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2008)
모두 하나쯤, 아니 하나 이상씩은 소위 인생 드라마라 불려지는 소중한 작품이 있을 것이다.
내 인생, 첫 인생 드라마가 뭘까 곱씹는다면 단연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오랜만에 다시 본 '그들의 사는 세상'을 통해 마음속 깊숙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었다.
큰 이야기의 줄거리는 방송사 드라마국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속에는 정지오(현빈)와 주준영(송혜교)이 있다.
30대 중반의 드라마국 PD인 지오는 완전 초대박을 치는 감독은 아니어도, 깊이 있고 진중한 드라마를 만들며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PD이다.
또한 삶에 대한 생각도 깊고 정의로우며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드라마에 대한 가치도 뚜렷해서 주위 동료들과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으며 후배들에겐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그는 뭐하나 특출 난 배경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사이가 별로 좋진 않지만 순수하고 소박한 엄마와는 무척 애틋하고 살갑게 지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삶의 시련은 있다.
오래된 옛 연인과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으로 나날이 피곤했고, 가족의 가난함이 그를 처량하게 만드는 날들도 여럿이었다.
준영은 방송가에서 막 주목받고 있는 새내기 감독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까칠한 구석도 많지만 사랑과 일에 솔직하며 열정적이다.
아직은 많이 서툴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드라마 PD로써 성공하고 싶은 욕심과 야망도 있다.
그런 준영의 삶에도 풍파는 있었다.
항상 놀음을 하는 엄마, 어렸을 때 바람도 피웠던 엄마. 그런 엄마와 사이가 좋을 리 없는 아빠.
강남의 빌딩을 가질 만큼 풍요로운 집에서 자란 그녀였지만 그런 걸로는 자신의 고통, 아픔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늘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고 피한다. 또한 여러 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던 애인과는 또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서로 아주 많이 다른 지오와 준영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고 대학시절 잠시 사귄 적이 있지만 헤어졌다.
회사에 입사해서 다시 만난 둘은 그럭저럭 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가 둘 사이의 옛 연인들이 정리된 후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들키고 싶지 않은 서로의 치부를 다 이야기할 정도로 아주 진솔하고 깊게 만나는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자신의 가난함, PD로써 한방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지오는 어느 날 갑자기 준영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런 지오의 속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준영은 지오에게 매달려도 보고, 헤어져보려고도 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캐릭터를 통해 멋지고 화려하며 근사함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배경적인 부분들이 있어야 드라마를 보는 재미도 있고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그렇게 특출 나고 멋진 배경을 활용하기보다는 그런 것들을 통해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강남에 빌딩이 몇 채나 있는 가정에서 자란 준영에게도 부모끼리의 갈등, 부모와 자식 간의 오해는 쉽게 봉합될 수 없었다. 그래서 맞닥뜨려 해결을 하기보다는 피함으로써 그 상처를 덮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참 나와 비슷하구나.' 혹은 '저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자기반성이 되었다.
지오 역시 마찬가지이다.
준영을 행복하게 해 줄 만큼의 부를 지니지 못함, 더 잘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장남으로써 집에 맘 놓고 쓸 수 있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자괴감.
이러한 감정들로 지배된 자신 옆에 이렇게 아름다운 준영이가 있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 그리고 자격지심에 하루아침에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 설정들을 통해 돈이 있어도, 없어도 행복의 유무와는 별개이며,
자신 내면의 깊숙한 상처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고단함 내지는 치졸함 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좋았다.
내 속의 옹졸한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를 주었기에.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노희경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팬이 되었고, 그의 작품 모두를 보게 되었다.
그의 글이 나에게 남다른 이유는,
글을 통해 인생을 공부할 수 있었고,
글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으며,
드라마의 글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혼자가 될 때가 있다.
친구도 필요 없고, 애인도 필요 없고 하늘 아래 나 혼자인 것처럼 철저히 외로울 때가 있다.
마치 나 혼자서만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깜깜한 밤.
누군가의 손에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못하는 것처럼.
철저히 혼자가 될 때가 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 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 일이다. 젠장."
드라마의 숱한 명대사가 있지만 특히 이 두 개를 정리하고 싶다.
철저히 혼자가 될 때, 하늘 아래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로울 때, 그럴 때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감히 잡히지 않는다.
나이가 점점 들면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를 잘 알고 잘 헤처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 그냥 서서 오롯이 그 소용돌이를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한 번 성장을 할 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너무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고 별날이며 별마음이고 별생각이다.
그래서 사는 게 고단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고단함에서 얻어지는 것들로 또 한 번을,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때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별일이고 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