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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Nov 29. 2018

17. 출산 후에... 출산後愛

진짜 '리얼'한 제왕절개 후기 (2)   

아기를 낳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제왕절개 수술이 끝난 직후 입원실로 옮겨진 나는 하루동안 꼼짝도 못하고 오로지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제왕절개 수술 후에 환자는 다음 날까지 고개를 들면 안 된다. 수액이나 마취제가 역류해 구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들라고 해도 들 수가 없다. 다리에 마취가 완전히 풀리는 데도 7시간 가까이 걸리는 데다 수술 통증 때문에 상체를 드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물도 마실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산 송장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손수건을 하나 꺼내 물을 적셔 점점 말라가는 입에 갖다 대며 갈증을 해소하고 서른 시간을 버텼다.



출산 후에: 호스문어의 탄생
 

성격상 가만히 누워 있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임신 기간 5Kg가까이 커진 아이들이 배와 척추를 누르는데도 지겹게 누워있기만 했다. 그런데 출산 후에도 와병생활이라니. 허리가 아파 밤새 몸을 뒤척이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새벽 6시부터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 갈증이 심했다. 눈을 뜨니 간호사가 소변줄을 체크하러 들어왔다. (제왕절개 후 하루동안은 소변줄을 차야 한다) 한쪽 팔에는 이미 무통주사, 수액주사, 진통제주사 등 세 개의 주사가 줄줄이 달려있고 소변줄까지 차고 있으니 나는 마치 호스팔이 달린문어 같았다. 진통제 호스에 진통제를 추가하는 간호사에게 나는 "지금 물 좀 마시면 안되느냐"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웃으며 "조금씩 마시세요"라고 대답했다. 할렐루야.


그 때부터 가져온 빨대형 물통(제왕절개를 앞둔 산모들에게 꼭 미리 준비할 것을 권한다) 을 꺼내 쉴새없이 물을 마셨다. 30여 시간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물통이 너무나 작았다. 그리고 오전 8시쯤 됐을 때부터 상체 일으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인터넷 출산관련 카페에서 수술 후기를 샅샅이 읽은 결과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움직여야 했다. 두어 달 앞서 출산한 친구도 "움직이는게 불가능하지만 움직여야 빨리 걸을 수 있다"며 무조건 죽을 각오로 걸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한 곳이 '억'소리 날 만큼 아팠지만 상체를 머리부터 가슴까지, 머리부터 배까지 들어올리려 노력했다. 상하로 움직이는 병원 침대를 조절하며 일어나기 운동을 한 결과 세 시간여 만에 침대에 등을 댄 채(병원 침대 조작에 의지해서) 상체를 들 수 있었다.

 


마침 상체를 일으켰을 때 의사가 회진을 왔다. 그는 오전 10시께부터 앉아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일어나셨어요?"

"어쩌다 일어났는데 아파서 다시 누울 수가 없어요, 선생님... 진퇴양난"


결국 첫 끼니는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해결했다. 간호사는 소변줄을 빼고 오전 10시까지 화장실에 다녀오기 '미션'을 줬지만 화장실은 그보다 한 참 후에나 갈 수 있었다. 이후 병실 끝에서 끝까지 걷기를 성공하고나니 오후 3시가 됐다.


다음 날 오전 모든 산모들이 소독을 위해 한 곳에 모였는데 멀쩡해 보이는 산모는 자연분만 산모들 뿐이었다. 제왕절개를 한 어떤 산모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나는 그 중 가장 멀쩡한 사람이었다) 자연분만은 긴 시간 진통을 한 후에 출산을 하기 때문에 출산 자체가 힘들고, 제왕 절개는 출산 이후 긴 훗배앓이에 시달려 고통을 할부로 나눠서 받는다는 그 말이 실감났다.


그러면 이 '제왕절개 할부'는 언제까지 지불해야 할까?  수술이 끝나고 4박5일 입원만 하면 해결되는걸까? 천만의 말씀. 이미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선배맘들에 따르면, 길면 1년까지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지속된다. 산후조리원에 산후 필라테스 교육을 하러 온 강사는 "6년 전 출산했는데 아직도 비 오는 날은 가끔 욱신거린다"라며 수업 중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수술 3주 정도 후에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그 때도 상처 부위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약을 6개월 어치나 처방해준다고 하니, 자연분만과 비교해 고통의 총합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수술 後愛 :진짜 후폭풍의 시작


각종 치료를 받은 후 병원에서 4박5일만에 퇴원해 '꿀'이라는 산후조리원에 입소했다. 사람들은 산모들이 대개 본격 지옥육아가 시작되기 직전 이 곳에서 '꿀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고 알고 있다. 당연히, 당연히 집에서 홀로 육아하는 것과 비교하면 조리원은 '꿀'이상이다. 아기는 조리사들이 도맡아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다 산모들이 노력해서 해야 할 일이라곤 오로지 모유수유 정도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입소한 조리원은 아침과 저녁, 하루 2회 신생아실을 소독하는 시간에 아기를 각 부모의 방으로 보낸다. 이를 ‘모자동실’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이 시스템이 영 마음에 안들었다. 수백만원 하는 돈을 내고 산후’조리원’을 온 이유는 조리를 잘 하기 위해서 아닌가. 왜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아이를 봐야 하나. 그것도 하루에 두 번이나!


하지만 입소 하루만에 이 두번의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깨달았다. 조리원은 쌍둥이 산모인 나를 배려해 일부러 신생아실과 가장 가까운 방을 배정해줬는데, 나는 내 아기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 하루동안 몇 번이나 통유리로 된 신생아실 앞을 기웃거렸다. 어린왕자처럼 저녁6시에 오는 아가들을 4시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가끔은 방을 청소하고 기다리기도 했다.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생과 친구들은 “그게 일주일 정도 갈거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일주일도 못갔다. 나흘쯤 되는 어느 날 남편도 없는데 두 아기가 동시에 자지러지게 우는 모습을 보며 ‘멘붕’에 빠진 것. 나는 얼굴이 시뻘개진 두 딸을 보며누구를 먼저 안아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그런 고민도 사실은 사치였다. 빨리 안아서 한 명을 달래고 잠잠해지면 순식간에 내려놓고 다른 한 명을 달래야 한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UFO쿠션’이나 ‘스윙바운서’같은 육아 아이템이 왜 필요한지 체감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간이 임신 때처럼 오로지 불행함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임신 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이 선택이 맞는걸가...”라는 물음이 도돌이표처럼 계속해서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일이 아니군”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너무 보고싶다”는 비이성적 감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마치 나쁜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여자처럼. 진짜 후폭풍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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