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신을 포기했다

지긋지긋한 자연임신의 종결

by 졔잘졔잘
1년 내내 임신 준비만 했다. 아니다.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며 가진 돈을 털어 1년간 몇 차례나 해외여행을 가고 언제 '금주'를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며 매일 술을 마셨다. '계획임신'이 '난임'으로 바뀌는 동안 임신에 대한 지식만 많아지고 오히려 결심은 더욱 흔들렸다.





육아가 꼭 희생은 아니야


2017년 초, 처음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누구를 더 닮았을까. 그 아이는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를 키우는 재미는 어떤 걸까. 우리는 두 달 가까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 나는 내 인생의 어느 정도를 포기할 수 있을까. 처음엔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고 믿었다. 30대에만 할 수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었고, 단 하나도 놓고 싶지 않았다. 이를테면 남편과 단 둘이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은 '영원히' 혹은 예순이 넘어서야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 아프리카 여행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둘 다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면 전혀 다른 나라에서도 10년 정도는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또 일을 영원히 그만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처럼 영원히 자식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며 걸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저 호기심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쓰기 시작한 '아기를 키우는 나와 남편'이라는 동화는 끝을 모르고 장구해져만 갔다. 2세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이제는 자력으로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은 나의 이런 혼란한 마음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편은 2세를 원했지만 한 번도 먼저 말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자신의 생각을 종종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프리카 여행도, 캐나다 이주도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믿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됐을 때 여행을 떠난 부부도 있다. 캐나다, 뉴질랜드 이주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도 말했다. 아이와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이가 성장하면 아이가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만약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우리들의 부모님처럼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이든 해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남편의 이런 마음가짐은 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늘 모든 것을 해주려고만 하다 노년에 조급해지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그러지 않으셔도 나는 지금처럼 잘 컸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불안한 마음은 어느 순간 "그래, 우리는 희생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한 가족을 일구고 살아가는 거야"라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 해 봄 피임 모드를 풀었다.


매 달 받아보는 성적표, 이제 포기할래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나는 감정적으로 예민해졌다. 임신이 잘 되지 않자"아이가 없이 살아도 충분히 행복한데 왜 나는 굳이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해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하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숙제도 즐겁지 않았다.


결국 1년이 지나고 서른다섯이 되던 2018년 겨울,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매 달 병원에 가고 '성공 혹은 실패'를 확인하는 과정이 지난했다. 토익시험 결과를 받아보듯 임신테스트기를 사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다. 영원히 아이 없이 살겠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월의 어느 금요일, 퇴근 후 남편과 동네 인근 즐겨가는 와인바를 찾았다. 우리는 싸구려 와인을 세 병이나 마셨다. (우리는 소주파다) 술이 취하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한동안은 임신을 시도하고 싶지 않고, 의학적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고. 딱 3개월만 그냥 생각 없이 살겠다, 여차하면 회사도 그만두겠다고. 또 회사를 관두고 아이 없는 백수로 살아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남편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당시 우리는 8월에 시댁 식구들과 시어머니 칠순을 기념해 캐나다 여행을 가기로 계획한 상태였다. 남편은 오히려 "아예 마음 편하게 3개월 쉬지 말고 캐나다 여행 다녀온 후 가을까지 쭉 즐기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두려웠다. 지금도 노산이고 이렇게 임신이 어려운데 가을까지면 또 애꿎은 나이만 먹게 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그나마 낳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남편이 나를 설득했다. 언젠가는 꼭 2세를 가졌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 정도로 고민된다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을께 인공수정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 날 거나하게 취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각종 계획을 세웠다.


마라톤 대회에 나갈 거야


우선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매일 석촌호수를 두 바퀴씩 뛰겠다고 선언했다. 결혼 후 몸무게가 10kg나 늘어 건강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운동을 꼭 해야 했다. 또 연말께 어떤 주제든 책을 내고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마어마한 특종 기사를 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특종 기사를 쓰는 거 빼고는 모두 좋은 계획이야. 내일부터 당장 학원도 다니고 뭐라도 해"

남편은 특종 기사만큼은 제외하라고 말했다. 그건 '일'이니까. "일을 열심히 하지 말고 한정된 시간을 더 즐겼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말에 넘어갔다. 모든 게 수월했다. 나는 2주간 매일 석촌호수를 두 바퀴씩 뛰었고 너무 힘들었다.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니 몸무게가 3kg 빠졌고 집 근처 화실에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한 친구는 말했다. 인생의 썸(SUM)은 늘 같다고. 모든 게 잘 풀리는 듯했지만 신은 또 내게 심술을 부렸다.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고작 2주 살았다. 그러자 내게 '자연임신'이라는 선물이 찾아왔다.


이전 02화2. 자연임신을 노력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