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나는 왜 쓸까.
글쓰기 수업 시작.
중학생 글쓰기 지도 수업의 첫날이었던 만큼,
청소년기의 발달과 이해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들이 읽어주시는 청소년기의 특성을 들으며 볼펜으로 줄을 치고 메모를 했다.
청소년들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가만히 듣다가,
그 자리에 '아이들'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나'를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을 들여다보며 성찰하는 시간이 바로 글쓰기의 본질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책상에 붙여놓은 모서리 보호대처럼
거칠어진 내 감정과 생각의 모서리에도 보호대를 붙여놓는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내게 스스로 밴드를 붙여주는 행위.
그렇게 나를 아끼고 보듬어주는 자기 치유로서의 글쓰기.
나를 치유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연민의 마음도 생겨난다.
그렇게 자꾸 바라보다 보면,
다가가서 그 사람의 모서리에도 보호대를 붙여놓고 싶어진다.
내 안을 비웠기에 남을 그 안에 들일 수 있다.
수업을 들으면서 끄적끄적, 적어내던 내 생각들이었다.
적으면서도 무언가 속이 따듯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 속이 차오르는 것을 느껴요.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더라고요."
자기소개 시간,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인상적인 한 마디라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쓸까.
쓰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나를 둘러싼 모든 흐름이 그 지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어떤 '계시' 같이 느껴졌었다.
그러면, 한번 글이라는 것을 써 볼까?
하는 장난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그 가벼움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무거워지면 한 발자국도 뗄 수 없기에)
글을 쓰면 쓸수록,
나의 내면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들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고,
나의 이야기가 타인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글은 그렇게, 나와 나를 분리시켰다.
글에 실려 떠나간 내 감정들, 기억들은
오로지 나 혼자가 관객인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오래된 필름영화가 되었다.
웃는 것도 나 홀로, 우는 것도 오롯이 홀로.
오직 나 혼자 앉아있었다.
어느 날 나는 조용했던 그 영화관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혼자 있던 그 영화관에 하나, 둘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 옆 빈자리에 앉아서,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고, 누군가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또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그들은 내 삶의 장면들 속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어,
자신만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나를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까지 치유가 되는 마법 같은 경험.
그래서 글쓰기는 '나눔'이기도 하다.
이 여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알 수는 없지만,
거칠고 힘든 여행이 아닌,
부드럽고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고요한 숲 속을 걷는 듯한 평온한 여행이길 바란다.
나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떠나보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함께 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나는 사랑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쓰기 수업 1일 차.
수업의 말미에서 한 장 빼곡히 적은 종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다.
다음 수업을 기대하며,
조용히 아이패드를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