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
(스포주의/2편에 이어 계속/그리고 절대로 마지막)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역시 이진(남주혁)의 아픔과 성장이었다.
첫 화부터 이진이의 삶은 슬픔 그 자체였다.
22살의 어린 나이로 겪을 만한 일들은 아니었다.
그런 희망이 없던 그에게 나타난 희도(김태리)는 자극이었고, 응원이었다.
그리고 한 단계씩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며 성장했다.
또한 자신이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친애하는 희도를 사랑하고 응원했다.
그래서 그런 희도와의 관계에서도 뭐든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업을 가지면 다 해결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밥벌이가 가족의 빚을 갚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가치 충돌 내지는 이해충돌,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에 대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데 시간이 많이 드는 이진이었다.
이런 모습에서 내가 투영되기도 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세상과 스스로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며 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도 내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나름의 선, 내 나름의 윤리, 내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어떤 것과의 타협을 해야 할 때, 조금은 처절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때로는 자신의 가치를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기까지가 참 어려웠다.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중이다.
그래서 그랬다.
이진이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에 참 많이 이입됐고 흔들렸고 애달팠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들에 대해 그렇게도 많은 응원과 찬사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새 천년의 시작에서 조금은 달라지고 싶었던 희도였다.
그래서 용기 내 다가가 이진에게 먼저 한 첫 입맞춤이었다.
그런데 달라지고 싶었던 희도에게
이진은 "난 네 발톱의 멍이 다 나았는지, 그런 걸 더 걱정한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나 달라지고 싶었던 관계였는데...
발톱을 걱정한다니....
차라리 지구가 멸망하길 바라는 밤이었다.
양찬미 코치와 신재경 앵커는 어린 시절 선수와 취재원으로 만나 친구가 됐다.
잘 통했고 서로를 응원했다.
하지만 선수와 취재원의 관계가 우정을 뛰어넘진 못했다.
재경은 기자로써 양찬미 선수가 뇌물을 받았다는 첩보를 받고도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선수로서 본인의 사소한 말실수가 뇌물로 연결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어린 선수, 양찬미였다.
그렇게 그 둘은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둘의 관계를 알게 되며 기자로써 생각이 많아지는 이진이었다.
그게 희도여서 더 그랬다.
그렇게 희도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걷고 있던 중 눈앞에 보인 건 역시 희도였다.
희도는 그런 복잡한 마음의 이진을 보며 또다시 고백한다.
"너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내 사랑은 이래.
그러니까 안된다고 말하지 마."
호빵을 반반씩 나눠먹자는 희도의 의도를 몰랐던 이진.
센스 없다는 희도의 말에 자신은 야채호빵을 안 좋아한다고 응수하지만 희도에게 먹힐 리 없었다.
그렇게 팥 호빵 반을 삥 뜯긴... 아니 빼앗긴 이진이었다.
호빵 때문에 잠시 투탁이긴 했어도.
1시간이나 자기를 기다린 희도에게 자신이 하고 있던 목도리는 꼭 둘러줘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이진의 옷에 붙은 실밥을 떼어주려 한 희도.
그런데 이진은 자신에게 또다시 키스하려고 다가오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호빵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 상황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던 희도.
냅다 집으로 달려와 다이어리에 백이진 증오해...라는 말을 쓰려고 하지만
ㅈ... 좋아한다고.... 쓸 수밖에 없는 희도였다.
오늘도 결국 싸움에서 진 건 희도였다.
그 중요한 순간에 호빵으로 자신의 입을 막는 이진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이진 때문에 매우 당황하는 희도를 보면서,
이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텐션이지 싶었다.
그리고 백이진...
그렇게나 빠른 사람인지 지금껏 미처 몰랐다.
거의 선수급 스피드였다. 대단!!!!
'불가근불가원'
또 한 번 안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장 믿는 선배에게 들은 촌철살인의 말이었다.
그리고 집 골목에서 자신을 또다시 기다리고 있는 희도를 보았다.
희도는 요즘 자신이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자기 자신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자신의 찌질함을 매일 대면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은 도박을 했다고.
다 잃을 각오로 지금 이런 사랑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백이진 너도 다 잃을 각오로 선 똑바로 그으라고.
누구나 사랑을 할 때,
자기 자신의 찌질함을 맞닥뜨린다.
그건 비단 사랑뿐 아니라 나는 인간 자체가 원래 찌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찌질하지만 쿨함을 가장한 채 살아가는 존재라고.
희도 역시 그랬다.
찌질한게 사랑이라고.
다 잃을 각오로 하는 게 사랑이라고.
희도의 용기 있는 고백이 참으로 멋있었다.
그 시절,
나는 누군가에게 용기 있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3개월의 선수 자격정지 이후 첫 시합이자 태양고 소속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였다.
결과는.... 개인전 32강 탈락이었다.
선수는 시합을 뛰어야 한다고,
시합을 뛰지 않은 선수는 그만큼 경험치를 잃는다는 희도의 말이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을 탈락시킨 선수가 자신을 비꼬며 지적하는 것에 화를 내기보단,
침착하고 쿨하게 대응하는 희도를 보며 이진은 안심한다.
자신이 잘 못한 것에 좌절하고 실망하기보단,
자신의 부족한 점을 기록하며 다시 복기하는 희도여서 이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팀 동료 선수에게 '오빠'라고 부르고,
같이 술을 마시러 간다는 희도를 보며 질투심이 이글이글 타오르긴 했어도.
빵 속에 든 새로운 스티커를 보며 환호하는 그런 희도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을 이진이었다.
희도와 유림의 고등부 마지막 팀전 펜싱경기를 보도했다.
"결과는 빛났고,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 보도로 국장에게 철저하게 깨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고등부 펜싱경기를 그렇게나 감성적으로 보도했으니 기자로서 객관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보도로 희도는 행복했고 고마움을 전하러 이진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진에게 돌아온 말은 "멀어져 보자. 우리"라는 말이었다.
희도는 이런 사랑이든 저런 사랑이든 하지 않을 테니,
그냥 오늘 내린 이 첫눈을 같이 맞자고 한다.
희도의 눈물에 이진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함께 처음 맞는 눈 내리는 골목에서.
그 둘은 사랑을 다짐했다.
"너랑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테니 각오하라."는 이진의 말이 머물러 있는 순간이었다.
사랑과 일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든 이진이었다.
그게 스포츠 기자와 펜싱 선수였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이내 그런 혼란한 마음을 다잡고 여러 과정과 고민을 통해 이진은 조금은 성장했다.
그리고 결국엔 이런 사랑도 해보기로 했다.
용기 있는 나아감이었다.
그게 스물넷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일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결국엔 사랑을 얻었다.
그런데 자신의 일이 또다시 우정을 흔드는 일을 만들었다.
아빠가 낸 교통사고로 인해 생긴 사고 합의금과 치료비.
엄마가 당한 사기로 집은 돈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언제나 가족의 가난이 유림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지만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는 유림이었다
그래서 러시아로 귀화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얻게 된 많은 돈으로 가족의 빚을 갚고 가족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귀화 따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유림이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된 것도 이진이었다.
이진은 기자로써 보도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유림이었기 때문에 흔들렸다.
흔들리는 마음을 안은 채 기자로서 유림이를 찾아가지만,
차마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돌아 가려고 했는데...
유림이는
백이진 기자님. 준비한 말 하시죠.라는 말과 함께 이진을 붙잡는다.
그렇게 유림을 만나고 온 이진은 중혁 선배에게 말한다.
자신은 기자니까 내 편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불편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그 말만 되뇌는 밤이었다.
유림의 귀화 소식이 보도됐다.
그것도 이진이 제일 먼저였다.
귀화의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 보도였다.
희도는 자신의 엄마가 저런 보도를 전하는 뉴스의 앵커인 것도 열받는데,
저런 식으로 유림을 보도하는 이진에게도 무척이나 실망한다.
그래서 남의 비극 팔아서 장사하는 거, 적어도 제일 먼저는 하지 않았어야 됐다는 말을 이진에게 퍼부었다.
그런 말을 들은 이진은
자신이 곧 희도의 비극도 팔아 장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무치는 밤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될까 무서운 밤이었다.
처음부터 이진이가 걱정했던 점도 이런 거 였을 것이다.
자신의 직업이, 자신의 일이 사랑과 우정에 불행을 안겨주는 그런 일에 휘말리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의 일이,
자신의 펜과 말이 사랑과 우정에 상처를 주는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자신이 없어지는 날이었을 것이다.
속 사정은 있었다.
이진은 다 알면서도 보도할 것을 전제로 취재했다고 유림에게 솔직히 말한다.
그래서 미안하냐는 유림의 질문에,
이진은 미안하단 말은 너무 비겁하잖아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유림이 네가 귀화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면,
나머지는 내가 잘 보도하여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그럴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욕먹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그러니 그냥 돈 때문에 귀화하는 것으로 보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유림이었다.
또 어차피 보도될 내용이라면 이진이 제일 먼저 보도해 주길 바라기도 했다.
이진은 그런 유림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나빠지기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보도로 유림이가 매국노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보도로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많은 질타를 받고, 그런 식으로 유림이가 떠나는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목놓아 울었다.
유림이에 대한 미안함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여러 가지의 감정이 뒤 섞인 채.
그들이 함께 뛰놀던 터널에 주저앉아 그렇게 홀로 울었다.
그리고 희도는 그렇게 혼자 우는 이진을 보았다.
그리고 위로했다.
유림이가 그러는데...
우리가 펜싱을 하는 것처럼 취재를 하는 게 너의 일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조금은 서로를 알게 될 것만 같았던 눈물이었다.
그리고 깊게 서로를 이해하는 눈물이기도 했다.
'고유림 매국노'라는 터널에 쓰인 가슴 아픈 낙서를 함께 지우고 있었다.
세상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 투성에서.
그 정도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희도는 여자 친구로서 충고한다.
나는 너의 슬픔, 기쁨, 행복, 좌절 다 나눠가질 거야.
그러니까 힘들 때 숨지 말고 반드시 내 몫을 남겨놔.
네가 기대지 않으면 나 외로워.
이진보다 한 뼘쯤 더 커있는 희도였다.
그리고 저 말들이 이진에게 너무나 큰 용기를 주었다.
유림이 같은 일이 희도에게 벌어져도 기자로서 의무를 해야 한다는 게 견뎌지지 않는 이진이었다.
그래서 사회부로 부서를 옮겼다.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사건으로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진이었다.
희도 역시 어엿한 국가대표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둘 다 바빴기에 둘이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진이 바쁜 탓에 늘 쪼개 쓰는 데이트를 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둘이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무르익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함께 맞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사회부로 옮겨도 성장통은 여전히 있었다.
그 전처럼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아니었지만 무수히 버러지는 사건들에 대한 마음 쓰임은 여전했다.
그래도 전만큼 많이 힘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비록 술을 빌려서 이긴 해도 중혁 선배와의 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었고,
사랑하는 희도와의 마음 나눔으로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날도 크레인 사고 현장을 보도했다.
마음이 불편한 채 우두커니 그곳에 서있는 이진이었다.
그런 이진의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던 희도는 여느 때처럼 당장 달려가 위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색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같이 술을 마셔주는 방법을 택했다.
다시 술을 마시면 개라고 했던 희도 스스로의 다짐을 어기면서도,
그리고 네가 만나고 있는 건 개였다고 웃긴 농담을 하며 그렇게 소리 없는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큰하게 취한 희도는 이진에게 말한다.
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런 희도에게 이진은 모든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유림이가 러시아로 떠난 후,
유림이와 주고받던 메일이 어느 순간부터 뜸해졌다.
유림이는 더 이상 어떤 메일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마드리드 올림픽은 열렸다.
결승에서 희도와 유림은 한국과 러시아의 국기를 단 채 만났다.
그리고 둘은 최선을 다해 경기했다.
소중한 친구였지만 선의의 경쟁자로서 경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희도가 먼저 15점을 따 낸 순간.
둘은 서로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유림은 그동안 메일을 보내지 못했던 건... 이라며 말을 하려 하자,
희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인다.
"내가 겪었던 걸 너도 똑같이 겪었겠지."라는 말 한마디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숙명의 라이벌로써 서로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국민들의 응원.
서로에 대한 의도치 않은 기사로 인해 생긴 오해 아닌 오해.
협회에선 반드시 서로를 이겨야 한다는 부추김과 그로 인한 부담감.
그런 모든 것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낸 둘이었다
오직 그 자리에선,
그 둘만이 이겨낸 시간들과 알 것만 같은 감정들에 대한 하염없는 눈물과 위로만 있을 뿐이었다.
금메달을 딴 기념으로 엄마, 이진, 희도는 다 같이 식사를 하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이진은 결국 오지 못한다.
그런 희도의 모습을 본 엄마는.
한 사람은 계속 미안하고, 한 사람은 계속 체념하는 그런 관계가 정말 괜찮냐고 질문한다.
희도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계속 미안해하는 이진을 보며.
그리고 맨날 그런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보며.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자신 없는 감정을 마주하려던 찰나.
한밤중에 이진은 희도를 찾아와 줬다.
600일 기념으로 같이 여행을 가자며!
그렇게 자신 없어지려던 우리의 관계를,
다시 확신에 찬 우리의 관계로 만들었다.
그런 순간순간을 겪으며 연애했다.
그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연애였다.
600일 기념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빨간색 커플 캐리어까지 맞추고선.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터미널에서 이진을 기다리지만,
그날도 사건이 터졌다며 집으로 가있으라고 하는 이진이었다.
헛헛한 마음으로 혼자서 여행지에 간 희도.
그곳에 놓여있는 편지에는
"내 불행의 끝에 네가 기다리고 있던 거였으면 그 불행이 모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우리가 앞으로 함께할 날들에 비하면 600일은 너무 찰나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의 진심 가득한 편지에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혼자인 희도는 쓸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길로 갑자기 미국으로 파견을 떠나는 이진이었다.
이진이 미국으로 떠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희도가 이진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뉴스뿐이었고, 잠깐의 전화 통화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바쁜지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렇게라도 이진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참혹한 사건 현장에서 이진은 나날이 피폐 해저만 갔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곳에서 이진은 그런 그들을 붙잡고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해야 했다.
그게 자신의 일이었다.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고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스스로에 자신이 없어져갔다.
어쩌면 삶의 의지 같은 것도 잃고 지내는 시간들이었다.
그런 그곳에서 희도의 응원이 위로가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위로가 응원이 더 이상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희도였다.
그렇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사랑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새해가 되기 전엔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진은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뉴욕 특파원에 이진이 지원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
매년 새해가 되는 날.
둘만 아는 장소에 매년 오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새해로 바뀌던 날.
그곳에 희도는 혼자 서 있었다.
함께 하자던 그곳에 그렇게 혼자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이제 네가 나한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혼자서,
영원하자던 우리를 추억하는 새해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이진이 보도했던 어떤 이의 동료의 죽음에,
비록 동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애도해 줬다며 그게 다 기자님 덕이라는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또 매일 사람이 죽어가는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소방관은,
나는 이일을 선택했고 나는 내 일을 하고,
기자는 기자 일을 하는 것으로 모두의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말에 조금은 깨달음과 희망도 갖는다.
그렇게 그렇게 이진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뉴욕 특파원 발령이 난 이진.
여러 가지를 정리하러 한국에 들어왔고 그렇게 희도를 만난다.
그리고 희도는 말한다.
우리 중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우린 이렇게 멀어져 있다고.
더 이상 이 사랑이 힘이 되지 않는다고.
이진은 말한다.
정말 헤어질 수 있냐고.
희도는
우린 이미 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별을 이야기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그놈의 커플 요금제...
간신히 헤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커플 요금제는 두 사람 모두가 동의를 해야 해지가 가능하다나 뭐라나...
이렇게나 헤어지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이진을 불러 커플 요금제 해지했다.
그리고 같이 걷던 우리의 길을,
더 이상 발맞춰 함께 걷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길에서
그동안 마음속 깊이 가졌던 마음들을, 온갖 상처되는 말들로 내뱉기 시작한다.
내가 6개월을 생각할 동안, 우리 멀어져 갈 동안 넌 뭐 했냐는 말로 말이다.
이진은 말한다.
매일매일 사람들은 죽은 채로 실려 나오고 죽음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만나면서 솔직히 너의 응원이 힘에 부쳤다며...
너를 보고 싶었지만 보러 갈 수도 없고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보고 싶다는 감정은 사치 같았다며.
힘을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네가 응원해 주니까 그만큼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너한테 내 힘든 감정을 옮겨가면서 걱정시키는 것은 정말이지 할 수 없었다고.
희도는 말한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다 나눠 갖겠다고.
그런데 너는 그렇지 않았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는 거라고.
우리는 좋을 때만 사랑이고 힘들 땐 짐이라고.
이진의 말에 공감했다.
내 나쁜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 너무 싫었던... 그래서 숨을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그리고 희도의 생각을 이해했다.
좋을 때만 사랑이고, 힘들 땐 짐인 우리의 그런 마음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는 거라고.
그런 두 마음이 모두가 공감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다투던 중.
오토바이가 오자, 희도를 안쪽으로 당긴다.
그렇게 싸우고 있어도 희도만 보이고, 희도만 생각하는 이진이었다.
우린 선수 보호 거기까지가 좋았다고.
이런 사랑은 하면 안 된 거였다고 이야기하는 희도.
비약하지 말라며.
미국 가기 전까진 우리 아무 문제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이진이었다.
희도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며.
속보가 뜨면은 남편이 죽어도 못 오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설명해 주지 않으니까... 그런 모든 걸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기가 지금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며.
내 미래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 자길 사랑하긴 했냐는 희도의 질문에
이진은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다.
희도는 언젠 내가 뭘 함부로 해서 좋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고함을 치며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희도는 떠났고.
이진은 그런 희도를 붙잡지 못한 채 서서 바라본다.
뭘 함부로 해서 한없이 좋다던 그 말이.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상처가 되는 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서로에게 그렇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인상을 쓴 채 고함을 치며,
이진을 그 자리에 그냥 둔 채 혼자 오는 것으로.
정말이지 우리의 마지막을 그런 식으로 이별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은 흐르고,
희도와 이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어떤 훈련을 받아도 쓰러져본 적 없는 희도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수습기자의 고민을 들어주며 하는 조언이 이진 스스로를 향한 충고였을지라도 말이다.
"어떤 순간들은 늘 최선을 다하지만, 사실 뭐 모두 연습인 거지."라고 말이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짐 정리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희도가 잃어버린 일기장이 배송되었다.
그 일기장엔 모두 쓰여있었다.
내가 미국 가기 전까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시간들 속에서.
내가 희도 곁에 없던 희도의 시간들 속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희도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우리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얼마나 홀로 고군분투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 우리의 마지막을 정말 그렇게 보내려 한 게 아니라는 희도의 진심을 알게 되자,
더 이상 희도를 붙잡으면 안 되겠다고.
이젠 정말 희도를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진이 떠나는 날.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우리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나선 안된다."
"그런 말들로 널 보내선 안된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라는 이진.
술에 기대지 말고, 힘들면 상담받으라는 희도.
그런 일상적인 말을 주고받으며 희도의 운동화 끈이 풀려있는 것을 본다.
언제나처럼 희도가 다치지 않게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이진.
달려오는 오토바이로부터 멀어지게,
내리는 비를 맞지 않게,
언제나 이렇게 조용히 희도를 지켜줬던 이진이었다.
그런 이진을 보며.
"뛰어다니느라... 슬리퍼 신으면 화내니까."라는 말에
둘은 무너진다.
그렇게 꽃비 내리는 그날.
우리의 정류장에서.
서로를 품에 안은 채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우리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고.
그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희도와 이진은 일상을 살아냈다.
그렇게 이진은 뉴스 메인 앵커가 되었고,
희도는 3연패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앵커와 선수로 만났다.
서로의 응원이 닿을 때 다시 만나자던 약속을 지켰다.
돌고 돌아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한 둘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서로를 응원한 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일기장을 몇십 년 만에 다시 찾게 된 희도.
거기엔 이진의 마음이 담긴 편지도 있었다.
나도 그런 말들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 미안해.
라는 이진의 글에.
해묵었던 미안함과 후회가 모두 해소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 너무 오랫동안 이진이 혼자 세워둔 것 같아 미안했던 희도는.
이번엔 너 먼저 가라며 이진의 마지막을 잘 보내준다.
그렇게 정말로 이진과 희도는 이별을 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하지 못했던 성숙한 이별을 말이다.
사실 마지막 화는 본방을 본 이후로 다시 보진 않았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게 썩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 리뷰 때문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눈물바람이었다.
사실 14화의 엔딩에서 이진이 희도를 인터뷰하며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희도 선수."라는 멘트를 하는 것을 보며
놀라움과 설마.... 아니겠지...라는 마음 사이에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이별의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기에 남은 15화, 16화를 보는 것이 담담할 것만 같았었다.
동시에 굉장히 진보적인 드라마라고도 생각했다.
현실에서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에 비해 작품들은 늘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다루니까...
어쩌면 한 번쯤은 이런 결말이 나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희도와 이진 커플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이별을 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그것은 제작진의 매우 큰 용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이별의 시그널들을 애써 좋게 좋게 생각하며 16화를 본방사수했다.
그런데 정말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게.
이별을 내다볼 줄 알았음에도 16화를 보는 내내,
그 둘이 싸우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긴 했어도,
'결국엔 둘은 화해를 하고 다시 만나서 이루어질 거야.'
'김민채는 사실 백민채일거야.' 라며 끝까지 끝까지 기대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첫사랑과의 이별을 그렸다.
막상 정말 예뻤던 커플이 이루어지지 않는 걸 직접 보니 앞서 했던 생각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첫사랑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우니까 드라마를 보는 거지!!!!!
드라마에서까지 헤어지는 걸 보려면 뭐 하러 드라마가 존재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이진과 희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잠시 잠깐 아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매우 안타깝긴 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이 드라마가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들과
희도와 이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작품의 세계관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비록 첫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시간들 동안 이진과 희도는 서로에게 자양분이자 응원 그 자체였다.
또 사랑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그 둘만의 관계를 통해 많은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그 둘만이 겪어낸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서로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 둘이 이루어 낸 것들은 전부 첫 경험이자 첫 시작이었다.
그 시작에서 그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그래서 여타의 작품들처럼 이진과 희도가 평생토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를 그리지 않았어도.
열여덟, 스물둘에 처음 만난 그들이 그린 사랑, 응원, 믿음, 기원, 좌절, 어려움 등 많은 감정을 나누었고,
그러한 시간을 함께 한 추억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며.
그러한 것들이 발판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서로를 여전히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나는 이것 자체가 완전하고 완벽한 해피엔딩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열여덟, 스물둘.
슬럼프에 빠진 펜싱 선수와
IMF로 모든 것을 잃은 두 사람이 애초에 만나지 않았다면...
그게 진정한 비극이자 새드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순간들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PS. 하나)
나는 그동안 김태리 배우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나쁜 의미로써가 아니라...
어떤 배우가 좋아서 그 배우의 모든 필모를 일부러 찾아보는 것처럼,
김태리 배우의 모든 작품을 찾아다니며 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김태리 배우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태리 배우의 다른 작품도 좀 봐야겠다며 작품 목록을 봤는데.
어머나!!!
그동안 김태리 배우가 나온 거의 모든 작품을 다 본 것을 알게 되었다.
와.... 나... 김태리 배우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
PS. 둘)
내가 이 작품과 거리 조절에 실패한 이유는 이 드라마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슬픔을 너무 슬프게만, 기쁨을 너무 기쁘게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슬퍼도 금세 농담을 주고받는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성이 주는 행복이 좋았다.
그래서 엄청나게 슬퍼서 펑펑 울다가도 바로 다음 씬에서 소리를 지르며 까르르 웃었다.
그게 다였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나의 스물다섯, 누군가의 스물하나가 겪었을 많은 시행착오와
이진과 희도가 겪은 성장과 사랑에 대한 말과 생각을 최대한 잘 옮겨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내가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것과 별개이긴 하지만...
그 욕심을 최대한 잘 정제해 보고 싶었다.
슬픔과 기쁨을 잘 정제하며 살았던 이진과 희도처럼 말이다.
남주혁 배우가 어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요."
"다른 젊은 남자 배우들 인터뷰를 하면 이 질문엔 대개 남자들 잔뜩 나오는 누아르나 액션 영화 같은 답을 하는데. 남주혁은 좀 다르네요."
"여러 남자 배우분들이 남자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시니 그럼 멜로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하하, 왜 좋아하냐면 편안해요. 사람 사는 거 같아서요. 삶과 가까운 이야기가 좋아요."
그 또래의 남자 배우가 자신이 원톱인 타이틀롤,
그리고 다양한 장르를 욕심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사람 사는 것 같은 삶과 가까운 편한 이야기가 좋다는 말에.
참 욕심 없이(좋은 의미의) 자신만의 연기를 하려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찾아본 그의 필모그래피는 정말 그랬다.
눈이 부시게의 준하.
조제의 영석.
살짝 결이 다르긴 해도 스타트업에서의 도산.
어렵고 힘들고 남자의 색이 잔뜩 드러난 작품들은 아니었다.
또 지금 당장 피어날 듯한 푸릇한 새싹을 연기했다기보단,
그 새싹이 피기까지의 겨울.
그 겨울 속에서 겪었던 아픔.
그렇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나는 성장.
그런 애처로운 마음들을 연기해 내며 본인만의 청춘을 이미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저 인터뷰가 참 마음에 와닿았다.
꼭 액션이나 느와르가 아니어도...
이런 따스한 작품들에서 그는 이미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저런 편안한 작품들 속에서도.
남주혁만의 청춘,
남주혁만이 가지는 그 시절들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