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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29. 2024

사람,사람,사람…기가 빨린다?

인간관계(6)

이번주 만난 세 사람, 세 장면.


#1.

나를 좋아해 주는 분. 본인만의 스타일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 분. 나에게 "에너지가 좋다"고 하셨다.  

좋은 스승과 요가원을 찾아다니는 나에게 "내면을 먼저 깊게 들여다보라" 하셨다. 요가는 결국 홀로 하는 수련, 수행인데 왜 밖에서 답을 찾느냐는 것. 시선 전환이 됐다. 좋은 스승을 만날 때마다 단계식 성장을 했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혼자 수련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끝까지 들여다보라고 하셨다. 화가 나면 용서 명상을 듣고, 우울의 감정은 적당히 잘 덮어 잊고 지나가려는 편인데. 그걸 완전히, 끝까지 들여다보라는 것. 어떻게?라는 데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밥 먹으면서 하는 대화로,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어찌 보면 내 얘기를 꺼내 공감받기보다는 그분의 티칭 혹은 상담시간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같이 먹는 식사가 두 시간을 넘어가니 서서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소위 말하는 '기 빨린다'는 느낌. 가벼운 대화를 나누려 화제를 바꿔봤는데, 다시 진지하고 심오한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분은 얘기를 하고, 나는 주로 듣고.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가벼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2.

씩씩한 선배를 만났다. 회사 그만두시고 나서 오랜만인데. 아무래도 일도 잘하고 똑똑한 분이시라 내가 힘을 좀 얻고 싶어서 뵙자고 했다. 만나면 내 근황을 설명하고 회사 욕이나 왕창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 과정에 또다시 스트레스 '되새김' 같은 걸 하게 되는데, 어쩌나 했는데...기우가 됐다. "너 부서 옮겼다며? 들었다." 끝이었다. 내가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회사는 그런 거야. 그 상사란 사람은 뭐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니다 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씀. 그리고 최근 선배의 근황과 사는 얘기를 약간. 내가 요가 명상 공부를 하는 것도 말씀드렸는데 잘됐다, 하셨다. 딱히 심각할 거 없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나도 그냥 모든 게 쉬워진 기분이었다. 역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야 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뭘 좀 더 먹고 낮잠을 잤다.(평소에 낮잠은 거의 자지 않는데.)


#3.

요가수업이 끝나고. 도반의 표정이 좀 걸렸다. 평소 워낙 밝은 에너지 가득한 분이라 좀 다르다고 느꼈다. 고양이가 아프다고 했다. 타고난 신체 탓인 거 같다고는 하는데, 본인이 좀 더 잘 돌보지 않아서 그런가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이런... 고기를 먹자고 했다. 고기를 굽고, 이번주 내가 만난 사람들 얘기를 유쾌하게 전했다. 첫 장면에 대해, "파장이 안 맞네"로 바로 정리하셨다. 좋은 분인 건 알겠네만, 얘기를 듣고만 있으려니 당연히 기가 빨리지 않겠느냐고.(그분 눈치도 좀 없는 거 아니냐며) 차라리 그냥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요가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이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혹은 시간이 더 지나 그런 진지한 얘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했다. 두 번째 장면. 그 선배 역시, 주로 듣지 않았냐며... 그러니 (좀 다른 의미에서) 기가 빨려서 지친 거 아니었느냐 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나서 생각의 방향을 돌려보거나 세상 심플해지는 것도 좋은 거 같다는 말이 더해졌다.


"함께 대화할 때마다 제가 에너지를 얻고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말했다. 그분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파장이 맞는 사람인 거 같다며. 그리고 세상 감성적인 내가, 세상 이성적인 일을 하려니, 그 균형을 찾기 위해서 요가에 더 빠지는 거 아니냐고 했다. 이렇게 고기 구우며 "깔깔깔"이 2시간이 넘었다. 시간이 이렇게까지 지났을 줄야. '파장'과 '균형'이라는 단어가 남았다. 고양이 얘기는 넣어뒀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계속 생각이 났다고는 하셨다. (아마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슬픔을 잊어보려 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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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약속을 대폭 줄이고. 요가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약속을 잡고 만난다. 사람 만나는 게 귀찮은 일이기도 한데, 어찌 됐든 나는 'E'라서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 거 같긴 하다. 마치 세상으로 나를 꺼내주는 느낌이라.. (아마 E와 I가 반반쯤인 거 같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만나길 잘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느낀다. 다양하게 자극을 받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이 이렇게 다른 거구나, 새삼 새롭다. 그리고 이번주에 만난 다채로운 유형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왜 각각 다른 느낌이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결국 가장 편한 사람은 힘들이지 않아도 대화가 자연스러운, '파장'이 잘 맞는 그런 사람.  


퇴근 후 요가 가려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톡이 왔다. "약속 있으시냐"고. 후배의 '벙개' 요청이다.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맛난 거 먹자고 했다. 이번주는 좋은 사람들, 상냥한 사람들 매일을 채우고 있다.



스페인에서 본 석양. 나 홀로 여행 중 손에 꼽는, 좋은 느낌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러던 내가, 최근 들어서는 혼자 여행하는 걸 선호하지 않게 됐다. 이곳저곳 많이 가보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이 너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다. 이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인연을 만나서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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