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쌍둥이는 불행일까, 다행일까

불행을 부르는 걱정을 멈춰줘

by 졔잘졔잘



대한민국 엄마들은 종종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꼭 시집가서 너 같은 딸 낳아봐라!"

나는 친정엄마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가... 나 같은 딸이라니!!"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나 같은 딸은 정작 가끔 엄마 밥이 그리워 친정을 찾고, 일상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엄마에게 물어본다. 아이를 낳으면 어떤가, 맞벌이를 하는 내가 친정 엄마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역시 엄마는 엄마다. 나의 기고만장함을 미리 알고 엄마가 주문을 걸었나 보다. 지금 나는 '너 같은 딸'을 '두 명' 낳게 생겼다.
나 같은 딸을 한 명 키우는 것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살 일이었는데... 그런 아이가 두 명이라니. 나의 이번 인생... 괜찮은걸까?


헉, 망했네


그 날은 배가 좀 아팠다. 일주일 전 작은 아기집 하나를 확인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일본어 과외를 하기로 했다. (임신 기간에는 아무래도 일에 집중하기 어려우니 다른 쪽으로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오만한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다.) 운동을 쭉 해오던 사람이 아니면 초반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조언이 많았다. 태생이 운동기피자인 나에게 마라톤은 힘든 도전이기에 포기했다. 캐나다 여행은 갈 수 있는 걸까, 올해 여름휴가는 가능한가... 쳇, 모처럼 짧고 굵게 즐겨보려 했는데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좋은 마음이었다. 어찌 됐든 간절히 원했으니까.


하지만 또다시 배 통증이 발생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병원에 가는 택시에서 두 번째 유산으로 밝혀질까 봐, 아니 아기집이 생겼으니 본격 유산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초조했다. 늘 병원은 남편과 함께 가지만 이 날은 혼자 갔다. 만약 또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이번에는 정말 그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울지 말아야지" 몇 번을 되뇌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는 의외로 "어? 응? 헉"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보니 왼쪽, 오른쪽에 아기집이 두 개 보였다. '말잇못'이라는 신조어는 이럴 때 쓰는 건가. 처음에는 불행한 일(=유산)이 또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에게 몇 번이고 "그럼 아무 일 없는 거죠?"라고 물었다. 의사는 "아기는 아직 안보이고 아기집, 난황(척상 후 태반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기 전까지 배아 발달의 양분을 제공하기 위한 영양물질, 아기집 안에 동그란 반지 모양을 하고 있다) 둘 다 확인했어요"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병원을 나오며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우리 좀 망한 거 같은데?"

남편은 대번에 "설마.. 쌍둥이??"라고 말했다. 참 철없는 우리 부부는 한참을 키득거렸다. 전화를 끊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현실이라는 번개가 머리에 '뚝'하고 떨어졌다.




할 수 있을까... 그 무의미한 질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복직하면 한동안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하루 두~세 시간 육아를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계획했다. 친정엄마는 지난해 환갑을 맞이했고, 시어머니는 올해 칠순이다. 애초에 이런 부탁이 염치 없지만 육아 도우미 월급이 한 달에 150만~300만 원인 세상이기에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다. (도우미 월급이 비싸다는 건 아니다) 좀 더 미안하고, 좀 더 감사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두 명의 갓난아기라니. 이건 얘기가 다르다. 사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이 노년이라며 일자리에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내모는 세대다.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보호 노동을 맡기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쌍둥이 육아는 너무 센 강도의 노동이다.


육아 비용은 또 어쩌나. 아이를 한 명 키우고자 했을 때 대략 한 달에 어느 정도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두 배가 될지 모른다. 덜 쓰고 희생하는 고된 삶이 시작되는데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우리 엄마처럼 무한정 희생하며 자식을 키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 그래도 내가 너 쌍둥이일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좋아했다. 실제로 엄마가 나 몰래 동생에게 "어쩐지 언니가 쌍둥이를 낳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처럼"넌 이제 어쩌냐 고생길이 훤하다"며 놀렸다. 순간 약이 오른 나는 욱하는 마음에 "그럼 낳지 말까? 지금 고민 중인데?"라고 소리쳤다.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그저 위로받고 싶다는 청개구리 같은 심보였다.

엄마는 갑자기 극단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한 내 말투에 다소 당황했다. "야, 다 키우게 돼있어... 한 명보다 두 명 키우는 게 더 재밌고, 한 번에 키우는 게 더 쉬워..."(거짓말) 라며 마치 쌍둥이를 키워 본 엄마인 것처럼 다독이기 시작했다. 괜히 화를 내긴 했지만 엄마와 대화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역시 엄마는 늘 내 편이라는 걸 이렇게 철없이 확인했다.



한동안 몇 번이나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답은 정해져 있기에(일부러 아기를 지워버리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테니) 그저 막막한 현실만 반복해서 떠올렸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게 하나도 없을까"하는 우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 않나. 그리 노력할 때는 죽어도 안되던 아기가 짧고 굵게 인생 한 번 즐겨보겠다고 신나 있을 때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자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시험에 빠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방법이 없지 않나. '또 하나의 아기집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머릿 속은 온통 두 아기가 함께 같은 옷을 입고 손 잡고 다니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자매일까, 남매일까 설레는 마음도 점점 커졌다.


뭐든 어떻게 되겠지, 유모차는 중고로 사면돼, 육아는 너무 고되니까 돈이 좀 들더라도 도우미의 도움을 받자, 돈은 덜 쓰자 등등 우리 부부의 회의는 또 길어졌다. 그리고 팀워크도 한 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나, 불행하지 않아

처음 얼마간은 가까운 지인에게 이소식을 전했다. 주변에 쌍둥이 부모가 없는지라 나에게 벌어진 일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소문 내기를 멈췄다. 생각보다 축하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누군가는 '수위 넘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맞벌이 하면서 쌍둥이 키우는 거 불가능해. 한 번 (낳을지 여부를) 잘 생각해봐" 라든가 "직장은 그만 둬야 하지 않아?" 같은 말을 쉽게 내뱉었다. "쌍둥이 두 명이 모두 건강하기 쉽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란 걸 잘 알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기분 나쁜 내가 예민한건 아닐까 싶어 "아... 그렇구나... 고마워"로 대화를 끝맺음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야 했다. 분명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나 설렘보다는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임신과 출산이 늘 축복은 아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더 많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엄마도 처음인데 한 번에 두 명의 아이가 나 같은 엄마를 만나도 되는걸까, 한 명의 인생도 모자라 두 명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다. 내 삶이 마음먹은대로 흘러가지 않는건 사실이지만 강제로 한 임신도 아닌데 눈, 코, 입, 손, 발까지 본 아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래서 메신저로, 전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걱정의 문장은 이제 감히 나를 흔들지 못한다.



지난 정밀초음파 검사(21주)에서 한 명의 아기가 엎드려 있어 발가락 갯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한 시간 넘게 계속 들여다보는 의사에게 "발가락이 다섯개고, 여섯개고 그걸 지금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만 하고 집에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저 아이들이 빨리 보고싶은 마음 뿐이다. 그래서 불행을 부르는 걱정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론도 정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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