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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Apr 28. 2020

5. 교포 시터와 한국인 시터

때는 3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에 달하고 있었다. 확진자는 수백 명에 달했고, 바이러스는 2021년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부부는 정말 깊이 고민했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돈이다. 쌍둥이를 돌봐주는 한국인 시터의 경우 3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조선족 교포도 250만 원 안팎이다. 한 사람의 월급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월급으로 줘야 하는 수준이다. 내가 만약 더욱 고액연봉자였다면 이런 고민이 덜할까. 아니다.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어도 큰 돈인건 사실이다. 시터 월급이 250만 원이라면 1년 연봉이 3000만원에 달하는데, 3000만원이면 국산차를 사려다 수입차를 살 수 있는 수준의 돈이니까. 이 돈을 모조리 남에게 줘버려야 한다니. 아까웠다. 



하지만 돈보다 큰 고민은 시터의 '국적'이었다. 


쌍둥이라서 더 그렇긴 하지만 한국인 시터와 교포 시터의 월급은 입주의 경우 50만 원이 넘게 차이 난다. 임금 차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언어가 한국 국적의 시터만 못할 수 있고, 그게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부모에 따라서는 기꺼이 5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려 한 달에 50만 원 이상의 돈을 더 줘야 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면접을 볼 때 한국말을 아예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당연히 배제되겠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일 역량이 더 높진 않을 것이다. 


한국인 시터들의 경우 간혹 아이돌봄과 관련한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분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불러 집에서 몇 차례 아이들을 함께 보육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경험 상 보육에는 자격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 돌봄에 필요한 건 그저 체력과 정성, 그리고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스킬은 현장에 적용할 수도 있지만 적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아이의 성향이 결정하는 일이다. 배운 게 아무리 박사급이어도 아이의 성향이 그 지식에 맞지 않다면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그런 자격증 때문에 임금을 올려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조선족에 대한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해서 한참 고민했다. 


교포 시터와 한국인 시터의 비용을 결정하는 건 그저 국적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언어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교포 시터를 채용할 수 없겠지만 같은 조건에서 국적만 다르고 언어 문제가 없다면 1년에 6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없다는 게 나와 남편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 국적에 어떤 것들이 담겨 있는걸까. 


지인들이 교포 시터가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도망가버렸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속 괴담이다. 요즘은 조선족 시터로 인해 발생했다고 전해지는 각종 사건(납치 등)만큼이나 한국인 시터로 인한 사건(유아 폭행 등)이 적지 않다.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됨됨이의 문제 아닐까. 


코로나19 때문에 교포 시터는 위험하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나 역시 우려하던 바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코로나가 우리나라에서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던 시기인만큼 교포 시터를 채용하기로 한 결정을 흔들지는 못했다. 게다가 입주 면접을 보려고 하는 교포 시터는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 살았던 사람일텐데 중국발 코로나와는 관련이 없지 않을까. 


물론 그 가족이 중국에 있는 경우 최근 두어 달 간 가족을 만난 경험이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할 테니 해당 시터가 '전에 일했던 집'에 평판 조회를 해 보자는 의견도 냈다. 우리 아이들을 돌보기 직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정점일 시기에도 이미 다른 집에서 입주 시터로 일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위험이 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주중에는 아이를 돌보느라 집 안에 있을 테고 주말에는 또 출근을 해야 하니 특별히 조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이 일에 대해 맘 카페에도 글을 여러 번 올렸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상당수 댓글은 복직이 걸려 있으니 서둘러 면접을 보는 게 맞다는 식이었고, '베이비시터들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할 것'이라는 댓글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아이 엄마가 '이사를 가게 돼 함께 생활하는 베이비시터를 내보내게 됐는데 좋은 분이니 한 번 면접을 보지 않겠느냐'라는 내용의 채팅을 걸어오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은 편견.


시터 채용을 고민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나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마저도 교포 시터를 채용하려고 결심할 때 혹시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이 면접에 나타나지는 않을지 걱정돼 옷을 겹겹이 껴 입고 나갔고, 한국인 시터를 면접보러 나갈 때와는 다소 다른 태도였다. 그런데 그런 편견에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 


우리는 비용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게 좀 더 합리적이고 맞는 판단이다. 그렇게 면접이 시작됐다. 



<임산부의 사진첩> 브런치 북을 보시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painfulpreg


<하필 내게 쌍둥이가 생겼다> 에세이 구매 링크를 보시려면

https://brunch.co.kr/publish/book/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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