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방에 책상을 놓고 컴퓨터를 설치하고 인터넷까지 연결했더니 확실히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줄었다. 더불어 핸드폰을 안 좋은 자세로 들여다보는 것도 줄어 마음에 든다. 하나 둘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깔고 즐겨 찾는 사이트도 정리하고 윈도우 최적화 등 사용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한다. 그러다가 문득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브리츠 블루투스 스피커를 새로 장만했지만 사무실보다 음향의 잔상도 심하고 잠기는 소리가 영 불편하다. 생각해 보니 메인보드의 사운드칩이 아무래도 구 버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진다. 간단한 인터넷 서핑이나 영화 감상을 위해 가져온 것이기에 15년에 구입했었던, 한동안 내버려 두었던 컴퓨터라 성능이 지금 것들보다 떨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드라이버를 일단 업데이트했지만 그다지 변하는 것은 없고 스피커의 문제일까 싶어 핸드폰 속의 음악들을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들으니 나름 괜찮은 소리를 뽑아낸다. 결국 사운드칩의 문제.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냥 이대로 만족하면서 사용하거나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하지만 음악 문제 때문에 보드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건 귀찮음과 더불어 돈의 낭비가 아닐까 싶어진다.
사운드 카드를 장만할까? 어차피 더 좋은 음질을 원한다면 별도의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나을 테니까. 지금이야 메인보드 안에 사운드칩이 함께 설치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별도로 사운드 카드를 달아야만 소리가 났었다. 사운드 블라스터 제품들. 일명 사블.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보니 여전히 내장 사운드 카드를 제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주로 외장 사운드 카드를 쓰는 모양이다.
단지 소리만 나게 하기 위해서는 몇 천 원짜리 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음악을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고 수십만 원의 제품들은 PC-Fi를 구축하는 것도 아닌데 부담스럽고 사운드 블라스터 G3라는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구매할까 싶다가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것은 어떨까? 젠하이저 GSX300도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지 그럴 거면 조금 더 써서 사블의 X AE-5 PLUS는?
그럼 스피커도 조금 더 괜찮은 것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써보니 블루투스가 편하긴 하니 다른 제품들을 좀 볼까? 역시 수십만 원은 아깝고 적당한 선에서 보면, 2.1채널이면 충분할 테고 캔스톤 NX201 BOSS? 브리츠 BR-1600BT? 아니면 조금 더 써서 1700BT? 캔스톤 제품이 궁금한데 더 상위 모델은 어떨까? 음, 거의 30만 원이군. 이건 좀 과하다 싶군. 그럼 어떤 것으로 결정하지?
요즘은 포터블 DAC도 인기 있던데, 그러면 산책할 때에도 더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어디 한 번 볼까? 아니지, 얼마나 걷는다고 차라리 이참에 예전부터 관심 있었던 PC-Fi 구축을 해볼까? 몇 백 쓰지 뭐. 아니야. 지난달에 예상 밖의 지출이 제법 있었고 이번 달에도 임플란트 및 크라운 치료도 받고 있는데 자중해야지. 이럴까? 저럴까? 와! 이건 정말 한 번 사고 싶은데...
욕심이라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저 10만 원 정도에서 적당하게 구입할까 했었던 마음이 정보를 찾아보면 볼수록 '이왕이면' 혹은 '이기회에'라는 유혹과 함께 더 좋은 제품들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니지. 이건 아니야. 사치야. 사치라니? 인생 뭐 있냐? 돈은 또 벌면 혹은 모으면 되잖아. 질러! 질러! 두 마음이 치열하게 치고받다가 잠잠해지면서 마침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소리에 대한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다. 좋은 음질의 음악이 주는 감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끝도 없는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지 않은 지출을 하게 유혹하는, 꽤 위험한 취미가 바로 오디오 관련 것들이다. 수천만 원 혹은 억 이상의 스피커뿐만 아니라 케이블 하나에 수백만 원을 선뜻 쓰게 만드는 그 설레는 유혹. 나는 비록 그러지 못하지만 그 마음 충분히 공감한다. 또 부러워한다.
단지 돈이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살아보니 없으면 없는 만큼 아끼면서 살면 살아지더라. 물론 기본적인 삶에 대한 지출조차 쉽지 않은 분들에게는 욕먹을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훌륭한 오디오 시스템을 장만하여 좋은 음악들을 듣는, 황홀한 몰입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늘 부러웠었다. 요즘은 내 벗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곤 한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난 서울을 떠날 것이다. 복잡하고 모든 것이 비싸기만 하고 날이 갈수록 인간성은 잃어버리면서 치열하게 죽자 살자 하는 이곳은 이제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싫다. 조금만 벗어나도 살만한 곳은 얼마든지 있지 않던가. 어차피 아이들도 없으니 교육 문제 때문에 머물 이유도 없다. 가능하면 조그마한 단독 주택에서 저렴하게나마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또 그런 환경이 가능해졌을 때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몰라 그 좋은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꾸준하게 클래식 음악들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팝이나 가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몸에 닭살이 돋는 그 황홀함은 오페라 아리아나 클래식 연주에서 주로 만났었기에 그 장르에 대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것도 구입하지 못했다. 그저 이건, 저건 어떨까? 즐거운 상상만 했을 뿐이다. 그전에 사무실의 좋은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먼저 아닐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