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인 자연임신 1년
나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는 월경장애를 갖고 있다. 그저 월경이 규칙적이지 않은 질환인데 나의 경우는 생리를 한 달에 두 번하거나 혹은 몇 달간 하지 않는 증상을 열한 살 때부터 경험해 왔다.
생리를 하지 않는 달이 한여름일 땐 오히려 기뻤다. 무더운 여름을 깔끔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임신을 하려고 하니 나의 신체 상태가 원활한 임신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굳이 병원을 찾았다. 아이를 낳을 거라면 의학의 힘을 빌려 빨리 낳거나, 아니면 아예 아이 없이 살거나 나에겐 그런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임신
"아니오, 자연 임신을 시도해봐요"
하지만 의사는 인공시술 등 의학적 방법을 쓰기에 이르다고 말했다. 자연임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건 대체 뭐지?
자연임신이라 함은 두 사람이 사랑으로 관계를 갖고 이후 어쩌다 걸린 운 좋은 날에 착상이 되는 현상 아닌가. 여성은 1년 365일 가임기라 꼭 배란 시기가 아니라도 운수 대통한 날에 임신이 될 수 있다. 때문에 2세 계획이 없다면 항상 피임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의사는 "나는 그런 운수 대통한 사람도 아닌데 그런 행운을 갖도록 시도해보자"고 말하고 있었다.
의사가 말하는 자연임신은 '약물 요법'이다. 인위적이지만 인공(수정)은 아닌 자연임신인 셈이다.
처음 3개월가량은 '클로미펜'이라는 알약을 먹는 것으로 임신을 시도했다. 과정은 이렇다.
생리가 시작되고 이틀째쯤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잔망스럽게 흩어진 작은 난포 중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이 중 하나를 키워봅시다"라고 말한다. 임산부는 그 날부터 클로미펜을 두 알씩 3~5일 정도 복용한다. 이 약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 먹어야 한다. (나는 매일 출근할 때 현관 앞에서 약을 털어 넣었다.) 클로미펜은 배란을 유도하는 약으로 난임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 산부인과에서도 처방 가능하다.
주변에 다낭성인 경우가 없어 임신 관련 다양한 글을 읽었다.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서점에서 책도 찾아 읽었다. 클로미펜은 가장 널리 쓰이는 배란유도제지만 물론 부작용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속이 메스껍고 피로감이 심했다. 클로미펜 부작용이 심한 사람들은 한방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나는 한약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피했다.
"숙제 하는날인데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간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어느 날 수년 째 난임으로 마음고생을 하던 지인이 내게 슬며시 이렇게 고백했다.
난임자들이 '숙제'라고 부르는 이 날은 바로 배란일이다. 이 날을 기준으로 앞뒤 2~3일간 부부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생리를 시작하고 이틀째가 되면 병원을 찾는다. 의사는 클로미펜을 처방하고 정해진 날 숙제하는 날을 지정해 준다. 이 날은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다음 달 또다시 1단계부터 진행해야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산 중턱까지 올라갔는데 다시 밑바닥을 내려가 또다시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 일을 반복하는 기분을. 내 경우는 고작 1년 여 임신 준비를 했지만 3년, 길게는 10년간 임신을 시도하는 난임인들이 많다. 그 기간 동안 매 달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때문에 '숙제하는 날'은 너무나 귀중하다. 숙제를 했는데 임신이 안 되는 것도 미칠 노릇인데 숙제를 그냥 넘어가는 건 더욱 답답하다.
이런 이유로 유명한 임신 출산 카페에는 "숙제 날 남편이 회식"이라며 잔뜩 화가 난 여성들의 글도 종종 볼 수 있다. 결코 이성적이지 않지만 인간관계란 건 어차피 감성적이니까.
3월께부터 7월까지 약 4개월 간 클로미펜을 복용하고 주사를 맞고 숙제를 했다. 하지만 아무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가 날짜를 받아오고 그 날마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든 과정이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시간이 늘어질수록 "뭐 이렇게까지 해서 임신을 해야 하나, 그냥 하지 말까"하는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의사에게 성급하게 '다른 방법(=지름길)'을 문의했고 그렇게 공포의 '배 주사' 단계에 돌입했다.
배 주사는 배에 주사를 통해 약물을 주입하는 과정이다. 여러 가지 약물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메리오날'을 사용했다. 클로미펜을 먹을 때와 똑같이 생리 이틀째 쯤 병원을 찾아 많은 난포 중 '키울 난포'를 찾고 그 난포를 중심으로 나머지 난포를 터뜨린다. 나는 한 달에 3회, 가끔은 5~7회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능숙한 사람들은 주사를 구입해 집에서 직접 맞기도 해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데 집에서 스스로 주사 바늘을 배에 꽂아야 한다니,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별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결국 한 달에 평균 5회 정도를 순전히 주사만 맞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했다. 주사를 맞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2분인데 집에서 병원까지 30분 걸려 이동해 주차를 하고 주사를 맞고 또다시 출근하는 과정은 극도의 예민함을 유발했다.
그렇게 나는 인위적인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왔다.
서른다섯이 됐다.
**다낭성 난소증후군
가임기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나는 흔한 질환. 다낭성을 생리불순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무월경, 자궁내막증, 자궁내막암까지 발전할 수 있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앓는 여성은 임신이 어렵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유산율이 높다. 이를 위해서 병원에서는 크로 미 펜 처방을 하는데 클로미펜을 복용할 경우 다태 임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