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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 Sep 21. 2021

함께한 모든 순간순간이 슬기로웠다.

[드라마] '슬기로운의사생활 I,II' (2020-2021)

(스포주의_)


#사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리뷰하면서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은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찾게 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 감동, 깨달음을 줌으로써 여러 번 찾게 되는 작품이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나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찾게 되는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볼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던 작품이었지...

그렇지만 어떤 작품을 열 번, 스무 번 이상 보게 된다는 건 또 다른 의미인 것 같다.

그 작품이 내 인생을 흔들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하지만 절대로 평범치 않았고, 그 속에는 여러 특별한 의미와 감동을 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촘촘하게 빌드업이 잘되는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감독의 작품이 좋은 이유는 사람 사이, 장면 사이에 하나도 버릴게 없이 모든 것이 암시이자 복선이기 때문이다.

어느 대사, 어떤 행동 하나도 버릴게 없이 어떤 것에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 대표성을 익준(조정석)과 송화(전미도)의 러브라인에서 찾아보고 싶다.


대학시절부터 20여 년간의 친구였고 우정이었다.

그런 익준의 마음속에 송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시즌1의 마지막 회에서 익준은 송화에게 조심스레 고백한다.

그러나 시즌2의 첫 화에서 우리가 바랐던 결과와는 다르게 송화는 익준의 고백을 단칼에 거절한다.

무려 첫 화에서 말이다... 

"고백하지 마. 지금처럼 가장 친구로 지내고 싶어. 다시는 이런 거 물어보지 마."라며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익준은 송화에게 향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송화가 불편하지 않도록 언제나 정확하게 선을 지켰다.

그리고 친구인 듯 아닌 듯 언제나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 러브라인의 서사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송화와 익준은 대학시절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석형(김대명)이 송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버린 익준은 더 이상 송화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익준은 철저하게 송화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익준을 좋아하는 송화는 익준이의 생일에 밥을 함께 먹자고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지만 익준은 소개팅을 할 거라며 거절한다.

자신에게 어쩐지 철벽을 치는 익준에게 송화 역시 더 이상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_네이버


20여 년의 세월 동안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한 사랑을 우정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사랑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두 번의 시즌 내내 매우 천천히 그들만의 서사를 진행시켰다.

왜 그들이 친구로 20여 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마흔이 다 되어도 우리 눈에는 보이는 저 둘의 마음이 서로에게는 왜 보이지 않는지... 

보는 내내 답답했지만 대학 시절의 서사를 마지막에 보여줌으로써 결국은 이해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사랑이긴 했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아주 촘촘한 개연성이 생겼고, 이런 빌드업 때문에 20여 년 만에 완성된 이 사랑을 매우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또다시 느낀다. 

드라마의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_네이버

#우정


각 캐릭터들 간의 사랑도 중요하게 다뤘지만 이 작품에서 빠트릴 수 없는 건 우정이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매일을 붙어있고 20여 년을 함께한 사이이다 보니 살갑고 다정하기보단, 티격태격이 주이고 서로를 놀리고 장난치는 게 일상이다.


나는 그들의 우정을 '밥'을 항상 같이 먹는다는 설정에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물론 ppl을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지만... 다른 드라마들처럼 한 번도 그 장면들을 보면서 과하거나 넘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들 간의 관계성, 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먹깨비'라 불리는 송화와 준완(김준완)은 항상 밥에 진심이다.

그들에게 삶이자 전투와도 같은 '밥'이기에 남들은 신경 쓰지 않고 배부터 채우고 본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심+대단함'을 표하는 익준과,

친구들을 섬세하게 하나, 하나 다 챙기다가 늘 제대로 먹지 못하는 정원(유연석).

그렇게 정원이 참다 참다 폭발하는 날엔 석형(김대명)이 언제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천천히 좀 먹으라고 투덜대고, 빨리 좀 먹으라고 싸우면서도 늘 함께 앉아 밥을 먹으며 사는 이야기, 그들의 고민, 환자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편하게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이가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밥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으며, 그 좋은 음식들을 불편한 사람과 먹어야 하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렇게 싸우고 티격태격해도 20년 동안 밥을 함께 먹으며 내일도 또 붙어 앉아 먹을 그들을 생각하면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함께 급식 먹은 친구들이 나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자 아직도 함께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온 세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매우 든든하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함께 밥 먹는 씬들을 볼 때마다 더 애틋하고 행복하며,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참 좋았다.

그래서 이들의 우정에 내 친구들을 투영시켜 이 씬들이 더 빛이 나던 순간들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1, 2_네이버


# 의사, 환자, 그리고 그들만의 연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축으로는 각 과별로 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사실 여타의 의학드라마들은 의사들 간의 권력싸움 내지는 암투를 그린 작품들이 많았어서, 물론 그 나름의 재미가 있긴 했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읽기는 어려웠다.

사실 그런 장면들은 부수적인 장면들이었기에 그동안은 크게 신경 쓰며 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진짜 환자의 삶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굉장한 시간을 들여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애달픈 사연들에 감정이입을 하며 본 적이 여럿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좋았던 에피소드는,

시즌2-4화에서 보호자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가 안쓰러웠던 준완(정경호)이, SNS에 무지하지만 자신의 계정에 환자의 말동무가 되어달라는 피드를 올리는 장면이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워낙 위중한 환자의 케이스들을 다뤘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참 별거 아닌 에피소드 이긴 했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의사는 환자의 목숨만을 살리는 직업은 아니구나.'를 느꼈기 때문에 참 먹먹했던 것 같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_네이버


또한 정원(유연석)이 환자를 다루는 모든 장면들은 정말 따뜻했다.

율제병원 유일한 소아외과 교수인 정원은 소아전문병원을 짓는 것이 최종 꿈이자 '키다리 아저씨'라는 제도를 진행하면서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몰래 돕는 사람이며, 자신의 환자를 위해 당직의 당직의 당직도 불사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정원의 모습들 중 가장 '정원 그 자체였던' 에피소드로 시즌1-10화를 들고 싶다.

그날도 정원은 역시 밤에 아이들의 병실 하나하나를 방문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중엔 낮에 주사를 교체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던 영지가 "영지 오늘 주사 맞았다고." 이야기하며 정원에게 폭안긴다.

그런 정원의 눈에는 그 아이를 단순히 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내 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모든 감정이 들어있는 눈이었다.

정말 '정원스러운' 장면이었다.


이 작품의 대다수의 에피소드들에서 많이 느끼긴 했지만, 특히 이 두 에피소드를 통해서 의사와 환자의 사이가 단순히 환자의 목숨만을 살리는 기계적 관계로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연대감이 있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의사들에게 감사함을, 환자와 보호자에게선 용기와 담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_네이버


이 드라마는 하나하나 모든 것을 챙겼던 드라마였다.

그들의 우정, 그들의 사랑, 환자와 의사의 관계들을 전면에서 아주 잘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의 노고를 그리려 노력했다.

간호사들의 이야기, 인턴-레지던트의 삶, 응급의학과나 영상의학과 같이 환자와 직접적 접점은 없지만 정말 환자의 생명을 긴급하게 다루는 과들의 이야기까지.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새롭게 알고 느낀 것들이 참 많았다.

이처럼 새로운 것들을 많이 느끼고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었기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아주 바람직했던 의학드라마였음에 틀림이 없고, 모든 발자취들이 슬기로웠던 드라마였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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