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장례식을 시작합니다
장례가 진행될 병원에 도착해 엄마와 함께 병원 사무실로 들어갔다. 병원에 이런 곳도 있구나. 병실과 의료진만 있는줄 알았는데. 맞아, 병원도 누군가에게는 회사지.
병원 직원은 이틀 사이에 드라큘라에게 모든 수분을 빼앗긴 듯한 몰골을 한 엄마와 나에게 책자를 내밀었다. 책자는 상주가 입을 상복, 고인일 입을 수의, 고인이 화장된 후 담길 유골함의 가격과 디자인이 담긴 카달로그였다.
예전에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이 장면을 본 듯했다. 그 때 외가 친척 어른들은 이모와 사촌 오빠에게 이런 건 비싼 걸로 할 필요가 없으니 저렴한 것으로 고르고, 유골함과 관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때 사촌 오빠는 울먹이며 "그냥 제가 좋은 거 하고 싶어서 그래요" 라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와 표정이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난다.
내가 그 입장이 됐는데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하듯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같은 어른들이 나와 엄마에게 같은 조언을 하셨다. 그 때는 엄마도 그런 조언러 중 한 명이었는데 오늘은 이모가 조언러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말하지 않았지만 사촌 오빠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거... 오늘 하루 플렉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덕적으로 말이지...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상복은 적당한 것으로 수의는 좋은 것으로, 유골함은 예쁘고 좋은 것으로, 화장하면 타고 없어질 관은 적당한 것으로. 살아있을 때 자주 해주지 못한 예쁘고 좋은 옷을, 오늘 지금 이 곳에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어차피 재가 되어버릴 옷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나라의 도덕이었고, 우리 가족의 미덕이었고, 내가 아버지를 위해 했다고 보여질 마지막 일이었다.
몇 가지 선택을 하고 결제를 했다. 이런 과정은 이상하지가 않고 그냥 평이했다. 너무나 슬퍼 하염없이 울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앞으로 장례가 진행될 사흘간, 아니 어쩌면 남은 평생 우리는 몇 번이고 울거나 가슴을 부여잡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병원에서 상을 당한 유가족을 앞에 두고 돈 얘기를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앞으로 아버지가 없는 당신네 가족의 삶 역시 이러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계속 일상을 살 것이고, 슬픔은 일상 위에 군데군데 나타날 뿐이지 슬픔으로 삶이 온통 점철되지는 않을 것이란 가르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