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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Oct 04. 2018

9. 쌍둥이 태동은 화장실을 부른다

좋지만  불편한 너희들의 움직임

윽..
새벽 두 시, 나는 또 일어났다. 두어 시간 만에 배가 또 몹시 딱딱해졌다. 커다란 축구공이 방광으로 추정되는 몸속 어떤 기관을 아주 꾸욱 누르는 느낌이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야 하지만 빨리 갈 수는 없었다. 일단 몸 위에 놓인 살짝 두꺼워진 가을 이불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부른 배를 편하게 하기 위해 매일 껴안고 자는 U자형 임신 쿠션을 치운다. 그리고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침대 밑부분까지 쭈욱 내려가 다리를 바닥에 먼저 딛는다. 상체에 힘이 들어가면 방광을 누르는 힘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나는 스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에 내려와 일어난다.


29주가 되면서 매일 밤 이 괴상한 운동을 하루 두세 번 반복했다. 태동 때문이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탓인지 아니면 이제 눈을 깜빡일 정도로 완연한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 때문인지 태동은 늘 밤 사이 나의 잠을 방해한다. 방광을 바로 밟고 서 있나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잠에서 깨면 곧장 화장실로 가곤 한다. 몸이 무거워 빨리 달려갈 수도 없는데 서둘러 가야만 할 때는 난감하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갑자기 '주먹으로 옆구리를 후려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사실 태동은 신비한 경험이다. 누군가가 내게 '임신의 장점'을 물어보면 나는 단 한 가지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기분 좋은 순간은 있다. 바로 아기들이 움직일 때다.


처음 아기들은 배 안에 물고기가 살아서 꾸물거리며 돌아다니듯 배 안 쪽 피부를 간지럽힌다. 처음 태동을 느꼈을 때는 혼자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에서 물고기 여러 마리가 지나가는 느낌이 수 차례 반복됐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해, 간지러워"라고 말하고 키득거렸다. 정말 신기했다. 가끔 아기들은 '꺽꾹' 하는 소리를 내듯 딸꾹질을 하기도 한다. (느껴본 사람만 안다. 정말 '꺽꾹' 하는 소리가 촉감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움직임은 내 뱃속의 존재들이 진짜 살아있다는 사실을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알 수 있게 한다. 하루 종일 지치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혹시 아기들에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될 때 태동을 느끼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태동은 아기들이 건강하다는 신호기 때문에 태동이 잦은 건 늘 긍정적이다.


또 육체적으로 2세의 탄생을 실감하기 어려운 아빠에게도 태동은 즐거운 일이다. 가끔 아기들은 양쪽에서 번갈아가면서 발차기(인지 주먹질인지)를 하기도 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라서 커다랗게 부른 배가 '타 다다다닥' 하며 요동친다. 처음에는 손으로 만져도 잘 느껴지지 않던 움직임이 29주쯤 되니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빨라졌다. 처음 남편은 "태동 때문에 아픈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내가 (사실은 아플 때도 있지만) "아주 즐거운 일이야"라고 말한 이후부터는 아기들이 움직인다고 말할 때마다 한달음에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오곤 했다.



하지만 쾌락의 자극은 늘 찰나다. 잠깐 좋고 나면 다시 내 육체에는 불편함과 스트레스가 남겨진다. 일단 아기들이 커질수록 바른 자세로 눕는 건 불가능해진다. 몸의 장기관을 눌러 숨 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쪽으로 돌아 누워 있다 보면 바닥에 닿은 쪽에서 쿵쿵거리는 느낌이 난다.


'불편한 걸까' 걱정이 되지만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눕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신 전과 달리 몸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엎드렸다가는 아기들이 짓눌릴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꿔야 한다. 소파에 누워 TV를 볼 때마다 이리저리 낑낑거리는 나의 모습을 남편은 측은하게 바라본다. 가끔 손을 잡아 일으켜주기도 하지만 그런 자세는 상체에 힘이 들어가 오히려 불편하다.


아기들이 커질수록 화장실을 찾는 횟수는 크게 늘어난다. 화장실에 가는 길이 천릿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몸은 천 근 만 근 무거운데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그 짧은 거리를 1시간 동안 수 차례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페에서 화장실이 좌변기가 아니면 자리를 옮기는 수밖에 없다. 쪼그리고 앉았다가 무거운 배에 눌려 더러운 바닥에 주저앉을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만 덜하면 좀 더 참을 수 있는데 수시로 방광을 꾹꾹 누르는 통해 화장실 가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는 게 가장 힘든 지점이다.


조금만 먹어도 위가 꽉 차는데(위가 쪼그라들어서) 아이들이 움직이면 구역질이 나올 때도 있다. 일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발차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가만히 좀 있어"하고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가끔 사람들이 "아기들이 들어"라고 경고할 때마다 나는 "얘들도 알아야지. 지금 내가 먹여 살리려고 돈을 벌고 있는데"하고 답했다.


임신한 이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태동에 대한 기억은 다들 아름답기 짝이 없다. 그들의 기록이 거짓은 아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 짜증이 잔뜩 난 날에는 아기들은 잠잠하다. 마치 화가 난 모체(엄마)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그러다가 화가 나 탄산음료, 커피 같은 임산부에게 좋지 않다고 알려진 음식물을 섭취하면 아이들은 사춘기 청소년처럼 주먹으로 배를 치며 반항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태동이 있을 때 나의 '예비' 딸들과 종종 이런 교감을 했다(고 믿는다).


태동은 분명 숭고한 경험이다. 나의 임신 기간은 온통 '내가 쌓아온 인생과 단절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아기들이 움직일 때면 유일하게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쩌면 내 인생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겠지만 그 미래 역시 내 육체가 향해갈 또 다른 세계가 아닐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가끔' 했다.


태동이 없을 때는 사실 아기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몸과 내 기분만이 관심사였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할 수 없게 된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고 짜증만 났다. 하지만 태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아기들이 어서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아기들이 빨리 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몸속이 아기들에게 너무 비좁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커졌다.  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로소 이 아기들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비슷한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임신 전 나는 '임신이 여성의 인생을 바꾸는 걸까 아니면 사회가 임신한 여성의 인생을 바꾸는 걸까' 궁금했다. 물론 사회도 임신한 여성의 인생을 흔든다. 하지만 임신 그 자체도 여성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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