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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Oct 11. 2018

11. 임신했다고? 돈은 있고?

육아는 영원히 진행되는 예측 불가능한 소비 

먼저 반성하자면, 20대의 나는 종종 피임을 하지 않아서 무심결에 임신이 된 후 삶에 허덕이는 친구들을 보면 혼자 속으로 화를 내곤 했다. 아니, 준비도 안 됐으면서 대체 왜 피임을 안 해. 왜들 저렇게 자신의 인생에 무책임한 거지. 답답했다.

30대 중반이 된 나는 이제 안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공들여 쌓은 탑은 무너지기 일쑤고, 계획은 늘 미뤄지거나 망가진다. 철저히 피임을 하고 계획대로 임신을 해도 예상치 못한 '깜짝 이벤트'가 발생한다. 나의 경우 계획대로라면 2016년에 임신을 하고 지금쯤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고 남편과 둘이 열흘 간 쿠바 여행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1) 임신이 뜻대로 제 시기에 되지 않았고 2) 그래서 아이는 거의 2년이 지난 후에 낳게 됐고 3) 그 사이 동생이 또 한 명의 아들을 출산하는 바람에 졸지에 손자, 손녀가 4명이 된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해외여행이나 가는 파렴치한 행동은 할 수 없게 됐다.


그뿐인가.  아이를 키우는 비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나. 마치 취업하고 처음 적금을 붓는 신입사원처럼 1년 넘게 돈을 모으고 재테크를 해서 자산을 불리는 데 집착했다. 어리석게도 "돈이 없으면 애를 낳지 말아야지"라는 막돼먹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1년 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병원에 보험 보장도 되지 않는 치료비로 날린 돈이 얼마인지(난임, 출산 등은 대개 보험 처리가 안 된다), 계획한 만큼 돈을 모으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입만 놀리며 잘난척하기엔 삶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사다난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지만 종종 잊는다.


아이를 '낳는' 비용

제왕절개 예정일을 한 달여 앞두고 출산휴가를 시작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내 휴직으로 우리의 소득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계산했다. 성인이 돼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다 보면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돈이 생긴다. 세금이나 공과금부터 시작해서 건강과 미래를 위해 정기적으로 내는 보험료, 개인연금 등이 그런 돈이다. 소득이 줄었어도 매 달 멈추지 않고 내야 하는 비용이다. (나는 보험 맹신자라 또 하필이면 보험도 많이 가입했다) 출산휴가를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최근 6개월 간 나의 소득과 지출을 정리해보니 고정비 지출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스스로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사치성 지출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월급의 대부분은 보험, 연금, 적금, 펀드 등에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이 고정비(미래를 위한 지출)를 내 월급으로 내고 나머지 모든 돈을 남편이 버는 돈으로 충당한다. 즉, 이 '멈출 수 없이 나가는 비용'을 남편이 1년 4개월 간 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서둘러 당장 급하지 않은(수익률도 높지 않은) 펀드의 자동이체를 정지하는 등 줄일 수 있는 비용을 찾았다. 투자도 돈을 벌어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한 달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시는지(하루 평균 두 잔을 마시고 있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한 두 번 입을 옷'을 얼마나 자주 사는지 등도 일일이 계산했다. 나 스스로 돈을 번 후 처음 해 보는 가계부 정리였다.




허리띠를 졸라맨 후 이제 우리가 이 두 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 대략 어느 정도의 돈을 써야 하는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보다 수술비가 많이 든다.  3박 4일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수술 후 소변줄을 달고 다니는 등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모들은 1인실을 선호한다. 1인실은 2인실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모는 퇴원 후 집에 가지 않고 산후 조리원에 간다. 이미 숱하게 뉴스에 보도된 바 있지만 다시 언급하자면 2주일 정도 산후조리원에 머물면 그 비용이 싸게는 200만 원(서울 기준)에서 비싸게는 600만 원을(강남, 서초 등 극심한 부유층 동네는 제외한다. 이런 곳은 1000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넘어서기도 한다. 산후조리원 비용은 그 지역의 '땅 값'과 '인건비' 그리고 제공하는 서비스의 퀄리티가 좌우하는 듯한데 나의 경우 아이가 두 명이다 보니 조리원 비용이 다른 산모의 1.8배(2배가 아닌 게 다행)에 달했다. 조리원 비용이 200만 원이면 160만 원은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조리원에서는 2주일간 아기 2~3명 당 한 명의 간호사가 돌봄 노동을 24시간 한다. 최저임금과 신생아 돌봄의 노동강도를 생각하면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을 내는 내가 부담이 될 뿐. 


아기를 낳아서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려올 때 차에 태워야 하기 때문에 '카시트'도 사야 했다. 많은 주변 산모들이 "카시트는 안전 때문에 중고를 사면 안 된다"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차에 '장착'하는 장비 아닌가. 아기 침대도 2개 필요했다. 멀쩡한 '새 침대'는 20만 원 수준인데 이 역시 3개월 정도밖에 못 쓴다는 선배맘들의 조언에 따라 중고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1~3개월 쓰는 물품은 너무나 많다. 하루 종일 설거지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젖병도 10개가량 구비해 놔야 하고, 젖병을 소독하고 세척하는 장비도 필요하다. 아기 입에 물고 빠는 용품을 모두 중고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겨울 출산이기에 "밖에 나갈 일이 없다"라며 유모차를 바로 살 필요가 없다는 충고에 한시름을 놓았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1~3만 원짜리 육아용품을 챙기다 보니 한두 달 사이에 써야 할 돈이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병원에서 받는 초음파 검사와 임신 당뇨 당첨으로 본의 아니게 지출하게 된 내과 치료 비용 등이 추가되니 한 달간 통장이 절로 바닥이 났다. 이게 모두 '육아'가 아닌 '출산' 전후에 필요한 비용이라니.



물론 이런 고달픔을 해소하고자 정부에서 지원하는 비용도 있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직원은 출산휴직 중에 통상임금의 일정 부분을 지원받는다. 나머지는 각자의 회사가 낸다. 하지만 아직 상당수 국내 기업이 기본급은 낮고, 상여 등으로 연봉을 채우고 있어 출산휴직 중 지원되는 비용은 월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회사가 내야 하는 비용을 '복직 6개월 후' 목돈으로 주는 사례도 많다. 

 

올해부터는 서울시에서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해주는데 대개 6시 퇴근이다. 하지만 신생아 육아는 '밤'이 진짜 아닌가.  산모들이 고비용을 감수하고 산후도우미보다 조리원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일부 선배들의 '분윳값 때문에 야근해야 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먹이고, 살리는 데 드는 돈이 천문학적인데 아이를 낳자마자 소득이 반토막 나는 게 우리나라 30대 부부의 슬픈 현실이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할까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적 견해로 우리 세대가 임신을 기피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육아비용 부담을 줄여 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출산 후 여성이 겪어야 하는 각종 불평등이 산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를 해결해도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여전히 심각할 것이다(불평등 문제는 한동안 해결될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하지만 돈 부담이 줄어든다면 국가적 위기라고 여겨지는 저출산 문제를 다소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됐든 '새로 태어나는 인간'이 지금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노후를 책임질 세금을 내는 사람이라는 방식으로만 접근해도 출산과 양육에 지원하는 돈이 덜 아깝지 않을까. 


20대의 나처럼 많은 2030이 "돈도 없으면서 왜 애를 낳아"라고 쉽게 내뱉고 있다. 일부는 그 와중에 기성세대로부터 "두 명 낳아라, 아들 낳아라"하는 배려 없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미래로 나아가기 어려운 불행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나야 하는 아기들이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부모의 불안정한 인생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야 하나, 그건 아니지 않을까. 시스템이 보다 정교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나면 나는 또 고민에 빠질 게 틀림없다. 어린이집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어린이집이 끝난 후 나와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아기들을 돌봐줄 '하원 도우미'는 얼마일까. 아기들이 크면서 영어유치원, 놀이학교 등 주변 사람들이 하는 '고급 교육'의 유혹을 떨칠 수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모조리 남이 쓰던 물건을 물려받아야 하는 아기들이 지금도 너무나 불쌍하다. 그런데  이 아기들을 키우면서 몇 번이나 돈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을 겪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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