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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Nov 27. 2018

16. 제왕절개 출산, 직접 해보니

‘리얼’한 제왕절개 후기 (1)

친정엄마와 집에 있는데 택배가 왔다. 인터넷을 통해 주문한 파란색 임산부용 원피스였다. 임산부용이기 때문에 통이 크지만 출산 후에도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내일 애를 낳는데 이 옷을 왜 샀어?"
"새 옷 입고 새 출발 하려고"
안녕 나 갔다 올게


그 날이 왔다. 생애 첫 배를 가르는 날, 난생처음 아이를 낳는 날,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엄마'가 되는 날. 일주일간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4박 5일 입원 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과 3주간 산후조리원에서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산후조리를 위해 입을 히트텍 위아래 내의를 고이 접었고, 레깅스, 속옷도 챙겼다. 조리원에서 3주간 쓸 여성용 위생패드와 아기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산 옷, 배냇저고리도 담았다. 아기들이 쓸 손수건 열 장과 속싸개(커다란 얇은 담요), 겉싸개(이불)도 넣었다. 그리고 가방의 다른 한 칸에는 4박 5일간 남편이 덮을 이불도 가방 한편에 쌌다. 유럽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는 듯한 규모의 짐이었다. 그리고 가방 위에 파란색 원피스와 커다란 패딩 코트를 얹었다.  여행 가기 전날 설레고 두렵듯,  11월 19일 밤은 정말 그랬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고, 배가 고팠다.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술 전 날은 금식이다. 수술은 오전 10시 예약이지만 아침 7시께 병원에 도착해 채혈 등 각종 절차를 밟았다. 전 날 12시부터 아무것도 먹어선 안됐는데, 그런 날은 어쩐지 괜히 더 배가 고프다. 사실 수술 전 날은 꼭 집 앞에서 비싼 소고기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입맛이 별로 없었다. 그저 밤 12시부터 수술이 끝난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무려 31시간을 굶어야 하기 때문에(물도 마실 수 없다) 뭐든 배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배가 고프면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해지니까.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편이 운동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평소 자주 가던 카페에서 좋아하는 모카빵을 먹기로 결심했다.


"오빠, 임신 당뇨인데 일주일 동안 안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어. 아기들이 둘 다 2Kg인데 일주일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우려가 됐지만 나는 3500원짜리 모카빵을 우걱우걱 다 먹어버렸다. 마지막 만찬 치고는 간소했지만 대신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자기로 했다. 이제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을 숙면이니까.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딸의 출산 길에 함께 하려고 엄마가 왔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수술 시간이 10시니, 한 시간 정도는 엄마, 남편과 수다나 떨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은 채혈을 하자마자 나를 수술실로 이끌었다.


"벌써 간다고요?"

"네, 보호자만 함께 가서 옷 갈아입으시고 혼자 수술실로 들어가세요"


현실적인 출산은 묘한 감정에 빠질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한없이 센티해질 수 있으니까. 나는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남편에게 입고 온 파란색 원피스를 건넸다.

"오빠 안녕, 나 갔다 올게"


수술은 7분... 미숙아의 탄생

수술 전 두어 시간은 초음파 검사 등 각종 검사가 진행됐다. 수술 전 대기실에 누워 혼자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대학병원 출산은 괴담이 많다. 예를 들면 수술을 하는 동안 모든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모여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지도교수가 강의를 하면서 수술을 한다거나, 마취 상태에 있는 환자를 두고 의료진들이 낄낄거린다거나... 다행히 나에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의료진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처음 하는 개복 수술이라 싸늘한 분위기에 무서움이 커졌다.


초음파 검사에서 여전히 아기들의 몸무게는 2.2Kg, 2.0Kg. 간호사들이 둘째 아기가 미숙아로 태어나면 니큐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반복해 나의 두려움을 키웠다. 그리고 9시가 좀 넘어 수술실로 들어섰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의 양 팔을 벌려 어딘가에 고정시킨 후 하반신 마취를 한다. 하반신 마취 주사는 허리 척추에 놓는다. 이를 위해선 몸을 새우 모양으로 둥그렇게 말아야 한다. 배가 너무 커져 버린지라 새우등 자세는 조금 힘겨웠지만 괜찮았다. 하반신 마취 주사가 너무나 아프다는 말을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갔고 일반 주사처럼 따끔한 정도였다.


왼쪽 척추 부근에 주사를 맞자 왼쪽 다리부터 마취가 시작됐다. 누군가가 내 몸을 만지는 느낌이 계속됐다.

"마취가 제대로 된 건가요? 느낌이 나는데..."

"만지는 느낌은 계속 나요. 수술할 때 아프지 않게 하는 주사예요"


수술을 위한 각종 준비가 끝나자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다른 산모들이 쓴 수술 후기에서 울었다는 내용이 좀 이해가 안 갔는데 수술대에 혼자 (팔, 다리가 고정된 채로) 누워 있으니 공포가 엄습했다. 9시 30분이 되자 그간 나를 담당한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왔다.


"울지 마세요, 금방 끝나요!"

언제나 파이팅 넘치는 담당 의사는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줬고 조금 심호흡을 하자 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지만 차가운 물체가 배꼽 아래에 닿았고, 온몸이 좌우로 한참을 흔들리더니 몸속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쑥' 하고 빠져나갔다. 그리고 1~2초쯤 지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흐엉. 나는 정말 큰 소리로 울었다. 룰루가 세상에 나왔다. 의사는 "울지 마세요. 심호흡하셔야 해요"라고 말했고, 얼핏 들어보니 아기의 몸무게가 지금까지 알던 것보다 훨씬 큰 2.6Kg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엄청 컸구나 우리 딸. 그리고 잠시 후 나에게 아기의 얼굴을 보여줬다. 근데... 응?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막 태어난 신생아의 얼굴은 천사 같진 않다. 하지만 생각보다 검은 머리숱이 많았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감동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몸이 움직였다. 덜컹덜컹. 좀 더 여유로워진 몸속 공간에서 작은 무언가가 아까보단 수월하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또 1~2초 후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랄라였다. 랄라 때부터는 우느라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눈 한 번을 마주친 후 아기들은 떠났다. 남편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또다시 몸이 움직이고 개복한 부분을 꿰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쯤 "심호흡하시고요, 지금 힘드니까 잠드는 수면 주사 놓아드릴 거예요"라는 말이 들렸다. 시계를 쳐다보니 37분이었다. 두 아기를 힘겹게 8개월 넘게 품고 있었는데 그 아기들을 꺼내는 데 고작 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자연분만에 비해서는 출산의 고통도 당연히 덜했다.(솔직히 나는 출산의 고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감동의 크기는 똑같지 않을까 싶다.


수면 마취 이후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사 놓아드릴게요'의 '요'가 끝나기도 전에 그냥 바로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아까 누워있던 대기실이었다. 두어 시간을 잠들었다고 한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옆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 "둘째 아기는 몇 Kg인가요?"하고 물었다. 첫째 아기가 기대보다 컸기 때문에 '니큐행'이 우려된 둘째도 클 것이라 생각했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간호사는 1.9Kg이라고 말했다.


"네? 그러면 지금 어디 있나요?"

"체중은 미숙아인데 상태가 좋아서 모두 신생아실로 갔어요"

나는 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중환자실을 면했구나!  아기가 니큐(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일주일, 한 달 정도 그곳에서 성장해야 한다. 2Kg이 안되면 니큐로 보내지는데 자가호흡을 하면 니큐행을 면한다. 나는 4박 5일 입원 후 산후조리원에 가야 하는데, 한 아기만 데리고 가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임신 중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다. 둘 다 신생아실이라니. 너무 다행이었다. 잠에서 깨고 10분 여 후 침상에 누운 채로 누군가의 이끌림으로 입원실로 향했다. 병실로 가는 복도에서 시아버지를 봤다. "어? 아버님!" 하고 부르자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모두 달려 나왔다. 입원실에는 보호자 한 명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해 모두들 거기서 인사를 해야 했다. 나는 "면회 시간에 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입원실로 갔다. 엄마와 눈이 맞았는데 또 울컥해 눈물이 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병실에 가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싱글벙글하며 좋아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근심이 가득한 채로 병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누운 채로 "왜 그래? 나 정말 괜찮아" 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때까진 너무 괜찮았으니까. 너무 힘겨웠던 '임신'이 끝나고, 그렇게 기다리던 '출산'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홀가분했다.


그리고 후폭풍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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