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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 Jan 11. 2021

잊혀진기억 속엔, 잊고 싶었던 무언가가 존재한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2014)

(스포주의_)

기억과 기억상실을 다룬 영화는 많다.

우스갯소리지만 "기억상실이 없으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그럼에도 기억과 기억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건, 그것 만으로도 다양한 표현과 구성을 할 수 있고 또 다양한 장르로써 관객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기억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석원(정우성)은 최근 10년 치의 기억을 차 사고로 모두 잃는다.

그리고 그 잊혀진 기억을 받아들이며 10년간 바뀐 세상을 신기해하며 살아가는 동안, 처음 본 진영(김하늘)을 만나 조금은 밝고, 조금은 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은 돌아온다.

잊혀진 기억 속엔 진영과 자신은 권태기를 겪는 10년 차 부부였고, 그들의 아이는 차사고를 당해 죽는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석원 역시 차에 치였고, 그 사고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던 10년이라는 시간은 사라진다.

그렇게 기억을 상실한 채 살다, 다시 기억이 돌아오게 되면 자신의 전부라 믿었던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끊임없이 자신 스스로를 부정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영화는 기억이 완전히 돌아와 아이는 잃었지만 그래도 '석원과 진영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석원은 결국 죽는다'라는 새드엔딩도 그리지 않았다.

기억을 잃고 살다, 기억이 돌아오면 자신의 아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그러한 반복을 그리며 사는 석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석원을 지켜보는 진영의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어쩌면 기억상실을 멜로와 로맨스라는 장르로 녹여낸 평범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영화 시작부터 기억을 잃은 석원 앞에 나타난 진영이, 처음 만난 여자가 아닐 거라는 직감을 갖고 시작한 영화이기도 했다.

"둘은 분명 부부 거나 연인이었을 거야... 그리고 둘 사이에는 분명 큰 아픔이 있을 거고..."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나를 잊지 말아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신의 아픔을 기억상실이라는 방어기제 뒤에 숨겨 살지라도, 사랑하는 아이와 진영이에게는 본인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석원의 메시지 하나.

이기지 못할 슬픔을 억지로 이기지 말라며... 기억을 잃고 살더라도, 결국은 본인에게 다시 돌아오고 우린 결국 사랑할 거라며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진영의 메시지 하나.

이렇게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아픔이나 슬픔을 겪게 된다.


가볍게는 "내가 그런 일을 왜 했지?" 하는 이불 킥할 상황에서부터 기나긴 고통에 지쳐 기억상실에 걸려 다 잃고 싶을 만큼의 상황까지...

이 영화는 그러한 우리의 평범한 심리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기억 속엔, 분명 잊고 싶었던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아프고 힘든 기억을 뒤로하고 평범하고 싶다면 평범할 일상을 간절히 살아가고 싶을 만큼의...

이런 의미에서 기억상실은 앞으로도 계속 소재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잊는 것도, 잊히는 것도 모두 작위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평범한 우리에게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채 사는 삶 속에서라도 조금의 용기나 희망을 바라며, 잠시나마 행복을 꿈꿀 수 있는 판타지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로 시도되는 기억과 기억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보고 싶다.

그래서 잠시 내 눈앞의 현실은 뒤로한 채, 그 판타지 안으로 들어가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이 소재는 관객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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