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비한 환상과 그 대가.
나는 빵을 정말 좋아하지만, 베이글만큼은 늘 마음 밖에 있었다. 크림치즈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맛이 살아나는 빵, 속이 꽉 찬 샌드위치로 만들어야 존재감을 드러내는 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달랐다.
그곳의 베이글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쫄깃한 떡과 빵의 중간 질감.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그날 이후로 베이글은 런던 베이글 뮤지엄 것 아니면 못 먹게 되었다. 한두 시간 웨이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꾸러미 가득 사 와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 두었다. 얼렸다가 데워 먹어도, 황홀한 그 첫맛은 언제나 되살아났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좋아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브랜드의 스토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오너였던 이효정 씨. 자칭 '료'씨의 이야기.
그녀는, 중학교 때 '왕따' 였던 경험을 말한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워 그들을 정성껏 관찰했더니, 깊은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겼다고 했다. 그 감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20년 동안 패션업계에 종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방문한 런던의 어느 카페, 그 분위기와 아우라에 반해 또 한 번 그녀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본인이 좋아하는 세 단어를 엮어 이름을 지었고, 그녀의 그림과 색채로 매장을 가득 채웠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바로 그녀 그 자체였다.
'카페 레이어드'를 시작으로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아티스트 베이커리' 등 여러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그들의 스토리를 이어갔다. 그곳에 가서 나는 한국도 아니고 런던도 아닌 어느 기묘한 환상의 세계에 도착해 있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래, 나는 그 세상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랑했다. 아끼는 사람들도 모두 불러서 다 같이 그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그곳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갈 때, 어떤 청년은 과로로 죽어가고 있었다.
료씨가 방송과 유튜브 곳곳에 나와 자신의 공간, 가치관,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매료시킬 때, 더 많은 청년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어 드디어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던 그 시점. 한 청년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균열을 드러내고 무너져갔다. 내가 그렇게 열광하던 그 베이글은 '피 묻은 빵'이었다.
내가 내 사랑과 시간을 쏟아부었던 행복한 경험들도 모두 그 붉은 얼룩으로 바래졌다.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했던 나는 깊은 배신감에 휩싸였다.
어떠한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드러나는 족족 실망감뿐이다. 이제 더 이상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환상의 공간이 아니다. 3개월마다 새로 계약서를 체결하고,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희생 위에 세워진 향긋한 그곳이 풍기던 빵냄새는, 마치 시체 위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 더 진하게 익어버린 포도주의 냄새처럼 느껴진다.
냉동실에는 아직도 베이글이 하나 얼어있다.
데워 먹을까 하다가도, 어쩐지 비릿한 맛이 느껴질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나는 환상 속에서 열광했고, 그 대가를 받은 것일까.
마음 깊숙이 죄책감이 스며든다.
쓰디쓴 배신의 상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