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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hbluee Dec 15. 2024

악몽 - 망자의 목소리

음산하고 서늘한 울림소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내 입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 순간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겨를조차 없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거대한 트럭이 돌진해 오는 순간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맹수의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먹잇감이 된 것처럼, 신경이 공포에 잡아먹혀 조금의 미동도 없는 상태가 되어 사고가 마취되어 버린다. 손 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이 세상의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이 나를 조여 온다. 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여져, 내 곁에 한 없이 떠도는 망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냐. 아니. 그것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모르겠다. 현재 존재하는 언어로 그 묵직한 두려움을 감히 설명하려 들다니. 

그건 불가능하다.


 꿈이라고 말하면 그래. 꿈이겠지.

 내 뇌의 착각이라 하면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환각과 환시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란 것이 정말로 있어서, 그 두 순간이 겹치는 시간이 존재한다면.

가끔 그 틈에서 비집고 나온 죽은 것이 산자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어젯밤 내 꿈이 바로 그런 순간일까.



 

사진: Unsplash의Adrian Dascal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천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누울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

 

내 무의식의 보고(寶庫), 꿈의 세계. 

잠이 든다는 건 의식이 현실에서 다른 어떤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느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어쩌면 다른 곳에서 내 영혼이 떠도는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좁은 방 안에 있었다.

 작은 옛날 텔레비전 안에 어린 내 아이가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가 청소를 한다며 그 좁다란 방에 비집고 들어와 계셨는데,

내 아이가 자꾸만 아주머니한테 버릇없이 소리를 친다.

"거기가 아냐! 뭔데! 나가!"

아주머니가 티비 안의 내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를 나무란다.

"안돼! 버릇없이 어른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더욱더 거침없이 날 선 말을 내뱉는다.

내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들을 내뱉는다.

"야! 나와! 거기가 아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무란다.

"ㅇㅇ아! 너! 그러면 안돼!"

내 입에서 아이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숙이며 묵묵히 청소를 하다가, 아이의 버릇없는 말투를 들을 때마다 어딘가 서늘한 눈빛을 하던 그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어서

"...ㅇㅇ아! ...ㅇㅇ 아! 너 ...ㅇㅇㅇ!!!!"

목소리가 너무 기괴하다. 분명 이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귀신을 흉내 내는 그런 목소리 따위가 아니다. 기계음이나 에코를 넣은 하울링 따위도 아니고, 음성 변조한 목소리도 아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야


 이건... 이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야.

갑자기 텔레비전의 화면이 일그러지며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화면 안에서는 회색빛 바탕에 하얀 손과 발이 가득히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기괴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며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왔다. 

사진: Unsplash의Tomasz Sroka


순간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내 의식이 차원을 넘나들듯이 그곳에서 빠져나와 육신으로 돌아오자, 안갯속에서 헤매는 듯한 혼란과, 컴컴한 두려움이 묵직하게 나를 찍어 눌렀다. 

 다시 잠이 들면 끝이야

본능적인 회피. 근원적인 두려움.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망자의 목소리.

죽은 자의 목소리가 이럴까? 




 너무 무서워서 잠이 든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있다가, 어스름한 새벽빛이 비치자, 숨 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이 조금 옅어지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제야 드디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으나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그저 웃어넘기며, 그저 그런 꿈 이야기는 그대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나빴다. 어떤 더러운 것에 오염이라도 된 듯 불쾌했다.

검은 타르같이 찐득한 것이 내 꿈에서 내 아이에게 옮겨 달라붙은 듯했다.


사진: Unsplash의Victoria Braiman


엄마 나 목이 너무 아파


 꿈에서 이름을 불리던 내 아이가 열이 나네. 감기에 걸린 듯했다.

 

아. 이것이 불길하고 찝찝하던 기분의 정체였을까!

  

문득, 내 꿈에 나온 티비속의 내 아이는 내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내 아이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존재가 그렇게 소리 지른 이유는 어쩌면, 그 음험한 것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내 아이에게 달라붙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로 말이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치 수호신 같은 존재를 돕지 못한 게 아닐까.


가끔, 이 세상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우연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다른 차원에서 오는 메시지 인지, 단순히 꿈일 뿐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들로 인해, 정말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나의 의식이 유영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대부분은 삶에 치여서, 깊이 사유할 없어 잊히지만, 가끔 일상에 이렇게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다른 차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우리는 그 틈새에서 조용히 관찰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사진: Unsplash의Steinar Engeland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어젯밤의 꿈과 

들어맞았던 불길한 느낌을 

언어로 정리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있나요?

깊은 겨울밤.

우연한 경험에 의지해서

소박한 호러단편 같은 글을 써보려던

제 의도가 적중해서

읽으시는 동안 

조금은 모골이 송연해지셨으면.

당신이 조금 무서우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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