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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Dec 28. 2018

19. 맘카페는 엄마의 휴게실이다

맘카페를 위한 변명

나는 맘카페 좀비다. 임신을 준비할 때 누구에게도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런 고민을 공유해봤자 누가 공감해줄 수 있을까. 그러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 유명한 대형 맘카페에 '입성'했다. 신세계였다. 처음 임신 테스트기에 '흐린 두 줄'을 봤을 때 “이게 임신이 맞는걸까” 궁금했는데 검색창에 '흐린 두 줄'을 입력하자 수십, 수백 건의 '흐린 두 줄'을 본 사람들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 밑에 달린 댓글에서는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흐린 두 줄은 너무 초반에 테스트를 시도했기 때문"이라며 "2~3일 간격으로 몇 번 더 시도해서 점점 더 진해지면 임신이 확실하고 아니면 불량품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담을 댓글로 쓴 사람들도 많았다. 누군가는 "흐린 두 줄을 보고 임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병원에 가니 착상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테스트기를 확인한 후에는 최대한 병원에 늦게 가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조언은 나의 사례에 꼭 들어맞았다.



맘카페는 백과사전이다


임신이 되고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쌍둥이 임산부나 그 남편을 위한 대형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은 일반 맘카페에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수많은 '핵심 노하우'가 가득했다. 주변 단태아를 임신한 친구들 중에는 태아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쌍둥이 카페에서는 많은 이들이 태아보험 가입을 권했다. 쌍둥이일수록 조산아 출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쌍둥이 임산부는 가능하면 대학병원에서 출산하라고 조언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반 여성병원에서는 인큐베이터나 니큐 숫자가 부족해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산모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대학병원 다른 과에서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다. 좀 비싸고 불편해도 대학병원을 권하는 이유다.


출산 후 초기 육아를 도와줄 산후 도우미도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어서 찾았다. "쌍둥이 도우미 업체 어디가 좋을까요" "이용하신 분 후기 들려주세요" 등의 글만 올리면 댓글이 달린다. 물론 그 중에는 광고성 글도 많고 이용자의 댓글을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에서 선택지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아이를 낳은 직후에 필요한 물건들, 이를테면 “쌍둥이의 경우 대략 젖병을 몇 개나 사 놔야 하느냐”고  묻자 “젖병을 자주 삶을 자신이 없다면 10개 이상을 사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무려 16개의 젖병을 갖고 있다. 젖병을 반드시 삶아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두어개 사서 설거지 해서 사용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예약한 산후조리원에는 미숙아 분유가 따로 구비돼 있지 않아 미리 사놔야 한다는 사실도 맘카페를 통해 알았고, 그래서 1.9Kg으로 태어나 미숙아 분유를 먹어야 하는 둘째 아기는 산후조리원 첫 날 자신에게 맞는 분유를 먹을 수 있었다.


주변에 약을 먹어가며 임신을 준비한 사람도 없고(혹은 있지만 내가 모를 수도 있고), 쌍둥이를 가진 사람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임신 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맘카페에서 시보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몸이 힘들고 우울할 때 카페의 다른 임산부들의 글을 읽으며 위로받았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며.


맘충을 만드는 맘카페?


하지만 출산을 하고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원하는 정보는 '지역화' 한다. 대형 카페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 생겨나는 것. 이를테면 "00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생각인데 여기 어떤지 아시는 분계신가요"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00 아파트 인근 영어학원 좋은 데 추천해주세요"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런 정보는 당연히 해당 지역 거주자들이 더 잘 알 수밖에 없고, 그 중에서도 그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년배 엄마들이 정보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강남맘' '목동맘' '인천맘' '부산맘' '제주맘' 같은 지역 이름을 건 맘카페는 본격적으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삶의 공간이 된다. 나 역시 아파트에 있는 여러 어린이집 중 당장 내년에 쌍둥이들을 보낼 어린이집을 지역맘 카페를 통해 찾고 있다. 또한 살고 있는 동네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육아를 하는 엄마도 바람은 쐬야 하니까), 그 곳에 기저귀 거치대는 있는지, 수유실은 있는지를 알고 싶을 때 지역맘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맘카페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진상을 부린 '엄마 손님'이 맘카페에 글을 올려 가게를 망하게 만든다거나, 사교육을 조장한다거나, 지역 간 위화감을 만든다는 편견 때문이다. 최근 이슈가 된 '김포맘 사건'(어린이집 보육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이 생겨 문제가 커지면서 보육교사가 자살한 사건) 처럼 극단적이고 이해못할 일도 이 지역, 저 지역에서 벌어진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맘카페 뿐 아니라 어디에나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학교에 학교폭력이 난무한다고 학교를 없애자고 주장하지 않듯, 맘카페에 진상 엄마들이 많다는 게 맘카페를 비난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왜 그 시간에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카페에, 음식점에 혼자 나가 있는지에 주목하는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다.


맘카페는 엄마라는 직장의 휴게실이다


엄마들에게 맘카페는 어떤 공간일까. 하루종일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와 '집'이라는 폐쇄된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엄마들에게 맘카페는 직장 지하 1층에 있는 스타벅스와도 같다. 모르는 걸 물어보고, 알아내고, 하소연하고, 화낼 수 있는 곳이다. 남편이 회사에서 야근을 하면 엄마도 집에서 야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을 잘못 만나면 그 야근은 남편이 퇴근해서도 이어진다. 세상은 남편이 돈을 벌고 '어찌됐든 임신 중에는 돈을 벌기 어려운' 엄마가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하지만 효율적인게 늘 모두를 행복으로 이끄는 건 아니다. 엄마는 모두를 최선으로 이끄는 그 효율성때문에 자신이 일군 과거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맘카페는 엄마가 다녀야 하는 '가정'이라는 낯선 직장의 휴게 공간이다.  그곳에서 엄마는 익명에 기대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남편, 시댁, 친정의 내밀한 고민도 털어놓는다.


그 곳에서 엄마들이 모여 나누는 대화가 남편이나 시댁이라는 특정 집단을 비난한다고 해서 불편해 할 필요는 없다. 다들 직장 한 켠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번 달 성과급은 얼마나 나올지, 상사들은 왜 저렇게 엉망진창인지 지금도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테니.


친구들은 나를 카페 마니아라고 부른다. 정말 그렇다. 여행을 갈 때도, 임신당뇨 식단을 알아볼 때도, 아버지가 앓고 있는 신장병에 대해 알아볼 때도 카페는 가장 빠르게 경험적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앞으로 30년은 해야 할 육아생활에서 맘카페는 나의 휴게공간이자, 백과사전이자,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맘카페를 지켜야 한다. 육아를 하는 '나'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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