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조물주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빠 조물주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조물주는 사람이 아니겠지) 평생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해야 하는 거까진 그래, 그런가 보다 했어. (생리는 평생 하지 않아) 그래서 임신을 해야 해서 굳이 내가 인류의 존속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그게 인간을 만든 이유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자고. 그러면 뭐, 예를 들면 모유라도 남자한테서 나오게 하든가(응?), 아니면 생리를 원하지 않을 때 멈출 수 있도록 해주든가(응??) 뭔가 이 지구의 존속을 위한 신체적 책임을 좀 덜어줘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조물주는 남자인가? 아니면 여자한테 화가 많은가? 혹시 여자 아닐까? 근데 충격적인 건 심지어 내가 이런 불공평한 우주에 딸을 둘이나 낳았네. 세상에.
산후조리원에서 기절한 사연
그날 밤 나는 산후조리원 방에서 속사포처럼 남편에게 얼굴도 모르는, 아니 얼굴이 있는 형체 인지도 모르겠는 '조물주'에 대한 말같지 않은 저주를 퍼부었다. 이미 낮에 한 차례 친정엄마,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반복해서 했던 말이다. "꿀 같은 시간만 보내도 모자라다는 산후조리원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임신 이후 벌써 다섯 번째) 응급실 신세를 졌다, 의사는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괜찮지 않다, 무섭고 화가 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산후조리원 생활은 임신 기간에 비해 모든 게 좋았다. 당연하다. 몸이 가벼워지니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누워있지 않아도 된다. 임신성 당뇨는 출산과 함께 사라진다고 해 먹고 싶은 것도 가능하면 마음껏 먹었다. 게다가 산후조리원의 '꽃'인 마사지도 매일 받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마사지를 받은 후 족욕실에서 족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사지사가 족욕을 위해 물을 받고 그 위에 향기가 나는 가루를 뿌려줬다. 그 날따라 물이 너무 뜨겁게 느껴졌다. 발을 담그고 5초 정도 있었을까.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눈이 자꾸 스르륵 감겼다. 왜 자꾸 눈이 감기지...? 어쩐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날이라 여겨져 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발을 빼고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마사지사의 부축을 받고 족욕탕 옆에 엎드려 있었다. 마사지사는 "방에 데려다 드릴게요"라고 말했고 함께 복도를 걷다가 또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방 문 앞에 누워 있었다. 조리원의 도우미 이모님들이 밖으로 나와 분주하게 구급차를 부르고 있었고 눈을 떴는데도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부축을 받아 침대로 누워 숨을 몇 초 가량 숨을 고르자 서서히 까맣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면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급차가 왔고 나는 산후조리원 가운만 입은 채 근처 병원으로 실려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구급차에 누워 병원에 도착할 때쯤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멀쩡해졌지만 일어나면 헐떡거릴 정도로 숨이 찼다.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고 30분을 넘게 대기하면서 상태가 점차 호전됐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을 때는 거의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가 됐다. 의사는 "기립성 저혈압일 수 있는데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립성 저혈압은 갑자기 일어날 때 나타나는 빈혈 증상으로 누우면 상태가 호전된다고 한다. 그게 왜 갑자기 생겼느냐고 의사에게 묻자 의사는 "글쎄요, 출산 후에는 '원래' 그래요. 별일 아니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원래 그런 고통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조리원에 돌아오니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처음 보는 산모마저도 "괜찮으냐"라고 물었고, 마사지사는 방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날 마주친 다른 산모들과 대화를 나누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산모들이 '원래' 그런 통증을 한 두 가지씩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쓰러진 정도가 아니더라도 빈혈은 모두가 겪는 흔한 고통이었다. 해결책은 '철분약'이다. 산모들은 출산 후에는 철분약을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한 산모는 임신 중 철분약의 중요성을 간과해 제왕절개 수술 후 출혈이 너무 심해 염라대왕을 만나고 올 뻔했다는 무시무시한 무용담을 늘어놨다. 나는 출산 후 지금까지 발바닥과 발등뼈 부분이 아파 슬리퍼를 신기도 어려웠는데, 그저 '아기를 안다가 발을 헛디뎠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모든 산모들이 똑같은 증상을 호소했고, 한 산모가 "근육이 뭉쳐서 그래요, 마사지받을 때 말하면 풀어줘요"라고 해결책을 내놨다. (실제로 해당 부위를 이틀간 마사지받은 결과 통증은 어느정도 해결됐다)
손가락 관절은 모두의 숙제였다. 난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하니 손목과 손가락이 아플 수밖에 없다. 근데 이러지 않아도 출산 후에는 뼈와 관절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약해진 상태에서 엄마가 아기를 하루 종일 안고 있어야 하니 관절에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 지인은 조리원에서 우울하고 외롭다고 울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출산 후 울면 시력이 나빠진다고. 그리고 실제로 시력이 나빠졌다고 한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대체로 대부분 현상에 '왜'를 알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임신에 관해선 이런 탐구를 포기했다. '왜'냐고 물으면 모든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라고 답하니까. 대화를 나눈 산모들은 모두 "원래 그렇대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대요"라고 말했고 나도 그랬다.(실제로 이런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흑사병도 고치고, 암도 고치고, 에이즈도 치료할 수 있게 됐다는데, 왜 대체 임신으로 인한 각종 별 거 아닌 증상들만 '원래 그렇다'는 말로 해결되는 건지. 약도 없고(심지어 약이 있어도 먹을 수
없고) 원인도 모르고 그냥 '내 호르몬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모든 게 끝난다니.
새 가족의 탄생은 ‘원래’ 가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원래 그런 증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평생 나의 건강을 옥죌 때 발생한다. 5년 전 아들을 낳은 친구는 회사 사정 때문에 출산 직후 복직했고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 결과 5년 후 병원에서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나타난 통증이 지속됐다"는 진단을 받고 종아리 수술을 했다.
임신 중 산후조리 관련 TV 다큐멘터리(SBS 스페셜, 산후조리의 비밀- 개인적으로 임산부와 가족들에게 꼭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를 봤는데, 이런 '유별난 산후조리'는 우리나라 여성들만 하는 게 아니다. 지구 반대편 과테말라에서도 출산한 여성은 한 여름에 두꺼운 옷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산후조리를 한다. 심지어 귀도 솜으로 막고. 인도, 이슬람 문화권은 찬물을 마시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수한(그리고 비싼) 공간이 있어 '아기 돌보는 일'을 타인에게 맡기고 산모가 쾌적한 환경에서 쉬게 하지만 공간이 다를 뿐 방식은 대부분 나라가 유사했다. 우리나라의 '고가 산후조리'를 비난하는 이들은 흔히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산후조리를 오랜 시간 연구한 미국, 유럽의 학자들 중에는 "아시아의 산후조리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닌 내 생각도 그렇다. 꼭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가사와 아기 돌봄 노동을 도와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정부에서 집으로 방문하는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병원 퇴원 후 집으로 가는 산모들도 많다) 상식적으로도 자연분만을 하고 나면 골반이 틀어지고, 제왕절개를 하면 수술 후유증이 생긴다. 어떤 방식이든 몸을 출산 이전의 상태로 돌려주려는 '쉼'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집안일과 육아는 그런 회복을 방해한다.
출산은 끝났는데, 출산의 고통은 이어진다. 그런데 동시에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멈출 방법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게 엄마들의 삶이다. 아픈데 아픈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은 아 수년 후 불현듯 찾아온다. 가족이 탄생할 때 ‘원래’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새 가족을 만드는 데도 그렇다. 꼭 핏줄이 아니더라도 온 가족 구성원과 마을과 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그 가족은 유지되기 어렵지 않을까. 원래 가족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