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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맥주는 맛이 없더라] 14.

제1회 아키 스포 2017 in 키로로

by 졔잘졔잘

우리의 눈은 길게 늘어선 푸드트럭 깃발로 향했습니다. (마치 날이 어두운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제가 사진에 특수효과를 넣었다 실패했을 뿐입니다. 다만 이 날 오후는 조금 흐렸습니다.)


-저게 뭐야?

-오빠 저기 지금 오꼬노미야끼나 이런 음식들을 팔고 있어! 우리는 저기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호텔 안에는 뷔페 말고 마땅히 점심을 먹을 시설이 없어 우리는 사실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룸서비스를 시켜먹을까 고민 중이었거든요.


-오빠 저기서 군것질을 하면 돼 좋지 않아?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다가갔습니다.


-우왕

남편이 신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북적북적한 분위기 속에 들어가는 어떤 그런 느낌을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우리가 실수로 호텔을 너무 먼 곳에 잡은 관계로 그런 문화를 많이 즐기지 못했거든요. 그러자 이렇게, '분위기'가 제 발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오빠 일단 저기 있는 자리 중에 하나를 잡아. 내가 맛있는 것들을 사 올게.

-응응

그는 다시 날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sticker sticker


제가 다름 아닌 맥주를 사 왔거든요. 우리가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삿포로 대신 무려 '아사히'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푸드트럭에 맥주 파는 곳이 한 곳밖에 없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맥주 파는 곳은 너무 장사가 안 되는 관계로 우리는 또 각자 대여섯 잔 정도를 연거푸 마셨습니다.


-오빠 너무 좋다

-그렇지 여행이란 건 어? 이렇게 갑자기 좋아서 주저앉아서 어? 이렇게 술을 어? 마시면서 어? 키야~~

-키야는 하지 말지 진짜 아재.



이분이 바로 그 아재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또 이 곳에서 두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다를 한 번 떨면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우리의 특징입니다.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손 들고 말해야 할 정도입니다.


재밌는 건 이 공원에서 어떤 파트에서는 요가를 가르치고, 어디서는 어린이 게임이 있고 각종 스포츠가 있었습니다. 맥주를 사러 가서 맥주 파는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뭐야?

-아... 여기 공터 넓고 좋으니까 가을에 사람들 와서 즐기라고 하는 행사야 '아키(가을) 스포'

-아 그래? 매 해 하는 행사야?

-올해가 처음이야. 그리고 매 해 할 거라던데?

어쩐지 신났습니다. 새로운 여행지를 개척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떠들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엘리베이터에는 이런 게 붙어있었습니다.



-오 오빠 이 거봐. 오늘의 모든 불행이 나의 블로그로 향하고 있어. 불행을 기록하라

-이게 뭔데?

-아까 우리가 즐긴 그 행사 팸플릿이야 10월 8~9일인데 우리는 마침 8일에 이 행사에 참여했어!

-오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이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아무튼 이 행사는 1회야. 내가 블로그에 쓰면 내가 유일한 정보 제공자야. 왜냐하면 아까 거기 일본인 아닌 사람은 우리뿐이었어.

-오..


우리는 이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며 다시 방에 들어왔습니다. 아까 푸드트럭에서 사 온 피자를 꺼냈습니다.


우리는 방에서 또 술을 마시며 못다 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한 대화의 연장입니다. 우리의 인생, 미래, 진로, 2세 등등 2년째 똑같은 술자리 패턴입니다. 답도 안 나오지만 이상하게 지겹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습니다. 오후에는 저곳에서 술을 마셨고 저녁 여섯 시 정도부터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대화를 하다 중간에 큰소리로 싸우다 다시 대화를 하다 이런 패턴을 반복하다 잠들었습니다.

오타루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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