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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 Feb 03. 2023

짙어지는 겨울 속에서, 책과 말이 주는 온기.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2019)

단이(이나영)는 동민(오의식) 과의 결혼식장에서 드레스를 입은 채 식장을 박차고 나갈 만큼 이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단이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결혼식장으로 단이를 돌려보낸 건 은호(이종석)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이혼으로 끝이 난 결혼생활이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잘나가는 마케터로서 승승장구하던 단이는 결혼, 출산과 동시에 철저히 경력단절이 되었고, 이제 와서 그런 그를 뽑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유학을 가 있는 딸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은호(이종석)는 도서출판 겨루의 편집장이자, 작가이자, 교수로 어린 나이부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단이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누나-동생 사이였고 한때, 단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누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용기 내 고백을 하거나 단이의 결혼까지는 차마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남녀 관계로는 연이 없던 둘이지만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사이인 건 여전했다.     


그날도 은호 몰래, 은호가 출근하는 시간에 그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일당을 챙기는 단이.

그리고 집도, 돈도 없는 단이는 은호 집 2층 다락방에 숨어 지내는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다 결심을 한다.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낮춰서라도 취업을 해야겠다고.

그렇게 은호네 출판사 경영지원팀에 면접을 보러 간다.

자신이 지원한 직무는 사회 초년생들이 하는 직무였고 은호는 그런 단이를 보며 놀랜다. 

면접장에서 단이를 끌고 나와 

“누나가 왜 이런 일을 해? 이건 진짜 대학 막 졸업하는 애들이 하는 일이고, 그동안 쌓아온 스펙과 학력이 아깝지도 않냐."라며 단호히 나무란다.
그러자 단이는 “그럼 나 계속 이렇게 살아? 80까지 산다 치면 내 인생 겨우 절반 왔는데 나 계속 이렇게 살아?”라며 입사만 되면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출판사 경영지원팀에 입사하게 된 단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단이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기로 한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만 멈춰 있었다. 
내가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림하고 애를 키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한테 주어진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게 내가 여기 있고 저 사람들이 저기 있는 이유다.”


하지만 소싯적 마케팅적으로 능력이 출중했던 단이는 회사 내에 있으면서 조금씩 출판 마케팅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마케팅 일을 조금씩 해보고 싶은 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고유선 이사님(김유미) 때문에 쉽게 마케팅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

이사님은 말했다.

“회사는 조직이잖아, 원칙이 있어야 해요.
자기 담당 부서가 있는데,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고, 전부 하고 싶은 일만 기웃거린다면 어떻게 될까? 회사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이는 말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노력해 보고 싶어요. 시키는 일만 하면 제가 이 회사에서 성장할 수가 없잖아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제가 여기에 와서 처음에 원한 건 경력을 쌓아서 다른 데로 옮기는 거였어요.
근데 지금은 그냥 책이 좋아요. 
이번에 안 건데 저도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좋은 책이니까 많이 팔고 싶고 많이 파는데 아이디어도 내고 싶고 그렇게 됐어요.
다시 처음부터 제 일부터 잘하겠습니다.”

그렇게 빛나지 않는 일부터, 나한테 주어진 일부터 다시 잘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단이었다.   


단이가 이혼을 했고, 자신의 집 2층에 몰래 숨어 살고 있단 걸 알게 된 은호는 단이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오갈 데 없는 단이에게 방을 내어주며 따뜻이 대해주고 회사에서도 은근한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러면서 20년째 몰래 감춰뒀던 단이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표현하기 시작한 은호였다.

처음에는 친동생 같은 은호를 남자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단이었지만, 결국은 은호에게 마음이 동하는 단이었다.

그렇게 그 둘은 연애를 시작했고, 일과 사랑 모두를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힘든 날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내 안에 뿌리를 박고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서 도려낼 수 없는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은호의 이름을 떠올렸다. 
기대고 싶었으나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그 이름을 떠올리기만 했다. 
은호는 내게 이름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다.”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아주 마음이 아플 데로 아프며 시작한다.

이혼과 동시에 집도 절도 없이 밖을 배회하는 단이.

아이의 유학비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온갖 군데에 면접이란 면접은 다 보지만 절대로 쉽게 경력단절 여성을 뽑아주지 않는 사회.

어느 날, 봤던 대기업 면접장에서 한 여성 임원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단이에게 얘기한다.

“내가 어떻게 버틴 직장인데, 이제야 기어 나오길 기어 나와!” 

경력단절이 되고 싶어 된 게 아닌 사람들에 대해 이 사회는 대놓고 차별과 비난을 하는 것을 보며 좌절 내지는 무기력이 몰려왔다.

누구나 살면서 취업 때문에 고민을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는데... 

나 역시도 그랬던 순간이 있었고...

그때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더더 마음이 쓰리며 아팠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낮춰서라도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단이를 보며 그 용기와 노력이 씁쓸하면서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합격입니다.” 그 한마디가 내겐 다시 세상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오랜 시간 팔 아프게 뻗고 있던 손을 누가 탁 잡아준 기분이다.

이 말이 무척이나 와닿았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책을 만들고 읽는 가치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준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중에서도 평소 열정도 노력도 없는 신입사원 오지율의 실수로, 자신이 첫 기획부터 출간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던 책 5천 부를 파쇄할 지경의 이른 대리 해린(정유진)의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1년 동안 만든 책이 종이가루가 되어버리는 꼴 저 못 봅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봐요. 
틀린 부분에 스티커 붙여서 나가는 거 정말 싫어요.
근데 한두 권도 아니고 5천 권을 어떻게 파쇄해요.”

그렇게 신입사원 오지율에게 5천 권 전부에 수정 스티커를 붙이게 하는 해린이었다.     

그리고 해린은 지율에게 말한다.

“오지율씨. 
나 만둣집 딸이야. 우리 부모님 만두 장사해. 
20년째 하는데 아직도 만두를 찌면 속이 터진 만두가 나와.
근데 그 터진 건 절대 손님들한테 안 줘, 나를 먹이지. 왜?
최선을 다해 만들고 온전한 것만 손님들한테 전달한다 그게 장사의 기본이거든.
근데 나는! 
1년 동안 발로 뛰고 주말까지 야근해서 만든 책! 엉망으로 독자들한테 내놓게 생겼어.
스티커 덕지덕지 붙여서.”

화가 날 대로 난 해린을 밖으로 내보내고 은호는 지율에게 얘기한다.

“출판사 근무 환경 힘든 건 겪어봐서 알죠?
그런데도 매년 수십 명이 여길 지원합니다.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 이유 그거 하나 때문에.
오지율씨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던 그 자리에 있어요.
책에 관심이 없으면 공부라도 해야죠.
어떤 책이든 맨 뒷장에 판권면이 있어요.
거기 여러 이름들이 있을 겁니다.
책을 만든 사람들...
1년 혹은 2년 어떨 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거기 이름이 안 적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책 한 권 내겠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근데 독자들은 그 책에 실망할 겁니다.
펼치자마자... 저자 소개가 틀린 허술한 출판사 책이니까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요.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슨 마음으로 여기에 왔는지.”     

나는 책에 꽤나 익숙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강제 아닌 강제적인 독서교육으로 인해 책을 보는 것도, 책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출판사가 책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들, 노력들을 보며 책을 만들고 읽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책, 가치 있는 책들이 이 세상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더더 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 그리고 모든 말과 글들은 따뜻했다.

추운 겨울의 꽁꽁 언 마음을 모두 녹여줄 만큼.

그래서 겨울의 한가운데서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속에서 모두가 따스히 이 겨울을 마무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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