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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e Jan 04. 2023

같이 걸을까

[예능] '같이 걸을까' (2018)

“저희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기 전에 만난, 그 마음 때문에 지금 다른 것 같아요.”


이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연히 주말 저녁에 가수들이 나와 한 아이를 돌보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다.

tv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 속에 들어가 있는 건지,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실존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매우 놀랄 정도로 어린아이 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렸던 거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린 아이돌 가수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좌충우돌 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아이는 전설적인 아이돌의 열렬한 팬이 된다.


그 이름은 ‘god’였고, 그 프로그램은 ‘god의 육아일기’였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연예인.

god의 스케줄표를 찾아 나오는 방송마다 찾아보며 녹화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god의 사진을 사고, god가 나온 잡지를 사며, god 앨범의 CD와 테이프를 모두 사야 직성에 풀려던 그게 다였던 어린 시절.

공개방송을 쫓아다니거나, 콘서트를 가보거나 뭐 그렇게 정열적이고 주체적이기엔 아주 어렸기에 그냥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대한의 덕질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딱 한 번, 인생에서 아주 열정적으로 아이돌 덕질을 해보았던 터라, 더는 여한이 없었는지 그 이후에는 특정 어떤 가수를 좋아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그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

누군가를 조건 없이 좋아해 본 마음 덕분인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계상 오빠의 탈퇴, 그리고 god가 7집까지 낸 후 지금부터는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던 그때.

언론에선 아주 자극적으로 ‘해체’라는 단어를 썼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냥 다시 볼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god는 그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조금 다른 힘을 가진 그룹이었으니까.

그들이 주는 음악적 메시지와 서사 그리고 육아일기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각각의 내면과 인성들을 보며 그냥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god는 그냥 어떤 날에 잠깐 다녀간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정이자 사랑이며 가족이니까.

그래서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함께할 거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god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들을 해내며 시간은 아주 많이 흘렀다.

그리고 2014년.

보란 듯이 g5d 완전체는 정규 8집 앨범 발매와 전국투어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때가 내 인생 첫 콘서트 관람이었다.

(콘서트 관람도 god가 처음이라니. 이 지긋지긋한 상관성ㅋㅋㅋ)

믿음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내 자리에서 내일을 하며 지냈을 뿐인데 어느 날, 어느 순간 god가 다시 와줬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콘서트도 앨범도 내 자리에서 내일을 하고 있다 보면 다시금 해주는 오빠들.

비록 내가 2022년 12월에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열린 콘서트 티켓팅엔 실패해서 못갔지만 각종 콘서트 영상들을 보며 콘서트를 다녀온 거나 다름없다는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요즘.

이렇게 갑자기 내가 god의 팬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콘서트 영상들을 보다가 갑자기 2018년도에 방송됐던 ‘같이 걸을까’라는 프로그램을 다시 보면서 또다시 느낀 게 있기 때문이다.


‘같이 걸을까’는 god 다섯 멤버가 2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야기이다.

2주 동안 미친 듯이 200여 키로를 걸으면서 그들끼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정말 저게 다인.

매일같이 걷고, 각종 부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또 걷고, 장난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데 3화의 계상 오빠의 인터뷰가 오늘에서야 더 마음에 박혔다.


“이게 어렸을 때같이 있던 사람들한테는 확실히 아무것도 없는 거야.

어떤 반응일지, 걱정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저희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기 전에 만난, 그 마음 때문에 지금 다른 것 같아요.

지금 태우가 어떤 위치에 있건, 쭌이형이 무엇을 하건.

저한텐 그냥 쭌이형이거든요. 태우도 마찬가지고요.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저를 기억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


이 세상에 나 잘났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혼자서는 많이 부딪히고 나약해진다.

나처럼 집에서 조용히 있음으로써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조차도 혼자 있는 것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 가족, 내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중요하고 크다.

어릴 때는 진짜 잘 몰랐던 것 같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를.


계상 오빠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건, 내가 어떻게 되기 전에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저 말들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 보통날들.


그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너무나 아련한 추억이지만 그것을 함께 나누고 기억할 수 있는 존재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 그 하나가 힘들고 지치는 순간순간들을 버티게 해준다.

그래서 나도 나 스스로에게 더 당당할 수 있게 노력하고싶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싶은 2023년의 시작이었다.


매 순간 치열함과 게으름 사이에서 살다가, 그래서 잠시 그들을 잊고 살다가도 god의 노래, god의 공연 소식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다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꽃 피는 것처럼.

내가 god에 대한 팬심으로 23년을 함께 걸은만큼,

2023년에는 내 주위 사람들과도 함께, 같이, 잘, 걷고 싶다.


이게 내가 2023년 새해의 시작에서 처음으로 담고 싶었던 말이다.



ps1. 잘 담고 싶었던 2023년의 첫 글인데, 아무래도 내 마음이 잘 안 담긴 것 같다. 필력은 역시 타고나고,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 느는 것 같다.


ps2. 내 나이 40대, 50대, 60대에는 god 콘서트 티켓 전쟁에서 승리할 날이 한 번은 오겠지!!! 란 욕망을 담아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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