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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 Mar 18. 2021

막장이지 않아도 괜찮아.

[드라마] '슬기로운감빵생활'(2017)

('감방'이 표준어이나, 제목의 취지에 따라 본문에서도 '감빵'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어떤 창작물을 '막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너무 자극적이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상황들이 즐비한 작품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이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 된다"

그리고 "작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필요하기도 하진 않을까?..."

라며...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


그렇지만 자극이라고는 1 없는,

흔히 막장이라고치부되는 요소들이 하나도 없는 작품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면 사람들에게 더 각광받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더러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원호 감독, 이우정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큰 음모나 배신, 역경, 고난 기타 등등의 자극적이고 센 주제와 소재는 그들에게서 찾을 수 없다.

소소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 그냥 그렇게 서사가 진행돼도 계속 계속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게 그들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이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 100번은 본 것 같다.


그런데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조금 달랐다.

보기 싫은 건 아니지만 딱히 보고 싶지도 않았었던...

그래서 안 봤다가,

"그런 거 있지 않나? 꼭 밀린 숙제처럼.... 안 보자니 신경 쓰이는...."

그래서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6화까지도 내 구미를 확 잡아끄는 서사나 재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신원호, 이우정 조합인데 이렇게까지 흥미가 안 생긴다고?"를 반복하며 5화까지 본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이우정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극본 기획이었고 정보훈 작가의 작품이긴 하지만...

작가의 이름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들이 주는 메시지의 깊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그리는 캐릭터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 또 하나 달랐던 점이 있다면,

늘 착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따뜻한 이야기를 주로 했던 그들이, 대놓고 나쁜 놈들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전작들과 다르게, 선뜻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감빵 안에서는 조금 더 나쁘고, 덜 나쁜 이는 있어도 그들이 늘 지향했던 죄 한번 짓지 않고 살 것만 같은 착하디 착한 서민들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감빵 내에서 각종 실감 나는 욕설은 물론이고, 감빵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고와 범죄의 모습들도 더러 나온다. 또한 감빵생활을 해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생소한 감빵 은어와 다양한 감빵의 실생활들까지 덤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실제와 거의 비슷할 것만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심은 서부교도소 2상6방의 사람들이다.


범죄와 범죄자를 다루기에 진지하고 무서울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은 중화되고, 범죄나 범죄자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혐오나 매도를 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사연이 있었고, 캐릭터의 디테일들을 잘 잡아 오롯이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폭행 위험에 처한 여동생을 구하려, 몸 다툼을 벌이다 그 범인이 죽게 되자 유명 야구스타 김제혁(박해수)은 한순간에 야구선수에서 1년형을 선고받은 수감자가 된다.

그가 생활하게 된 서부교도소 2상6방에는 이미 살인, 절도, 사기, 횡령 등 죄목도 다양한 죄수들이 모여 있었다.

20년 넘게 살인으로 복역 중인 장기수(최무성).

군대 후임을 죽였다는 살인죄로 복역하게 된 유 대위(정해인).

각종 사기로 전과 10범의 별을 달고 있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돈이 없어 빵을 절도하다 교도소로 들어온 장발장(강승윤).

회사 횡령죄로 복역 중인 고박사(정민성). 등등....


그렇지만 가장 좋았던 캐릭터 중 하나는 뽕쟁이 헤롱이(이규형)였다.

헤롱이는 마약으로 수감되었지만, 그곳에서 마약을 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금단현상으로 항상 유약하며 아픈 그 지만, 끊임없이 주위 사람에게 깐족거림으로써 각 캐릭터들과의 케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어두울 수 있는 감빵 속 생활에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캐릭터를 뽑자면 교도관 팽 부장(정웅인)을 꼽고 싶다.

겉으로는 툴툴거리고, 수감자는 믿을게 못된다며 그들에게 욕을 달고 살지만, 자기가 맡은 죄수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한다.

또한 교도관과 죄수라는 신분의 간극 속에서도 범죄자들에 대해 가장 선입견이 없으며, 수감자들끼리는 물론이고 수감자와 교도관 사이에도 끈끈한 연대감을 만들게 했던 가장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감자와 감빵 생활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다르게 해 본 계기가 되었다.

(물론 범죄 미화나, 범죄자 옹호의 관점은 절대 아니다.

나 역시 그 감빵 속 죄수들의 죄는 죄고, 그것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좋게 보며 글을 쓰는 관점들은 지극히 극의 상황과 설정에 한정한다.)


이렇듯 신원호, 이우정의 작품이 좋은 이유는 어떤 캐릭터든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고 언제나 살아숨시며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다 할 톱스타를 기용하지 않고도 언제나 작품을 성공시켰다.

그냥 재미있는 상황 속에 현실감 있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계속적으로 부여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그들의 시청률 추이라고 생각한다.

첫방에 2-30%를 찍는 대박 드라마가 아니라...

2-3%로 시작해서 막방까지 계속 계속 시청률이 조금씩 올라 마지막 방송이 언제나 최고 시청률인,

아주 담백하고 진솔한 드라마들이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느낀다.

캐릭터가 주는 힘!

스토리가 주는 영향력!

이 두 개가 조화롭다면, 자극에 자극을 더한 흔히 말하는 '막장'이라는 것들보다도 힘이 있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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