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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Jan 16. 2019

20. 젖병의 특징

육아는 젖병을 이해하면서 시작한다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아니, 여러 가지 있다. 나의 경우 젖병 삶기가 그 중 하나다. 젖병을 이해하는 일은 출산 두어달이 지난 지금도 고단하고 무용하게만 느껴진다.


젖병의 특징들

우선 젖병은 비싸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브랜드의 젖병을 구입했는데 소셜 커머스에서도 두 개에 2만원 대 중반에 팔았다. 신기한 건 젖병에 젖꼭지가 포함되지 않는다. 젖꼭지는 6000원 안팎인데 아기가 커갈수록 사이즈도 점점 커진다. 나 역시 처음 조리원을 퇴소하며 가장 작은 'ss' 사이즈 젖꼭지를 구입했는데 최근 젖꼭지를 'S' 사이즈로 바꾸는 중이다.  


이렇게 비싼 젖병은 몇 개나 필요할까. 젖병은 가능하면 많이 있는 게 좋고, 엄마가 게으르면 게으를 수록 많이 구비해 놔야 한다. 태어난 지 한 달여 된 아기들은 짧으면 한 두시간, 길면 세 네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어야 한다. 나의 경우 1호 아기는 아침 6시께 일어나는데(사실은 밤새 진행된 여러 번의 잠-울음의 연속이지만) 이 때 30분 정도에 걸쳐 첫 끼를 먹인다. 첫 끼를 먹는 양과 속도는 아기에 따라 다르고, 같은 아기여도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100ml를 먹여야 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30ml만 먹었다면 한 두시간 후에 또 배가 고프다는 신호(울음)를 보낸다. 아침 사이에 한 명의 아기에게 두 개의 젖병이 소비된 셈이다. 아기가 두 명인 나는 초반에 이런 식으로 6~7개의 젖병을 아침마다 소비했다. 수유가 익숙하지 않다보니 아기가 잘 먹지 않으려 하면 금방 포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30분~1시간이 걸려도 꾸역꾸역 먹인다)


현재 아기들의 수유 간격은 3시간 정도인데 이 말은 6시에 일어난 아기가 6시, 9시, 12시에 분유를 먹는다는 뜻이다. 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름을 시키고(트름을 시키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종종 토하기 일쑤다), 칭얼거리고 우는 아기를 달래다 보면 한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점심때 까지 세 번 해야 하고, 쌍둥이를 키우는 나는 6번을 해야 한다.


아침에 6개의 젖병을 사용한 후 점심 때는 잠에서 깨 칭얼거리는 아기들을 돌아가면서 달래야 한다. 똥을 싸면 부둥켜 안고 화장실로 달려가 똥 범벅이 된 엉덩이와 허벅지를 씻겨 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후 2~3시가 되고 또 한 아기가 배고픔의 신호를 보낸다. 처음  젖병을 6개만 구입한 나는 아기는 당장 배가 고프다며 자지러지게 우는데 분유를 타 먹일 젖병이 없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젖병은 일반 그릇처럼 세제로 설거지만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삶아 소독해야 한다.  분유는 세균이 빨리 증식하는데, 아기들의 입에 들어가는 만큼 소독이 필수다. 하루를 오롯이 아기 돌보는 일만 하며 보냈는데 끼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종종 좌절했다. 결국 젖병은 12개로 늘어났고 20개를 사용한다는 어느 쌍둥이 엄마의 후기를 읽고 나의 게으름을 토닥였다.


젖병 씻기, 그 무용함에 대해

젖병의 특징을 이해할수록 나는 육아가 얼마나 인정받기 힘든 일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젖병 하나를 깨끗하게 씻고 소독해 정갈하게 정리해 놓는데 필요한 노동은 꽤 수고스럽다. 젖병을 젖꼭지, 연결링과 분리하면 3 개의 부속품이 된다. 이 '젖병 무리들'을 아기 전용 세척솔을 이용해 따로따로 세척한 후 뜨거운 물이 팔팔 끓는 커다란 냄비에 삶는다. 삶아진 젖병은 물기가 없어질때까지 깨끗하게 말려야 한다. 세척을 하는 데 이렇게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불과 한두시간 만에 젖병은 다시 허연 분유 기름때를 묻혀 설거지통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또 다시 미끌미끌한 젖병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닦는다. 젖병세척은 아기를 먹이고 살리는 너무 중요한 일인데, 그 노동이 너무나 단순해 누구도 가치를 산정해주지 않는다. 처음 젖병을 삶으면서 나는 이게 얼마나 무용지물 같은 일인가 생각했지만 지금은 왜 누구도 이 존엄한 일의 값어치를 따지지 않는걸까 분노한다.


젖병 세척 뿐일까. 육아의 모든 과정은 사람을 살리고 키워내는 일이지만 그 노동이 단순하고 서로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어 가치를 따지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봄 노동자를 칭찬하기'로 가격을 대충 얼버무리는 듯하다. "엄마는 대단하다, 엄마는 존엄하다, 엄마는 위대하다" 등의 감언이설로 노동의 비용을 떼우는 것. 필요한 노동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지 않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끝이 없기 때문에 세상은 노동의 가치를 따져묻고자 하는 돌봄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젖병 세척 노동은 얼마일까. 시급이 1만원도 되지 않는 세상인데, 하루종일 젖병을 세척하면 시간 당 젖병 하나를 살 만큼의 돈은 벌 수 있을까. 내 하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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