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2021)
언젠가 드라마는 당대를 반영한다라는 글을 봤던 적이 있다.
드라마는 픽션이고 허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 글을 보면서 내 생각이 조금은 지협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드라마는 허구고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의미는 늘 진심이고 진짜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옴짤달싹 못한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전에 겪어내지 못했던 것들을 개척해 가면서 혹은 많은 양보와 인내를 하면서 각박하고 찌든 현실을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이런 시국에 '갯마을 차차차'가 우리에게 주는 당대성은 결국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알아주고 보듬어주며 치유해준다는 것이었다.
혜진(신민아)을 공진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날.
그녀의 구두 한 짝이 바닷속으로 떠내려가고 한 짝을 건져 돌려주며 홍반장(김선호)은 혜진에게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아주 주연스럽게 반말로 이야기를 주도한다.
친근함과 편안함을 주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두식은 이야기 하지만 동방예의지국...(꼰대스럽....)이자, 유교주의(꼰대x100...)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1화를 보는 내내 김선호의 연기를 보며 '저거 왜 아무한테나 계속 반말이야.' 중얼거리며 봤다.
러블리함의 대명사인 신민아가 연기한 윤혜진의 모습들도 썩 달가운 모습들은 아니었다.
쓸데없이 차갑고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철벽을 친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쉽게 다가갈 수도 없었고, 본인도 누군가에게 굳이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누구보다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긴 했어도 처음부터 썩 호감이 가는 캐릭터는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처음엔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불완전한 것들 투성이었다.
반말이 주는 묘한 기분 나쁨과, 예민함이 주는 까칠함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16회 내내 본방 사수했던 이유는 캐릭터들이 가진 입체적인 사연들에 마음이 동화되었고,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힘에 녹다운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청호시 공진동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이 이야기이다.
서로의 집 문턱이 닳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그런 이곳에 현실주의자이자 지극히 개인주의자, 성공이 목적이고 돈이 목표인 혜진은 치과를 개원한다.
그런 혜진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병으로 죽은 것에 대한 미련이 매우 많았고, 아빠가 새어머니와 재혼을 한 것을 마음 속 깊이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 날 감리 할머니가 이가 아프자 홍반장은 할머니를 데리고 윤치과를 찾는다.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감리씨는 그 돈을 어떻게 이를 하는데 쓰냐며 그냥 이를 뽑아달라고 한다.
혜진은 그런 감리 할머니의 태도에 화가 나 치료하지 않겠다며 가라고 한다.
서로에게 마음이 상하자 홍반장은 둘 사이에서 중재를 하려 혜진을 찾는다.
혜진에게 자기가 돈을 댈 테니 감리씨에게는 치과가 싸게 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혜진은 거절한다.
두식은 감리씨는 평생을 남을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해왔고, 큰돈을 자신에 쓸 줄 몰라서 그런다고 이야기하지만 혜진은 말한다.
"부모가 진짜 자식을 위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아프지 말고 오래 사는 거야.
그깟 돈 몇 푼 물려주려고 아픈 걸 참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챙기는 거라고. 알아?"
이 말에 나는 정말 무너졌다.
까칠하고 까탈스러운 혜진의 내면은 아직도 아팠던 엄마에 대한 아련함으로 가득 차 있구나.
어쩌면 그런 자신의 약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저렇게 겉으로 쌩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마음이 쓰린 장면이었다.
그리고 느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족이 제일 아프고 애달픈 것이구나.
그래서 가족에게 더 잘해야겠구나.라고 말이다.
공진에서 나고 자란 홍반장, 두식은 최저시급만 보장해 준다면 어떤 일이든 나서서 한다.
자신을 위해 서핑도 하고, 책도 보고, 술도 담그며, 비누도 만든다.
그렇게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살아갈 줄 아는 두식이다.
하지만 그런 두식에게도 사연은 있다.
두식은 자신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 모든 일에 참견하고 도와주는 이타적인 삶을 살지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탓이고 자신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스스로의 마음은 치유하지 못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그런 두식에게 용기를 주는 건 감리할머니였다.
"두식아. 내는 니 옆에 치과 선생님이 있는 거 참 좋다.
니, 사람들한테 잘하는 것도 좋지만 너를 위해 살아야 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해야 돼.
....
그간 동동거리며 사느라고 고생했다.
이제는 다리 쭉 펴고 편히 살아라."
두식의 깊은 내면 속 마음을 어루만져준 감리씨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상처 한번 받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각자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색의 일들을 겪으며 사는 우리에게 감리씨는 고작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라는 위로를 한다.
그 작은 위로에 너무나 큰 위안을 받는 시간이었다.
참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나에게 참 많은 볕을 주었지만 특히 이 두 회차는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큰일이 아니다.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 받는다.
그렇게 작은 이야기가 큰 힘을 주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 모든게 별거인 일들에 대해 별거 아니였다고 한 마디 툭 건냈던 드라마가 되어줬으니 이제 그만 두식이도, 혜진이도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따듯한 드라마를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두식의 삶은 고단했고,
혜진의 삶은 외로웠다.
공진의 바다가 그들을 나아지게 했고,
그곳의 사람들이 그들을 나아가게 했다.
따뜻했다는 표현으론 한참 모자란...
참으로 따수운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