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졔잘졔잘 Nov 15. 2018

15. 출산 임박, 내 몸에서 헐크가 자란다

'먹 잠'인간의 등장

내 몸속에서 헐크가 자라고 있는 걸까?

35주 차, 제왕절개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딸들, 미안해) 태동 때문이었다. 태동은 요란스럽고 거대했다. 가끔 왼쪽에 있는 아기는 갈비뼈를 걷어차거나, 손으로 만지거나, 머리로 누르는 게아닐까 싶을 정도로 뼈를 압박했다. 나는 새벽에 자다가 수시로 왼쪽 갈비뼈를 부여잡고 '악' 하는 소리를 내고 일어났다.  잔잔한 물결이라며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아기들의 움직임은 거대한 파도로 바뀐 지 오래였다. 정말 남산만 하게 불러온 배가 외부에서 봐도 보일 정도로 '꿈틀'거렸고 그때마다 명치를 자극해 숨을 헐떡거렸다. 나는 가끔 아기들이 헐크처럼 갑자기 커버린 건 아닐까, 제왕절개 수술 전에 배를 뚫고 아기들이 탈출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내 안에 헐크있다. 36주2일


물거품이 된 출산휴가의 나날들


몸이 불편해지는 과정은 급격하고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31주에 출산휴가를 들어와 32주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콘서트도 다녀왔다. 물론 콘서트 내내 거의 앉아만 있었고, 다음 날 이틀 정도 앓아누웠지만 콘서트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출산휴가를 들어오기 전에 계획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소설로 태교 하기. 아름다운 문구로 가득한 소설을 읽고 딸들이 풍부한 감성을 갖게 되길 바랐다. 하루 한 편의 프랑스 영화 보기도 계획 중 하나였고 가능하면 미술관도 가고 싶었다. 32주까지는 게으르지 않은 날이면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오전에는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모조리 빌려와 읽고, 오후가 되면 거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봤다. 그렇게 보름 정도는 '아이 없는 백수 주부'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33주가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손과 발을 조금씩 결박했다. 5분 거리의 도서관이나 카페에 다녀오는데 20분이 걸렸고 세 번 정도는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됐지만 임신 당뇨 때문에라도 걷기 운동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굳이 목적한 곳까지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몇 차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며 불과 30분 전의 선택을 후회했다.


하루는 친구가 집 앞으로 찾아왔는데 카페에 앉은 지 30분 만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골반과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미안하지만 멀리서 온 친구를 금방 보냈다. 35주 차에 아기들의 몸무게는 둘 다 2.1Kg이었는데, 4.2Kg이 이렇게 힘든 걸까, 밤이 되면 척추 뼈를 누가 위아래로 누르는 듯이 아파 새우등을 하고 자기 일쑤였다.


미세먼지가 온 하늘을 강타한 어느 날은 창문조차 열지 못해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했다. 이제 나 혼자 보낼 시간, 혹은 남편과 단 둘이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되는 걸까.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고 싶었다.


출산 일주일 전, '먹-잠-먹-잠' 인간의 탄생


출산을 일주일 앞둔 35주 차부터는 이런 생각마저도 사치였다.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가 태동 검사를 하는데 똑바로 누워 있다 커다란 쇠공이 심장을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하악하악' 하는 소리를 내며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정자세로 눕는 게 결과가 정확하지만 모든 산모들이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출산 직전 마지막 주는 먹거나 누워 있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남편은 임신 당뇨인 내가 끼니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질까 봐 걱정했고 매일 아침과 저녁을 서로 다른 메뉴로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밥을 먹기 위해 일어나 침대에서 나오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밤에는 남편 부축 없이는 화장실도 혼자 가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쓰는 자동으로 상체를 들어 올려주는 침대와 휠체어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침대에 기어가 잠들었다가 점심께 일어나 냉장고에서 나물에 밥을 비벼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끼니를 떼웠다. 그리고 아이유의 '밤 편지'를 들으며 또다시 잠드는 '먹-잠' 패턴을 반복했다. 자다 일어나 밥을 먹는 게 너무 힘들고 싫었는데, 임신 당뇨 때문에 꼭 챙겨 먹어야 하는 현실이 웃기고 슬펐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면 그제야 일어났고 또 차려준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TV를 봤다. 그리고 또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단단해졌다  


35주에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갔다. 내가 다닌 병원은 막달 검사에서 메인 교수 밑에 있는 의사가 진료를 해 준다.  이 의사는 스승과 달리 다소 겁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초음파를 보는데 아기들이 엎드려 있어서 "귀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거나, "귀가 있기는 있는 거죠"라는 질문에 "모르죠"라고 대답하거나 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전까지 병원을 두 번 옮기고(난임 치료 & 출산) 세 명의 의사를 만나는 동안 누구도 귀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귀'에 대한 걱정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초반 잦은 하혈로 응급실 신세를 질 때보다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이제 와서 귀가 없든 발이 없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고, 정황상 귀는 분명히 있으니까. 임신 초반에는 무엇이든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우울하고 초조했는데, 말기가 되면서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매사에 긍정적인 결론을 내는 나를 발견했다. 주변 친구들에 비해 임신 기간이 수월하지 않았고, 엄살처럼 보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상처 위에 새 살을 나게 한 느낌이다. 아쉽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어느덧 아기 없이 우리 부부가 오롯이 우리 둘이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 찾아왔다.  













 




























이전 14화 14. 내 딸이 범죄자가 된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