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임신했지만 술고픈데

마셔도 될까

by 졔잘졔잘
제발 한 번만 술집에 같이 가주면 안돼?

고생스럽던 입덧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두어달 안정기를 보내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번만 나랑 같이 술집에 가줘. 내가 사줄게, 술집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술 마시고 신난 사람들을 보고 싶어.

알아주는 자칭 '애주가' 혹은 타칭 '알코올중독자'인 나는 임신 이후 지금까지 추울때는 사케, 더울 때는 맥주, 우울할 때는 소주, 쉬지 않고 술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남편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종종 원치 않는 혼술(혼자 술마시는 둘이 하는 술자리)의 세계로 이끌곤 했다.
임신 후 술을 마셔도 된다고?

대다수 임산부가 당연히 임신 기간 중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을 일을 나는 종종, 아니 자주 고민했다. (고민했다고 술을 마시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술의 어떤 성분이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 술은 이토록 마시면 안되는 것인가 궁금했다. 궁금한 마음에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의 저자 에밀리오스터는 이 책에서 꽤 많은 분량을 술을 마셔도 되는 여러가지 의학적 연구를 제시하는 데 할애한다. 그에 따르면 영국의 국립보건임상연구원은 의료 전문가들에게 "임산부에게 첫 석 달은 음주를 피하고 만에 하나 마시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한두 단위 이상은 마시지 말라"고 충고한다고 한다. 보건경제학자인 저자는 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연구 논문을 읽어본 결과 술에 대한 의료계의 권고에 대해 "신중함이 도를 넘었다"고 결론내렸다. 적당히만 섭취한다면 술이 임산부에게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결국 "술은 마시면 안되겠다"고 결론 내렸다.


에밀리오스터는 '폭음'은 해선 안되다고 말한다. 폭음은 임신 중 음주로 인한 여러 장애 중 하나인 '태아알코올스펙트럼장애'를 야기한다. 출생아의 체중이 가볍거나 머리 둘레가 작고 얼굴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이다. 또 발달지연, 사회성 부족, 학습 부진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폭음의 기준은 한 번에 다섯 잔 이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한 번에 15잔을 마시는데 5잔을 폭음이라고 한다는 데서 이미 나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조금 마시는 것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설명을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신체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다섯 잔이 폭음이고 누군가에게는 한 잔도

폭음이다. 알아주는 '주당'이지만 결론이 모호한 연구에 내 신체를 실험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될까, 모든 건 임산부 자신이 판단할 문제다. 솔직히 지인 중에도 임신 중 맥주를 마신 이가 있다. 한 명은 이미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고3이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부모에 따르면) 한다. 다른 한 명은 아직 임신 중이다. 그리고 재밌는 일은 숱한 연구 논문을 읽은 저자 역시 임신 중 음주를 하지 않았다.


커피는 마셔도 될까, 운동은 해도 될까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일에 대해서는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마시는 사람에 비해 너무 흔하게 많기 때문에 비교적 더 안심이 된 탓도 있다. 하루 한 잔 정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정도에 불과해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 비하면 문제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역시 나의 판단이다. 어쩌면 내 신체를 '카페인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활용한 것일지 모르지만.


회나 다른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엄격한 사람도 많다. 나는 장이 약해 장염에 쉽게 걸리기 때문에 임신 기간 중 회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밀가루 음식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먹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임산부의 판단이어야 한다. 아이를 낳다가 죽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를 위험에 빠지게 하고 싶은 사람도 드물다.(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아니라면) 커피를 마시든 곱창을 먹든 그 모든 일은 임산부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처럼 서점에서 책까지 찾아보면서 판단한 결과다. 옳고그름을 떠나 임산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는 상황인 만큼 임산부는 숙고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숙고는 매일 매 순간 이뤄진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임산부의 판단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카맛 빵을 먹고 있는데 커피를 마시며 모카맛 빵을 먹으면 안된다고 잔소리 하거나, 두통이 너무 심해 약을 먹는데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임산부 스스로도 이미 "두통을 한 번도 겪지 않는 임산부도 있는데 왜 나는 두통을 겪어서 약을 먹는 상황에 처한걸까"하며 자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굳이 임산부에게 스트레스를 한 겹 더 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술을 마시든 회를 먹든

임신을 하면 어떤 호르몬이 더 분비되는지 모르겠지만 임산부는 종종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다. 눈물도 많아지고 별일도 아닌데 서럽다.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해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든 나를 보고 한 지인은"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기를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그리도 서러웠다. 먹기 싫어서 안먹는 게 아니고 나 역시 이렇게까지 못 먹는 게 태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까 걱정했다. 하지만 입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먹는 족족 구토하는 내 심정을 다른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건 임산부 본인이 견딜 수 있는만큼 참다 결정한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굳이 한 마디, 두 마디 얹어 임산부에게 혼란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모든 결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2018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에어콘을 너무 세게 틀어놓아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을 먹지 못하는데"하는 걱정을 한다. 그러다 에어콘을 끄고 나면 너무 덥다. 임신하지 않은 사람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 임산부에게는 하나 더 있는 셈이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시아버지가 제왕절개를 앞둔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재차 말하는 장면을 봤다. 제왕절개든 자연분만이든 생전 처음 겪는 일이면 무섭고 두렵다. 굳이 누군가가 옆에서 조언하지 않아도 임산부 본인이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게 임산부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결정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제왕절개를 하면 아기가 위험하다는데 굳이 아프기 싫어서 제왕절개를 하는 임산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임산부에게 모든 관심을 끊어달라는 게 아니다. 배려를 담아 말했으면 한다. 이런 말이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저런 말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을지 고려했으면 한다. 어차피 비임산부가 하지 않는 고민을 매일 하루종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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