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포레스트' (2018)
오래 준비한 시험도 떨어지고 연애도 잘 되지 않는 혜원(김태리)이었다.
오랜 타지 생활에 지쳤고, 편의접 폐기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는 생활에 이골이 난 혜원은 무작정 시골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그대로인 고향집이었다.
여전히 엄마가 없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오랜 시간 시골집을 비워둔 탓에 먹을 것 하나 없었다.
그래서 마당에 파묻힌 꽁꽁 언 배추를 하나 뽑아 배춧국을 끓였고, 남아있던 쌀로 밥을 지어 한 끼 뚝딱 해 먹었다.
그렇게도 평범한 한 끼가 얼어있던 혜원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과 소소한 시간들을 보내며 아주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혜원이었다.
그렇게 잠시 머무르려 했던 그곳에서 직접 기운 농작물로 맛있는 한 끼, 한 끼를 먹다 보니 겨울에서 시작했던 시골살이는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되었다.
그렇게 사계절을 보내며 혜원은 깨닫는다.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와, 이곳에서의 삶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그렇게 혜원은 다시 새로운 봄을 준비해 본다.
새싹이 피고 농작물이 새로이 자라나는 그곳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지만 하나도 얻은 것 없던 텅 비었던 혜원을 충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적적했던 겨울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봄의 시골은 번아웃이 올 정도로 지친 혜원을 다시 일으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은숙은 물었다.
“너 왜 고향에 내려왔어?”
혜원은 답한다.
“나 정말 배고파서 내려왔어.”
겨우 음식, 그리고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는 것에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는 게 조금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신경 쓸 것 없이 오직 시골살이, 하루하루의 음식 장만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느꼈으며,
지독한 고민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시작점 역시 바로 고향, 시골집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은 셈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지난 번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그곳이었다.
한여름.
땡볕에 밭에서 일을 하지 말라는 이장님의 재난알림문자를 받게 되는 그곳.
땡볕에서 밭일하지 말라는 재난문자가 그렇게 정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더워도 건강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러면서 혜원 역시 내면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쓸데없는 자존심 따윈 필요 없었다.
자신은 시험에 떨어지고 남자친구는 붙은 시험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던, 그리고 선뜻 남자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못 건네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생겼다.
그리고 그 즉시 남자친구에게 전화한다.
시험 붙은 거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그렇게 한여름에 통통히 마음이 살쪄가는 시간들을 겪고 있었다.
오이를 길게 채 썰어 만든 오이콩국수 한 사발과 함께 말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문소리)는 갖가지 제철 재료들로 혜원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줬다.
그렇게 건강한 음식들을 보고 맛보며 지냈던 어린 시절.
아빠는 돌아가셨어도 엄마와의 소소한 삶에 만족했다.
그렇게 혜원이 수능시험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즈음.
엄마는 자신의 삶,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떠난다며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사라졌다.
혜원은 도무지 엄마의 편지와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며칠만 지나면 자신이 먼저 이 집을 떠나 독립을 하려 했는데 엄마가 먼저 떠난 것에, 먼저 선수 치지 못한 것에 화가 났던 어린 혜원이었다.
엄마는 가을의 끝머리에서 곶감을 만들 준비를 하며 혜원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감을 주무르다 보면 겨울에는 진짜로 부드러운 곶감이 되거든?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가 있는 거야.”
늦가을, 이번엔 혜원이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손질을 하며 깨닫는다.
그때의 엄마의 말들을.
지독히도 힘들고 피곤한 어른의 삶을 살아본 혜원은 그제야 엄마의 편지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
겨울이 와야 진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재하는 혜원에게 묻는다.
“너 맨날 잠깐만 있다 가는 거야 하더니 언제 가는 거냐?”
혜원은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들을 얼버무리고 있는 거”
더 이상은 피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혜원은 다시 서울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외면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결국은 깨닫는다.
서울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양파는 모종 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정도 덮어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다."
이번엔 그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을... 고향에서
아주심기를 할 혜원이었다.
이 작품은 서울살이를 하던 혜원이 고향집으로 돌아와 4계절을 나는 이야기이다.
정말 그게 전부였던 영화다.
극적인 사건도, 그 흔한 인물 간의 갈등도 하나 없는.... 그렇지만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영화라 꼽히는 이유는 그냥 ‘힐링’ 그 자체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매번 정성을 들여 밥을 짓고, 더 이상 욕심 없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재료를 이용해서 한 끼 먹을 음식을 하는 것.
서울에서 나 혼자 먹기 위해 온갖 정성과 시간을 들이며 음식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게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인 한 끼 한 끼를 대접하다 보면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질 것 같다.
왜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돌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던 지난한 생체기와 상처 역시 어루만져질 수 있다.
그러면서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상처를 극복해 낸 혜원처럼 나 역시 언젠간, 어디 즈음에 아주심기를 할 날을 기다리며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