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의찬미' (2018)
(스포주의_)
내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작품에서 만큼은 부디 아쉬움, 안타까움을 남기기보다는 행복으로써 판타지를 실현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그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이 작품은 대놓고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소중했고 먹먹했고 아름다웠다.
1921년.
우진(이종석)은 목포에서 최고 유지의 외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용히 살아왔다.
아버지가 우진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일본 유학 후, 아버지가 일군 회사를 물려받아 대대손손 부자로 살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자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문학, 글을 놓을 수 없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동경에서 만큼은 자신 내면 속에 있던 그 문학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말로 된 연극을 조선인들에게 보여주려 연극도 준비한다.
그런 와중에 노래가 더해지면 더 풍성한 극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가수를 영입하려 하고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있던 심덕(신혜선)을 소개받게 된다.
둘의 첫 만남은 그리 썩 유쾌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까칠하고 그리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극을 함께 준비하면서 심덕은 우진의 글과 말이 좋아졌고 점점 그에게 의지가 되어갔다.
우진 역시 그녀의 노래가 좋았고, 그렇게 천천히 심덕을 알아가며 미소 짓게 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진은 심덕에게 적정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성공적으로 연극을 올린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우진은 연극을 함께한 이들을 자신이 고향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려 한다.
잔뜩 기대에 부푼 심덕은 한껏 꾸미고 우진의 고향집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우진의 아내를 마주하게 된다.
매우 충격을 받은 심덕과 그러한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우진은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된다.
애초에 시작이랄 것도 없었기에 이별이란 단어를 쓰기도 뭣하지만.
심덕은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고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마주한 이별이었다.
시간은 더디지만 흘렀고 심덕은 조선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다.
언젠가 심덕이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오면, 자신이 떨지 않게 우진에게 봐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우진은 공연장 구석에서 심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 둘은 재회한다.
그리고 심덕은 깨닫는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부모와 뒷바라지해야 할 동생들이 있다는 현실에,
우진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런 사랑까지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애써 부정하며 그에게서 도망쳤다.
하지만 우진을 공연장 한편에서 보는 순간 깨닫는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우진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그냥 자신의 옆에만 있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것을.
우진 역시 깨닫는다.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한 일이라곤 아버지 밑에서 재산관리가 전부였다.
남들은 칼로 글로 조선의 독립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의 성화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렇게 깊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 살던 그에게 다시 재회한 심덕은 자신의 글을 유일하게 알아봐 주는 여인이자,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일본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우진은 먼저 일본으로 떠나 그곳에서 심덕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심덕 역시 조선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동생들의 유학비 마련을 위해 후원자에게 후원금을 받지만, 몸을 팔고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심덕의 공연은 모두 취소가 되며 유학비 마련이 어그러진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총독부 관리에게서 촉탁 가수가 되어 활동하라는 강요를 받게 되고 은밀하게 따로 만나자는 섬뜩한 제안까지 받는다.
거절을 할 시 심덕의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음에 그녀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우진은 일본에서 뒤늦게 그녀의 소문들에 대해 듣는다.
하지만 심덕을 향한 마음, 심덕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기에 흔들리지 않은 채 그녀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일본으로 찾아오고 정략결혼으로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한 사이였으니 단 한 번도 지아비의 마음을 바란 적은 없었지만 김 씨 집안의 며느리로서 자식의 도리까지 저버리진 말아달란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꿈과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외아들로서의 삶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스스로에게 답답함과 처절함을 겪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의 부채를 가진 채 둘은 일본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심덕은 이야기한다.
"아리시마 다케오 선생의 책, 그리고 죽음.
이제 알겠어요. 아리시마 다케오 선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선생은 더 이상 애쓰지 애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쉬고 싶었을 거예요.
아주 편안히.
나는 이제 좀 쉬고 싶어요. 정말이지, 너무도 지쳐버렸거든요.
근데 그럴 수가 없어요. 당신이 너무 그리울까 봐 두려워서."
우진은 말한다.
"그렇다면 쉬어도 돼요.
나는 선생이 삶으로부터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선생은 살고자 했던 겁니다.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볼 생각이에요. 설령 그 삶이 곧 생의 종말일지라도.
그러니 당신도 편히 쉬어요. 내 곁에서."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며칠을 보낸다.
우진은 그동안 쓰지 못했던 글들을 완성시키고 심덕은 마지막 노래를 녹음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 둘은 맘껏 사랑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그들은 자신의 짐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배의 갑판 위로 나간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춤을 춘다.
그게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우진과 심덕의 고단했던 삶에 비로소 희망이 보였다. 그 희망은 죽음이었다.
그들은 살고자 죽음에 이르렀고 죽음으로써 비로소 가장 나 다뤄질 수 있었다.
그곳에선 부디 헤어짐 없이 행복하시길.
지금껏 두 배우의 작품들을 보면 발랄하고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미된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그동안 이종석배우의 여러 작품 들을 본 바로는 언제나 정의감 있고 어떤 능력을 갖거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들이 주를 이뤘다.
그런 그의 연기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재미있고 즐거움이 되어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의찬미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프고 고뇌하고 절망적이며 비극적인 연기도 참 잘 어울린다.
힘을 빼고 무기력해 보이는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구나.
이럴 거면 좀 더 일찍 먹먹한 작품들도 해주지.
그랬다면 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 생각했을 텐데.'
그래서 이렇게 가끔.
자극적이지 않고 힘들이지 않은 연기나 작품을 볼 기회가 좋다.
배우나 작품의 원석, 원초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게 사의찬미라는 작품,
이종석, 신혜선 배우가 김우진, 윤심덕이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는 늘 작품의 해피엔딩을 꿈꾼다.
하지만 인생이 늘 해피엔딩이 아니듯,
새드엔딩이 해피엔딩을 넘어서는 작품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