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아버지의 가정폭력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정규편성이라니

by 졔잘졔잘


출산은 기본적으로 목숨을 건 행위다.

주변에도 멀쩡히 열 달간 평온하게 임신한 후 출산하러 간 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해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이들이 두 명이나 있다. 임신을 하기로 결심한 건 임산부 본인이지만 그게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까지 오롯이 임산부 혼자 짊어져야 할 고통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정 내에서 합의에 의해 결정된 임신이라면 임산부의 건강은 임신을 결정한 가정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 태어날 2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정의 구성원인 임산부라는 인간을 위해서다. 임산부는 4주께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온갖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린다. 100명의 임산부가 있다면 100가지 증상이 있다. 누군가는 입덧을 하고 누군가는 먹덧(많이 먹는 것)을 한다. 어떤 임산부는 아랫배가 아프지만, 어떤 임산부는 온종일 현기증이 난다. 간혹 운이 없는 임산부는 이 모든 일을 동시에 겪는다. 태아가 자라면서 배가 무거워지면 그 역시 육체적 고통이다. 2kg 상당의 무언가를 온종일 배에 붙이고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척추가 남아나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처음 보는 폭력적 예능의 등장



지난 주 2회까지 방송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런 의미에서 폭력적이다. 특히 그 중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를 대하는 김재욱의 부모와 남편 김재욱의 행동은 실제로 때리지 않았을 뿐 가정폭력이라고 할 정도로 끔찍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등장하는 김재욱 아내 A씨는 (일반인이니 익명으로) 임신 8개월이다. 그는 명절에 시댁에 가서 8개월의 몸으로 온종일 '당연히' 전을 부쳤다. 밥을 먹는 동안 그의 아들을 돌봐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살아있는 아들에게 밥을 먹이며 뱃 속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본인의 밥을 먹어야 하는 두 가지 미션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결국 살아있는 아들이 이겼지만. 방송이 설정일 수 있겠지만 시댁 식구 중 누구도 A씨에게 "몸은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시어머니는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한다"며 셋째를 종용했다.

오마이갓. 지금 그의 배 안에 아직 이 세상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는 아이가 자라고 있고, 그아이를 온전히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사력을 다 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또 다른 아이라니.


더욱 끔찍한 사건은 지난 주 방송된 2화에서 발생했다. 그의 시아버지(=김재욱의 아버지)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며느리에게 "수술을 하면 아이의 아이큐가 낮아진다"며 자연분만을 권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나는 순간 "의사가 제왕절개를 하라고 했는데 저렇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시아버지는 단호했다. 시아버지는 "제왕절개는 아토피를 유발한다""의사들을 보통 수술을 권한다"며 제왕절개를 포기하도록 했고 그 가운데서 남편이라는 작자(=김재욱)는 "절충을 해서 한 시간을 노력해보고 안 되면 제왕절개를 하자"는 발언을 했다.



자궁은 인간의 장기 중 하나다



끔찍한 상황이다. 자궁은 장기 중 하나다. 의사가 "자궁이 파열될 수 있다"며 제왕절개를 권했는데 아기의 아이큐를 높이기 위해서 엄마의 장기 하나 따위는 파열돼도 괜찮다는 건가. 심지어 임산부 본인도 아니고 시아버지가 왜 '남'의 신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지, 이를 왜 시부모에게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하는지. 일반인의 상식에서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기의 아빠라는 사람은 한 시간 정도 장기가 파열될 수 있는 위기를 견뎌보라는 말을 열 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하고 있다니.


이게 각본이 없는 진정 '리얼리티'일까. 방송을 보면서 나는 "이 프로그램은 이번 주 이후로 폐지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오늘 밤부터 김재욱과 그 가족은 네티즌의 큰 비난에 직면할 것이며, 이 경우 일반인인 그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하차하고 방송은 파일럿으로 끝나겠지 생각했다. 아주 한심한 생각이었다. 김재욱은 이후 일주일째 SNS에서 '욕 폭격'을 맞고 있지만 MBC는 결국 이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했다.





며느리 혐오는 웃고 즐길 소재가 아니다


이 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시댁의 임산부에 대한 폭력을 단순한 고부갈등으로 포장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수술해야 하는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권하는 건 혹독한 시집살이 정도의 범주가 아니다. 그건 그야말로 내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는 폭력적 행위다. 며느리라는 존재를 가족구성원이라는 하나의 주체로 보지 않는 게 이 가족과 김재욱의 가장 큰 문제다. 며느리혐오다. 이 방송을 보면서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은 "연예인 가정에도 저런 일이 있구나"라며하하호호 웃고 넘어가거나 채널을 돌리는 선에서 그치기 쉽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며느리혐오는 숨죽이게 된다.


방송 관계자는 "김재욱의 가족이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집 안에 설치된 카메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들은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사실 그 가족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 방송을 보면서 이미 며느리혐오로 삶이 무장된 꼰대들 대신 혐오당하는 며느리들만 분노할까 우려스럽다. 방송을 보며 수많은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아들, 며느리에게 과시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임신을 해라,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 매주 집에 와라, 명절에 시댁에만 머물러라, 시댁에서 일해라 등 이 모든 발언이 며느리에 대한 차별 혹은 혐오다. 이런 혐오를 일삼는 그들이 이 방송을 보며 "내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되새기며 뿌듯해할까 두렵다. 이 방송이 더 이상 전파를 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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