있게 도움을 받자는 게 첫 번째 이유고, 교포 베이비시터를 입주로 들일 경우에는 출퇴근 한국인 베이비시터와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같은 돈이면 방 한 칸을 내드리고 '큰 도움'을 받자는 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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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painfulpr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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