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라는 이름의 족쇄
드라마는 은중과 상연의 만남을 크게 4 부분으로 나뉘었다.
초중등시절, 대학시절, 청년시절, 그리고 마지막.
나는 보는 내내 상연이 너무 싫었고, 은중이가 불쌍했다.
평온한 은중의 세상에 상연이가 들어오면서 은중이는 자기가 가진걸 송두리째 내다 바쳐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상연이가 안타깝고 불쌍했지만, 그보다 은중이가 더 불쌍했다.
초중등시절은 괜찮았다. 상연이의 시선에서 본 은중이는 얄미울만했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다정해 보였던 가정이지만, 속사정은 달랐고. 그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기에 은중이는 모두에게 경계를 풀게 했다. 게다가 상연의 엄마와는 '아버지를 어린 시절 잃은' 공통점까지도 있었다. 그래서 상연이 엄마는 은중이를 더욱더 가엾고 귀하게 대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식인 상연이에게는 엄격했다. 상연이 오빠는 상연과는 말도 잘 안 했지만, 은중이하고는 희희낙락하면서 카메라 이야기를 했다. 상연입장에서는 속상할 만하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내가 드라마에서 납득이 간 상연이의 마음은.
은중과 상연, 두 인물의 대비가 팽팽해야 긴장감을 갖고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저울은 한쪽으로 너무나 기울어져있다. 대학시절 내내 상연에게 온 마음을 다 내어주었던 은중이. 그 결과 사랑하는 남자 친구도 잃고, 친한 친구도 잃고. 과정과 결과 어디에서도 상연이가 친구로써 은중이를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정이란 게 저럴 수가 있나? 저건 우정도 뭣도 아니라는 생각만. 보는 내내 상연이의 태도가 너무 불쾌했다.
친구를 대하는 태도부터 엄마를 대하는 태도까지.
"이게 나야"
그래. 그게 상연이인 것 같았다.
사회물 먹은 상연이는 더 별로였다. 내가 은중이였으면 도망갔을 것 같다. 질기고 질긴 인연에 또 얽혀서 결국 말려들어 은중은 자신이 가진 것을 또 한 번 더 다 내놓아야 했다. 상연이가 뒤통수를 친 것이다. 보란 듯이. 은중이가 "꼴 보기 싫어서". 그래놓고 은중이 엄마한테 찾아가서는,
"저 나쁜 년이에요. 하지만 안아주세요."
이런 대사를 한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은중이 엄마가 내심 사정을 짐작하면서도 상연을 안아주었던 것이다.
아니. 왜?
난 이 부분도 별로 이해가 안 갔다. 은중이네 집안은 마음에 측은지심이 유전인 건지.
그냥 이 정도면 나는 이 드라마를 볼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도저히 상연이가 이해가 되지 않고, 걔한테 얽혀있는 은중이가 답답하기만 해졌다.
김상학(은 중의 연인)은 또 뭔 죄야. 저 두 사람한테 걸려가지고. 거미줄에 걸려서 인생 허비한 또 한 명의 희생자다.
(전생의 그는 참지 않았을 건데)(손명오였으니까)
'나쁜 년'과 너무 '착한 년'의 서사를 끝까지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은, '허무'였다. 드라마는 그 두 사람의 마지막을 엄청 아름답게 묘사했지만 나는 끝까지 상연의 이기심만 보였다.
기왕 저렇게 갈 거면 건물이라도 제대로 주고 가지.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을 본 나의 감상은 이랬다.
그냥 나와 맞지 않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연출과 대사, 연기력(배우님들 연기력 최고). 미술. 그 시절 분위기. 백 퍼센트 이해는 가지 않았던 은중과 상연의 감정선이었지만 그중 십 프로 정도의 공감이 꽤 귀한 부분이었기에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친한 친구 사이의 은근한 질투와 선망. 묘한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잘 표현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으니. 미우면서도 버릴 수 없는 상연이를 향한 마지막 은중이의 마음씀이 오히려 애달팠다.
그래. 결론적으로 끝끝내 상연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은중이었나 보다.
이번 생에서 만났지만 다음 생에서는 부디 서로 만나지 말기를. 고생했다 얘들아.
그나저나 대학시절은 중이가 들었던 검정 가방 어디 건지 왜 정보 안 나옴.
상연 역할을 맡은 배우 박지현 님 너무 예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