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하고 서늘한 울림소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내 입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 순간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겨를조차 없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거대한 트럭이 돌진해 오는 순간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맹수의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먹잇감이 된 것처럼, 온 신경이 공포에 잡아먹혀 조금의 미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사고가 마취되어 버린다. 손 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이 세상의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이 나를 조여 온다. 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여져, 내 곁에 한 없이 떠도는 망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냐. 아니. 그것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모르겠다. 현재 존재하는 언어로 그 묵직한 두려움을 감히 설명하려 들다니.
그건 불가능하다.
꿈이라고 말하면 그래. 꿈이겠지.
내 뇌의 착각이라 하면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환각과 환시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란 것이 정말로 있어서, 그 두 순간이 겹치는 시간이 존재한다면.
가끔 그 틈에서 비집고 나온 죽은 것이 산자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어젯밤 내 꿈이 바로 그런 순간일까.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천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누울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
내 무의식의 보고(寶庫), 꿈의 세계.
잠이 든다는 건 의식이 현실에서 다른 어떤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느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어쩌면 다른 곳에서 내 영혼이 떠도는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좁은 방 안에 있었다.
작은 옛날 텔레비전 안에 어린 내 아이가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가 청소를 한다며 그 좁다란 방에 비집고 들어와 계셨는데,
내 아이가 자꾸만 아주머니한테 버릇없이 소리를 친다.
"거기가 아냐! 뭔데! 나가!"
아주머니가 티비 안의 내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를 나무란다.
"안돼! 버릇없이 어른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더욱더 거침없이 날 선 말을 내뱉는다.
내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들을 내뱉는다.
"야! 나와! 거기가 아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무란다.
"ㅇㅇ아! 너! 그러면 안돼!"
내 입에서 아이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숙이며 묵묵히 청소를 하다가, 아이의 버릇없는 말투를 들을 때마다 어딘가 서늘한 눈빛을 하던 그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어서
목소리가 너무 기괴하다. 분명 이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귀신을 흉내 내는 그런 목소리 따위가 아니다. 기계음이나 에코를 넣은 하울링 따위도 아니고, 음성 변조한 목소리도 아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야
이건... 이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야.
갑자기 텔레비전의 화면이 일그러지며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화면 안에서는 회색빛 바탕에 하얀 손과 발이 가득히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기괴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며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왔다.
순간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내 의식이 차원을 넘나들듯이 그곳에서 빠져나와 육신으로 돌아오자, 안갯속에서 헤매는 듯한 혼란과, 컴컴한 두려움이 묵직하게 나를 찍어 눌렀다.
다시 잠이 들면 끝이야
본능적인 회피. 근원적인 두려움.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망자의 목소리.
죽은 자의 목소리가 이럴까?
너무 무서워서 잠이 든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있다가, 어스름한 새벽빛이 비치자, 숨 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이 조금 옅어지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제야 드디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으나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그저 웃어넘기며, 그저 그런 꿈 이야기는 그대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나빴다. 어떤 더러운 것에 오염이라도 된 듯 불쾌했다.
검은 타르같이 찐득한 것이 내 꿈에서 내 아이에게 옮겨 달라붙은 듯했다.
엄마 나 목이 너무 아파
꿈에서 이름을 불리던 내 아이가 열이 나네. 감기에 걸린 듯했다.
아. 이것이 불길하고 찝찝하던 기분의 정체였을까!
문득, 내 꿈에 나온 티비속의 내 아이는 내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내 아이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존재가 그렇게 소리 지른 이유는 어쩌면, 그 음험한 것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내 아이에게 달라붙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로 말이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는 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치 수호신 같은 그 존재를 돕지 못한 게 아닐까.
가끔, 이 세상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우연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다른 차원에서 오는 메시지 인지, 단순히 꿈일 뿐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들로 인해, 정말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나의 의식이 유영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대부분은 삶에 치여서, 깊이 사유할 수 없어 잊히지만, 가끔 내 일상에 이렇게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다른 차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우리는 그 틈새에서 조용히 관찰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어젯밤의 꿈과
들어맞았던 불길한 느낌을
언어로 정리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있나요?
깊은 겨울밤.
우연한 경험에 의지해서
소박한 호러단편 같은 글을 써보려던
제 의도가 적중해서
읽으시는 동안
조금은 모골이 송연해지셨으면.
당신이 조금 무서우셨으면 좋겠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