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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Oct 08. 2018

10. 임신 당뇨 당첨 후기

하루 10시간 병원 체류기

누구나 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하기 싫어서, 의지가 없어서 할 수 없는 게 있다. 나에게는 식단관리가 그랬다. 다이어트를 할 때 내 선택지는 운동, 한약 등이 있었고 먹는 양을 줄이거나 굶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먹는 음식을 정해두고 좋은 영양소를 가진 음식을 골라 먹는 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냥 건강하지 않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에 빵을 세 개씩 먹는 내가 탄수화물을 줄일 수 없다. 또 술을 끊는다면 여행을 갈 의지도,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살다가 너무 살이 쪄서 힘들겠다 싶을 때는 종종 굶었다. 좋지 않은 식습관이지만 35년 평생을 그리 살아왔다. 그건 임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임신 초반의 극심한 입덧은 식욕부진으로 이어져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됐다. 7개월 차까지는 일부러 임신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먹을 수 있는 건 사과와 같은 달달한 과일, 아이스크림, 빵 등이었다. 임신 전에는 그나마 너무 단 걸 싫어해서 살아있을 수 있었는데(?) 임신 후에는 카페에서 한 번도 찾지 않던 초콜릿 라테를 시킬 정도로 단 음식에 대한 수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살이 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후 7개월 차까지 몸무게는 3Kg도 늘지 않았고 많은 임산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병원 체류 5시간째: 임신 당뇨 확정


일반 산부인과에서 대학병원으로 전원(병원을 옮김) 한 후 처음 임당(임신성 당뇨) 검사를 받던 날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모두 사라졌다. 검사를 받은 후 진료실로 들어온 내게 남편은 힘없는 목소리로 "너 당뇨래"라고 말했다.

나? 내가 당뇨라고?


의사 선생님은 다소 당황했다. 임신성 당뇨는 일반 당뇨와 달라 출산 후 대개 사라진다. 철저히 임신 중에 관리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마치 성인 당뇨병을 얻게 된 것 마냥 끔찍한 표정을 짓자 의사는 "아니 그렇게 심각한 지경은 아니라 당뇨 우려가 있으니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내 귀에는 사실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회사에 연차를 내고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2주일 후에 또 연차를 내야 하는 게 가장 큰 짜증을 유발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사유를 설명하는 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사 전 날 금식을 해야 하고(금식하는 게 싫어서 건강검진도 취직 후 5년 후에 처음 받았는데!!) 검사 당일에 피를 한 시간 간격으로 네 차례나 뽑아야 한다는 게 임신 당뇨 재검사의 요약이다. 즉, 병원에 5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토요일 진료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회사에 연차를 내거나 어찌 됐든 배려를 받아야 하는데 출산휴가를 앞두고 더 이상 배려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짜고짜 의사 선생님께 "대체 직장 다니는 분들은 어떻게 임신 중 진료를 받나요?"라고 따져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들 그렇게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오죠"라고 대답했다. 나를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2주 후 그 날이 왔다. 나는 대체로 병원을 8시쯤 이른 아침에 가서 진료를 받은 후 출근한다. 이 날은 출근하지 않지만 8시 첫 채혈을 예약했다. 12시간 금식이기 때문에 어서 검사를 끝내고 밥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사 전 날은 무슨 일인지 잠을 뒤척이다 세 시쯤 겨우 잠들었다. (검사 때문은 아니지만 종종 이런 날이 있다.) 너무 피곤했고, 채혈실에서는 공복에 1차 채혈을 한 후 오렌지 맛이 나는 음료(포도당 용액)를 마신 후 1시간 후, 2시간 후, 3시간 후 4회 피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렌지 맛이 나는 음료는 거북했다. 입덧할 때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물도 마시지 말라고 했기에 참아야 했다.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피를 뽑기 전 너무 졸려 병원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어지럽고 속이 거북해 무엇도 할 수 없었지만 꾹 참고 양쪽 팔을 번갈아가며 내줬다. 이 병원에 뿌린 내 피는 대체 몇 리터일까 생각했다.


4회 채혈이 모두 끝나자마자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전복 지리탕을 먹었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배가 부르게 밥을 먹으며 동행한 친정엄마에게 "진짜 임신 당뇨 확정이면 이게 내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밥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확정이 아니어도 관리는 잘 해야지"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고 밥을 먹고 나니 1시가 됐다. 병원에 다섯 시간을 머물렀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임신성 당뇨를 피하려면 4회 실시한 각 채혈마다 혈장 포도당 농도가 2회 이상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기준 수치는 공복일 때 95, 1시간 후 180, 2시간 후 155, 3시간 후 140이다. 의사는 내게 공복, 1차는 수치를 넘지 않았고 3,4차는 각각 181, 168로 기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옆에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화가 났다.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대체, 당뇨에, 제가, 왜, 걸린 건가요????

선생님은 가족 중에 당뇨인이 있거나(해당됨), 나이가 많거나(해당됨), 식습관이 불규칙하거나(해당됨) 등 다양한 이유로 임신성 당뇨에 걸린다고 말했다. 임신성 당뇨는 일반 당뇨와 다르기 때문에 임신이 끝나면 혈당 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내려간다고 강조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저 내가 당뇨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병원 체류  9시간째 :임당인의 생활

병원에서는 당뇨가 확정됐으니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은 1시간 30분 후에 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었는데 집에 갈 수 없다는 의미였다. 산부인과에서 급하게 내과로 옮겨졌다.(당뇨는 내과 담당이다.) 엄마와 병원 로비에 멍하니 앉아있다 교육 장소로 이동했다. 1:1로 이뤄지는 당뇨인의 생활과 관련한 교육은 지루하고 이상하였다.


임당 환자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식사요법이다. '무엇을, 얼마나, 언제' 먹느냐를 일정하게 매일 조절하고 기록해야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것이다. 식단관리. 매일 공복, 식후 등 4회 자가 혈당 측정을 해야 한다. 혈당 측정은 장비를 구입해서 나 스스로 채혈침(바늘)을 손가락에 쏴서 피를 낸 후 그 피의 혈당 수치를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임신당뇨를 위한 당뇨측정장비와 혈당관리 기록


듣자마자 하기 싫었다. 그리고 혈당이 120~140을 넘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 조절을 해야 한다며 책상 위에 각종 각종 음식 모형을 늘어놨다. 하루에 곡물, 어육류, 채소 등등 6가지 식품군을 모두 '일정량'을 지켜 먹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단짠단짠)도 늘어놨다. 더욱 하기 싫어졌다. 여기에 더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소변 검사를 '스스로'해야 했고, 그리고 살이 더 찌면 안 된다고도 말했다. 나는 결국 선생님께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예상보다 큰 아기가 태어나겠죠"라고 말했다. 조산이나 유산 확률이 높아지고 아기의 성장을 촉진해 거대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또 분만 이후에도 아기에게 저혈당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머리가 작고 몸이 큰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더 심각한 건 살면서 아기가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설명을 이어갔다.


하아.

해야 되는거였다. 이 식단관리는 내가 의지와 관계없이 해야 한단 얘기다. 나에게 아주 미세하게 모성애가 있으니까. 약국에 가서 혈당 측정 장비를 구입했다. 그나마 10만 원이나 하는 장비 중 90%를 환급해준다는 소식이 나의 마음을 위로했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에게 "대체 나는 뭘 위해서 임신한 거지?"라고 말하다 등짝을 맞았다. 엄마는 "룰루랄라가 들어!"라고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임당인 생활의 시작: 우울함과 스트레스

임신 관련 악재가 '거듭되면서' 커다란 우울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종종 그저 '왜 나만 이렇게 유난스러운 걸까'하고 생각해 왔지만 이 날은 달랐다. 열 시간 가까이 병원에 있었고,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게 너무 많이 늘어난 듯했다. 그리고 이런 우울감은 점점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일주일 정도 혈당 측정을 하고 식습관을 조절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졌다. 회사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종종 '나는 혹시 그간 엄마를 괴롭힌 죄로 저주를 받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나에게만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그리고 나의 쌍둥이들은 왜 하필 나를 엄마로 만나서 이런 위험(?)에 처한걸까. 다소 오바스럽지만 유산, 6개월 여간의 입덧, 잦은 하혈, 한 달간의 병가를 겪고 '임신당뇨' 확정 판정을 받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8개월이  8년처럼 길게 지나온 듯했고, 이제 남은건 '임신중독'같은 최악의 임신질환 뿐이라고 혼자 되뇌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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