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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맥주는 맛이 없더라] 2

열흘간 연휴에 가장 싼 여행지

by 졔잘졔잘



추석 연휴가 열흘이니 영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열흘이면 20대 때 어학연수로 1년 머물렀던 캠브리지에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각각 영국,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각자 본인이 다녀온 나라가 더 좋다고 술 마실 때마다 우기면서 "시간이 되면 내가 살았던 나라를 보여주겠다"라고 호통을 칩니다. 다만 남편은 당시 함께 살았던 홈스테이 가족과 아직도 연락을 하고, 저는 안 합니다. 그들은 당시에 70대였는데 현재 생존 중인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남편은 "친구를 많이 사귀는 척하면서 사실은 친구가 별로 없다"라고 말하곤 하죠.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팩트 폭격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남편에게 제안을 시작했습니다.

-오빠 추석 연휴가 열흘이니까 영국에 가면 어떨까?

씨알도 안 먹혔습니다.

-영국을 어떻게 가? 열흘 중에 4일이 추석이야. 너 며느리, 나 사위. 3~5일은 각각 양가에 방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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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뿐 저 역시 허황된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 따위는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가를 방문해야 하니까요. 우리 부부는 어찌 됐든 양가에 각각 1박 2일씩 머무는 방식으로 명절을 보냅니다. 명절 문화는 가족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결혼 전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디를 먼저 방문할지, 갈지 말지 등에 대해서요. 그리고 각자의 행동강령도 정했습니다. 예컨대 "내가 부엌에서 일할 때 그는 부엌을 떠나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남편은 나와 시어머니, 장모님 세 여성만 부엌일을 하는 모습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블로그가 매우 슬프고 어두워지며 일부는 화가 날 수 있기에 그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논의 끝에 연휴를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후반기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빠 전반기에는 (나의) 동생 부부가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추석 전 날 3일과 추석 당일인 4일에는 시댁에 가자. 당일과 다음 날인 5일에는 친정에서 보내고.

-그러면 여행은 언제 출발해?

-5일 오후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을 알아보자. 그리고 10일까지 놀면 4박 5일이야.

-음... 그러면 좀 볼까. 제주도 어때?

-오빠 내가 제주도는 이미 알아봤어... 근데 18시간이 걸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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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이미 2017년 추석이 "어쩌면 대체 휴일을 포함해 열흘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제주도행 비행기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9월에는 18시간 걸리는 표밖에 남은 게 없었습니다.


-어떻게 18시간이 걸릴 수가 있어?

-봐봐 오빠, 비행기가 우선 중국을 가. 그리고 거기서 15시간을 기다린대. 그런 후 제주도로 가는 거지... 청나라 사람 한양 오듯.. 이 참에 중국 여행을 같이 해볼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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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항공기 애플리케이션(앱)을 뒤적였습니다. 남편은 주로 '스카이스캐너' 앱을 이용하고, 저는 '인터파크'에서 검색합니다. 가격은 대체로 스카이스캐너가 싼 듯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한 번 사용하면 새로운 시도로 옮겨가는 걸 잘 못해서 그저 인터파크를 이용합니다. 4박 5일로 갈 수 있는 곳은 동남아나 일본 정도입니다. 지난 9월 회사에서 중국 베이징에 일주일간 연수를 다녀온 관계로 중국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다 쓸데없는 것으로 잠시 후 판명 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비행기 중에 100만 원을 넘지 않는 곳은 일본 뿐이야.

-오? 일본은 왜 그렇게 싼 거지?

-뭐가 싸죠? 삿포로 가는 비행기가 65만 원이야. 평소면 30만 원이면 갈걸

-오빠 그러면 삿포로에 가자

-응 여기밖에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글로벌 항공사 호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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