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고위험 환자다
"네 자리에서 혹시 나 구역질하는 소리 들려?"
어느 오후 점심을 먹고 돌아와 일하던 중 나는 건너편에 앉은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무 큰 소리로 '우웩' 하는 구역질을 한 후였다. 바로 주변을 돌아봤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선배가 살짝 웃었다. 남자 동기는 다행히 "전혀 들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지라 다소 민망했다. 임신 7주차쯤부터 지옥의 입덧이 시작됐다.
무한반복 구역질의 시작
입덧을 시작하고 15주~16주 차까지는 출근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출퇴근할 때는 지옥철로 유명한 9호선을 이용하는데 임산부 배려석 양보를 기대하는 게 사치일 정도로 사람이 많다. 압사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초반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도 못 쉴 정도로 40분가량을 서 있는 게 힘들고 불안한 정도였다.
하지만 입덧을 시작한 이후로는 오히려 내가 지하철에서 전염병 환자가 된 듯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헛구역질을 수차례 반복하자 가끔은 내릴 역이 아닌데 중간에 내려 잠시 앉아서 쉬다 다시 타곤 했다.
직접 운전으로 출근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운전 중 여러 차례 현기증이 찾아왔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어지러워 시야가 가려지는 일이 두어 번 발생하자 덜컥 겁이 났다. 입덧이 부끄럽다고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출근길에 데려다주고 퇴근할 때는 택시를 타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차멀미로 인해 종종 차를 도로에 세워 쉬어간 일도 많아졌고 비닐봉지가 준비되지 않은 차에서 토하는 바람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취객으로 오해하고 크게 화를 내는 일도 있었다.
입덧만 임신 증상으로 알고 있었는데 두통과 현기증, 요통 등 온갖 통증이 함께 찾아오니 자연스레 일상생활은 어려워졌다. 직업 특성상 점심, 저녁 자리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일주일에 4번 이상 자주 있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약속을 취소하는 날이 많아졌다.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걸 그대로 게워내는 일도 잦았다.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약속을 피했고,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느낌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임신 증상의 천 가지 얼굴 : 구역질부터 출혈까지
입덧은 언제 끝날까. 사람들은 흔히 16주께 입덧이 멈춘다고 하지만 친정엄마는 임신 후 아홉 달 내내 입덧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내 경우는 20주까지 극심한 입덧이 이어지다 이후에는 크게 줄었다. 주위에는 입덧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입덧이 심하면 태아의 성별이 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쌍둥이를 가졌기 때문에 입덧이 두 배라고들 하는데 그런 경우가 많지만 이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내 사례가 유독 더 별나고 유난스러울 때다.
12주가 넘어서면서 구역질에 현기증, 두통, 요통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게 과연 임신 증상인지 그저 내가 허리가 아픈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특히 12주를 넘어서면서 출혈이 종종 발생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동료와 함께 저녁을 먹다 기분이 이상해 화장실에 가니 옷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혈을 한 것. 이미 세 번째 출혈이었다. 미안하게도 동료를 식당에 내버려두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날은 유난히 출혈이 많았고 택시 안에서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의 출혈 때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평소처럼 생활한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람의 형상을 한 두 아기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 날은 출혈 양이 많아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의사는 "조산(유산)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무조건 누워만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쌍둥이 임산부는 이벤트(사건, 사고)를 많이 겪는다. 출혈도 단태아 임산부보다 잦고 조산 가능성도 높아 의학적으로도 '고위험 산모'로 분류된다. 이 날도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고 아이들도 무사했다. 하지만 나는 왜 자꾸 출혈이 발생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무리하게 출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쌍둥이 임산부는 두 명의 태아가 성장하기 때문에 소화 기관에 무리가 더 크게 오고, 5개월께부터 직장 휴직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며 나를 다독였다. 간단한 이유다. 몸속에 자라고 있는 아이가 둘이기 때문에. 입덧도 두 배, 자궁이 커지는 속도도 두 배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도 "출혈이 발생해 2~3개월 병가를 내고 쉬었다"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됐다. 회사에 사표를 낸 이들도 많았다. 다음 날 회사에 연차를 내고 누워서 생각했다.
'쉬어야 하지 않을까'
다들 무리하고 있어 유별난 게 아니야
그 날 오전에는 '왜 나만 이렇게 유난스럽나'하는 생각만 반복했다. 출산 후에도 긴 휴식에 들어가야 하는데 임신 중 몸이 아프다며 병가를 신청하는 게 우스웠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오후께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사람들의 사례를 보니 쌍둥이 임신 초기에는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났다. 한 여성은 임신 직후 한쪽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자 안과 의사가 "혈압이 괜찮으면 아이 낳고 시력이 돌아올 테니 잘 안 보여도 참아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입덧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빠졌지만 누군가는 먹덧(폭식, 과식)이 심해져 몸무게가 급증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임신 말기에 가서 임신 당뇨를 고민해야 한다. 자궁이 커지면서 뼈가 벌어져 갑자기 허리뼈가 찢어질 듯 아픈 증상도 있다. (흔히 '환도 섰다'라고 표현한다)
의사는 내게 "이 상태가 지속돼 자궁 경부가 짧아지면 입원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자궁 경부가 짧아지면 조산 우려가 있다. 쌍둥이 임신은 가뜩이나 30주 안팎에 조산하는 확률이 높고 (2014년 기준 조산 확률 57.3%) 저체중 사례도 단태아에 비해 높다. (2.5kg 미만 저체중 출생 2014년 기준 57%) 두 명 이상의 아기를 마지막 달까지 품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멀쩡한 임산부도 출산은 36~37주에 진행된다.
너무 일찍 태어나거나, 작게 태어나면 장기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니큐(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한다. 오기를 부리다 자칫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향해야 하는 것.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원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병가를 낸다고 회사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사표를 종용하는 회사가 더 많다) 회사에서도 먼저 휴식을 취하길 권했다. 특히 부장은 "몸이 좋지 않으면 길게 쉬어도 괜찮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며 배려하기도 했다. 모든 여건이 다른 임산부에 비해 훨씬 더 좋은 내가 쉬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저 '남들에게 유별 나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들 아프고 힘든데 그냥 무리하면서 일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 날 저녁 왜 나만 이렇게 유별난 건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병가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남들이 모두 무리하고 있다고 해서 나까지 덩달아 무리하는 건 나를 위해서도, 쌍둥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리고 여성으로 삶을 살아갈 내 딸들을 위해서도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병가를 낸 후 여러 가지 말을 들었다. 대부분은 건강을 염려하며 다독여줬지만 누군가는 혼자 임신했느냐는 말투로 조롱하기도 했다. 화가 났지만 동요치 않았다.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천 명의 임산부가 있다면 임신 증상은 천 가지 이상이다. 누군가는 비임산부보다 멀쩡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임산부는 엄밀히 말하면 환자고, 나는 그중 '고위험 환자'다. 새 생명을 낳는 숭고한 일을 한다며 호들갑 떨 필요도 없이 그저 산모의 건강 상태가 쉬어야 하는 상태다. 그러니 국가에서 법으로 조기 퇴근과 출산 전후 유급 휴직을 보장해주는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원해서 임신을 했지만 환자가 되는 것까지 원한 건 아니니까. 한 달여간의 휴식은 달콤했고 다시 생각해도 잘 한 결정이었다. 사실 그때보다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서는 지금이 몸도 무겁고 더 힘들지만 그때 쉬지 않았다면 지금은 정말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교사나 승무원은 임신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 다들 어느 일터에서 얼마나 무리하고 있을까. 우리 임산부라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사회로부터 '환자'라는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