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어느 날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니.
네 눈에 보이는 어른들은 엄청 크겠지.
네가 아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반발을 해보지만 매번 경험과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곤 하지.
너의 우주에서 어른들은 아마 무척 강한 거인 같겠지.
하지만 얘야, 내가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사실 어른들은 나이만 먹었어.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지나니 어른이 된 거야.
아직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있는데도 말이지.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된 거야.
엄마가 될 준비 같은 건 그 누구도 하지 않았을 거고
했다 한들, 각오와는 다른 일이 너무나도 많았을 거야.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이 강력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내 키와 비슷해진 네가 우뚝 하니 내 앞에 서 있는 거지.
있잖아. 내가 엄마잖아.
엄마가 흔들리면 네가 얼마나 두렵겠어?
나는 내가 왜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알겠거든?
네 앞에는 강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거든?
그래야 네가 나를 붙들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야.
너는 달라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사랑을 시험하곤 해.
사실 그런지 꽤 오래됐지.
그럴 때마다 가진 게 빈껍데기인 나는 얄팍한 내 마음의 중심을 애써 부여잡고
어떻게든 너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곤 했어.
내가 애를 쓰는 거 알고 있었니?
나는 이런 모습을 너한테 들키면 안 되잖아.
강한 거인이어야 하잖아.
하지만 얘야, 걷잡을 수 없는 너의 성장을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 혼란스러워서
정신없이 네가 던지는 비수를 받아내다 보니
많이 아프더라.
그렇지만 제 어미의 살을 파먹고 삶을 얻는 어떤 거미처럼
나도 내 엄마의 살을 파먹고 어른이 되었으니
내 살을 너에게 내어주어야 하지 않겠니?
그것이 순리이고 그래서 자연이 내게 너에 대한 사랑을 부여한 것이 아니겠니?
그래서 아파도 많이 참았거든
나 솔직히 많이 울었어
진짜 네가 아프게 찌르더라
그렇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가시투성이 너를 내가 지금 안아주어야 하는 시기잖아
'어른'스럽지 못하게도 아프니까 '악'소리가 나왔어
네가 듣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
내가 이래. 이렇게 미숙해. 한심하지.
꾹 참고 안아주다가 그만 네게 고백을 해버렸지 뭐니.
얘야, 어른도 상처를 입어.
얘야, 어른도 상처를 입는다고.
이 글은 네가 안 봤으면 좋겠어
사실 엄청 부끄럽거든
네가 어른이 되어서
예쁜 네 아이가 혹시 가시를 뿜어내거든
그때 읽어줄래?
너의 엄마도 너와 같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너를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어른도 상처 입는 거. 그거 너무 당연한 거야.
오래전 내 고백으로 입은 네 상처가
후에 네가 이 글을 읽음으로써
치유되기를 바란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