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태아 산모가 알아야 할 이야기 ①
20대 때 다이어트 한약을 먹은 적이 있다. 한약을 한 포 먹고 식사를 하면 평소의 3분의 1만 먹어도 위가 배 밖으로 나올 듯이 배가 불렀다. 하지만 효과는 1석 2조였다. 나는 칼로리 조절 없이 먹고 싶은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었고 대신 먹는 양이 줄어 몸무게는 쭉쭉 빠졌다.
입덧이 끝나고 임신 20주가 넘어서면서 한 달 남짓 내 식습관은 다이어트 한약을 먹던 젊은 20대 시절과 비슷해졌다. 집에 오는 길 집 인근의 빵집을 매일 들렀다. 모카빵, 페스츄리, 대니쉬 식빵 등 그간 먹고 싶었던 모든 빵을 섭렵했다. 임신 전에는 살찔까 봐 쳐다보지도 않던 각종 과일잼을 사서 듬뿍 발라 먹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먹는 양은 점점 줄어만 갔다. 중기에서 말기로 향할수록 조금만 먹어도 너무 배가 불렀다. 가끔은 배가 아파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조금씩 자주 먹으라"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지만 철분제 섭취(임산부는 철분을 섭취해야 한다)로 인한 변비가 겹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내 몸속 단기 세입자들
(모든 산모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산모가 배가 불러올수록 한 번에 많이 먹기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태아가 커질수록 몸속의 내장기관이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위와 간, 방광 등의 위치는 뱃속에 잠시 살다 가는 '10개월 단기 세입자' 때문에 뒤죽박죽이 된다.
다태아를 임신하면 몸속 공간은 더 작아진다. 산모의 신체 크기는 똑같은데 세입자가 둘, 셋이니 당연한 일이다. 조금만 먹어도 금방 포만감이 느껴지고, 조금만 먹었기 때문에 금세 허기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태아가 손, 발로 방광을 치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 횟수도 두 배다. 분명 신호가 왔지만 결과물(?)은 없다. 그저 아기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내 아기들은 둘 다 역아(머리가 위로 향함)였다. 태아는 임신 말기가 될수록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활동력이 좋은 쌍둥이는 성장하면서 유난히 움직이더니 결국 모두 머리를 위로 향하는 '99 자세'로 자리 잡았다. 의사는 "이 자세로 거의 출산까지 간다고 생각하라"라고 말했다. 아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명치를 머리로 눌렀다. 가끔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을 때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숨이 차 견딜 수 없을 땐 남들 몰래 속옷(브래지어) 끈을 푸르기도 했다. 체면을 지키느라 죽을 수는 없으니까. 의사는 "두 아이가 모두 역아기 때문에 호흡이 더 어려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쌍둥이 산모는 미리 살쪄야 한다
먹는 양이 많지 않아 몸무게는 26주까지 2kg밖에 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음식을 적당량 먹어줘야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사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커졌지만 의사들은 그저 "살찌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국내에 임신, 출산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다태아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조언하는 서적은 거의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지만 그저 다태아 임신과 육아가 얼마나 고단 한 지에 대해 하소연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 다태아 임신은 단태아 임신과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출산하는 시기도 40주가 아닌 37주고, 조산 우려도 훨씬 크다. 아이는 다태아에 비해 '작게' 나온다. 그래서 의료계 역시 다태아 산모를 '고위험 산모'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입덧이 끝나고 몸이 진정되면서 인터넷을 뒤져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Dr.Luke의 'When You are Expecting Twins, Triplets, Quads!(당신이 둘, 셋, 네 명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라는 책을 구입했다.
30년간 다태아 임산부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한 저자는 다태아 산모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다양한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특히 책 전반에 거쳐 "다태아 산모는 임신 20주까지 미리 살쪄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저자 기준에서 임신 20주까지 목표 증량 몸무게는 25파운드(약 12kg)다.
다태아 산모가 초반에 '미리' 살쪄야 하는 이유는 다태아의 성장이 단태아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태아는 단태아와 달리 32주쯤 되면 더 이상 성장이 힘들다. 단태아 만삭모만큼 아이들이 커버린 탓이다. 이미 몸속에는 에너지를 받아들일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저자는 "20주까지 필요한 영양소를 저장해 둬야 말기가 됐을 때 활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단태아 산모는 40주에 걸쳐 체중을 관리할 수 있지만 다태아 산모는 그 기간이 짧다는 의미다.
쌍둥이의 경우 통상 37주에 출산한다. (나의 출산 예정일은 36주다) 37주가 되면 두 아이의 몸무게가 합산 4~5kg에 이르기 때문에 산모가 버티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태아들의 크기 때문에 내장기관이 작아져 더 이상 영양분을 섭취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 것. 때문에 산모가 미리 살쪄놓지 않으면 막달이 될수록 일상생활과 태아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다태아는 단태아보다 성장할 시간이 짧은 셈이다.
※저자는 30여 년 간 수많은 다태아 산모를 연구한 '고위험 산모' 전문가지만 그의 의견이 절대적이진 않다. 국내의 저명한 의사들은 여전히 산모들에게 "살찌지 말라"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대상으로 한 산모들이 국내 산모에 비해 체형이 큰 미국인들이고 식습관이나 출산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몸속 태아의 크키가 커질수록(혹은 태아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내장기관의 크기가 줄어들어 영양분을 섭취하기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도 알맞은 크기로 태어났으면
잘 모를 때는 하루라도 빨리 출산을 하고 싶었다. 사실 쌍둥이는 35~37주에 수술로 출산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내심 좋았다. 한 주라도 덜 힘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한 달이나 빨리 '강제로' 세상 밖에 나와야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르게 아이를 몸속에 품는 시간이 40주로 정해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40주 안팎이 되면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밑으로 향하고 자궁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것 역시 거대한 우주의 힘일지 모른다. 그런데 내 아이들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그 위대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내 잘못은 아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한 책임은 분명 나에게 있다.
지금 단 한 가지 바람은 숨 쉬기에 알맞은 크기로 태어났으면 한다. 태어나자마자 좁은 중환자실에 누워 유리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역시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로 인한 가슴앓이 역시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