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둘째의 과학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다.
나는 둘째를 마중 나간다.
우리 꼬맹이는 룰루랄라 신이 났다.
수업도 즐거웠고, 친구들과 우르르 나오면서 한바탕 뛰었더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나 보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 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잠시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더니, 오소소 한 날씨에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서는, 이내
"알았어요, 엄마"
라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그래도 너는 여전히 기분이 좋다.
얼굴에 가득 큼지막한 미소를 띠고, 빨개진 볼도 눈치채지 못한 채, 입김을 하아 불어댄다.
"엄마, 엄마도 입김 불어봐요, 엄마, 지금 입김이 다 나와요!"
아직 가을인데, 느닷없이 훅 내려간 기온에, 하얀 입김이 불어 나오는 게 신기한가 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살아있음이 이런 건가 싶다. 파닥파닥 활어같이 튀어 오르는 생명력. 순진무구한 눈빛의 아이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 순간, 아파트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무언가 풀이 죽어 보인다. 분명히 웃고 있는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나이 먹어 보인다. 아, 나이. 먹었지. 먹었구나. 또 새삼 깨닫는다. 깨달아야 알아차린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그래서 아이가 이만큼 컸는데도, 나는 그 자리 그대로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너랑 엄마랑 얼마나 더 같이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음~~~ 백 년!!!"
"어우야... 백 년까지 되면 엄만 좀비 수준이다 야..."
손사래를 치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한 40년 더 살면 그래도 꽤 오래 산거겠지?"
둘째의 얼굴이 이내 변한다. 눈가가 찌그러진다. 입꼬리가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 같다.
조그마한 주먹에 힘을 꽉 주고, 양팔을 팔락거리며 말한다.
"아냐! 엄마! 백 년 살아야지 나랑 백 년 더!!"
"어우야.. 좀 봐줘.. 백 년은 ~~~"
속상한 아이의 외침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머릿속 한편으로는 40년이 새겨진다.
40년... 40년만 더 살면 되겠네.
그리고 부모님 생각이 난다. 부모님의 시간은 더 짧다. 내가 얼마나 더 살까를 헤아려 본다... 어떤 기분일까. 어떠한 준비가 될까. 바로 그곳, 종착지로 향하는 그 남은 시간. 잠시 나는 내 남은 시간을 뒤로 당겨, 부모님의 시간에 나의 촛점을 맞춰본다.
그래. 40년이 될 수도 있고,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는.
독서모임에 나와서 말했다.
"저, 요즘 그런 생각했어요. 40년. 40년만 더 버티고 살아내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했더니 사람들이 그런다.
"어우~ 40년이나 더 살라고요? 어우야~~~"
다 같이 합동 손사래를 치는 장관을 구경하고야 말았다.
아이돌 안무인 줄.
삶이란... 별 거 아닌지도.
그냥 사는 거지 뭐.
살다 보면 그냥 시간이 가 있지.
의미를 찾다 보면
우울해지다가도
개미처럼, 나비처럼, 그냥 사는 거지.
싶으면 또
그렇게 살아가지나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