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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Oct 26. 2018

13. 제왕절개를 왜 하냐고?

자궁이 찢어질까 봐

친구 1은 당황했다. 불과 2주 사이에 갑자기 뱃속 태아가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40주가 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는 아이를 가능하면 이번 주 내에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가 밑으로 내려오도록 온종일 걸었다고 한다. 나는 "그러면 수술을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친구는 "나는 첫째를 자연 분만해서 자연분만하고 싶어"라고 설명했다.
출산을 앞둔 친한 언니 2는 "제왕절개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에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수술대에 홀로 누워 있는 게 무서웠고 자연분만이 출산 이후 회복이 빠르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 2는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자궁근종 수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을 결심하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두 가지 결정을 미리 내렸다. 우선 내가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는 반드시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한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는 반드시 분유를 먹인다.(=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길게는 스무 시간도 걸린다는 분만의 고통을 참고 싶지 않았고(제왕절개 수술은 고통 없다고 착각함) 내 몸 안에 있는 모유를 내주느라 출산 이후에 고생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모유수유를 끊기 위한 단유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몰랐고, 분유 육아는 쉽다고 착각함)


그래서 사실 친한 언니나 친구들이 "아이가 나오지 않아 열 시간 넘게 진통을 했다" "모유수유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해"라고 말하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겉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종종 "안 하면 되는 거잖아"라는 말을 되뇄다.


고백하자면, 출산을 한 달 앞둔 나는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의사는 "쌍둥이라고 다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00 씨의 경우 태아들의 자세가 좋지 않아 자연분만을 권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아기들의 자세가 좋지 않을 때 자연분만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한 명의 아이를 간신히 출산했는데 공간이 넓어진 둘째 아이가 자세를 바꿀 수 있다. 그러면 이미 양수가 터지고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 둘째 아이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는 것.


모유수유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 역시 '권장사항'이 됐다. 임신 당뇨 때문이다. 임신 당뇨 환자의 경우 모유수유를 통해 보다 수월하게 2형 당뇨를 막을 수 있고 아기 역시 자라면서 발생할 비만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다른 노력으로도 막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의사는 "모유수유를 하면 산모와 아기에게 모두 좋다"라고 설명했고 나는 선택을 출산 이후로 미뤘다. (쌍둥이를 수유하다 진이 빠져버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또 한 번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주체적으로 내가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유수유를 아무리 하기 싫어도 아기가 태어난 후 너무 예쁘고 그래서 한 번 젖을 물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하게 되는 셈이다. 내가 미리 "나는 절대 00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봤자 아무런 힘이 없다.  나아가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하는 출산 방식은 산모의 선택 사항도 아니다.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두루 보고 의사가 판단할 일이다.

 

문제는 산모와 의사 두 사람만이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을 남편, 부모, 시부모, 일가친척, 지인까지 당사자 외의 사람들이 등장해 훈수를 두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아기의 IQ가 25% 좋아진다"며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권하는 남편,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면 어쩌냐며 발을 동동 굴리는 시부모님 등이 바로 전문 훈수 쟁이들이다. 어떤 이유든 (하다못해 모유수유가 IQ를 높이더라도) 그 결정은 산모만이 내릴 수 있다. 심지어 아기의 아빠인 남편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산모의 몸뚱이가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자연분만은 분명 장점이 많다. 출산의 기본 방식이기도 하고 출산 이후에 바로 밥을 먹고 회복할 수도 있다. 제왕절개는 20분이면 수술이 끝나고 아기를 안아볼 수 있지만 산모가 회복하기까지 최소 2박 3일의 시간이 걸린다. 산모들이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일시불로 아프냐, 할부로 아프냐의 차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경우 대다수 의사들은 제왕절개를 권한다. 자궁이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지나치게 크거나, 감염 우려가 있을 때도 수술을 해야 한다. 자궁이 파열되면 산모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의사가 수술을 권했는데 아기 IQ를 운운하며 자연분만을 권하는 주변 사람은 산모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모유수유도 마찬가지다. 산후조리원에 가면 산모의 방에 2~4시간 간격으로 '수유 콜'이란 게 들어온다.  산모가 아기에게 가서 모유수유를 한다는 일종의 '알람'이다.  수유 콜은 한밤중에도 예외 없다. '완모(완전 모유수유)' 하는 산모는 자다가 일어나 눈을 감고 아기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 이런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산모도 많다. "모유수유를 사회적으로 너무 강요해서 다들 그게 더 좋다고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거야"라고 아는 체 하는 조언이 무의미한 이유다. 모유수유를 하면 분명 아기와 교감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이게 싫은 사람도 더러 있다. 수유 자체가 몸속에 있는 물질이 빠져나가는 행위인데 이건 하루에 몇 차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막 태어난 아기는 위가 작아 밤에도 배가 고픈데 수유를 하기로 결정하면 어쩔 수 없이 산모가 움직여야 한다. 아기에게는 엄마 몸이 곧 밥통이니까.  

모유가 안 나오는 산모도 많다. 모유 양이 적어 강제로 단유 해야 하는 산모는 아기와 교감할 수 없어 슬프기도 하다. 결국 이 역시 산모의 판단과 상황에 따라 결정될 일이지 주변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가르칠 일이 아니란 의미다.


최근에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탄을 받는 분위기다. 이런 주장이 임신한 여성을 죄책감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건 산모가 자신의 건강과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이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숙고해 결정할 일이지 주변에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나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 친구는 "대체 왜?"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큰 거부감을 느꼈다. 왜냐니, 오죽하면 칼로 배를 째는 수술을 하겠니. 할 만하니까 하겠지. "제왕절개로 애를 낳은 산모들은 군대 안 갔다 온 것처럼 고통을 모르더라"라는 말도 들었다. 그 고통을 왜 꼭 알아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제왕절개도 분명 고통이 있다. 출산 후 배가 아프고 소변줄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수모까지 겪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이 가끔은 '배려 없다'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이가 "왜 수술을 해?"라고 물어보면 우리 제왕절개족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응 나는 자궁근종이 있어서 자궁이 파열될까 봐 수술을 해"라고 사적인 정보를 마구 아무에게나 유포해야 하나.


산모는 오늘도 두렵다. 아이를 낳을 때 아플까 봐, 자연분만을 하다 나에게 혹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제왕절개를 하다 마취가 풀리지 않을까 봐.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하지만 산모는 두렵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이겨낼 뿐이다. 이리도 경이로운 일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산모다. 자연분만이든 수술이든 그저 지켜봐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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