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프로셔틀러

밥셔틀, 커피 셔틀을 기꺼이 해주는 이유.

by Wishbluee

2025년 12월 11일 오후 6시 43분


12월의 둘째 주.

큰애의 기말시험이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모처럼 밤늦게까지 불이 켜있는 아이의 방을 확인하며 잠든 어제.


시험기간임에도 우리 집애는 영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

마냥 해맑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점수를 이야기해 준다.

기대만큼 열심히 노력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듣고 있자니, 두 개의 마음이 내 속에서 부딪혀 온다.


'그냥 나도 같이 웃어넘길까'

'한 번쯤 긴장하게 주의를 줄까'


솔직히, 매번 생각할 틈도 없다. 듣자마자 보이는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줄 테니.

그러니 최대한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꺾어 돌리며, 웃으면서 넘어가는 쪽을 늘 선택하게 된다.


어차피 아이의 인생이다.

실망도 아이의 몫.

기쁨도 아이의 몫.

내가 자꾸만 그 기회를 뺏어가면 안 되지.


언젠가 들었던 유튜브 강의내용을 속으로 계속 계속 되뇌인다.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해 보며 어색하게 굳어버린 표정을 가다듬는다.

숨을 고르고 다시 웃으며 아이를 바라본다.

마음속에 가득한 속상함을 덜어내려 애를 쓰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물어본다.

"점심, 뭐 먹고 싶어? 엄마 화실 다녀오면서 그 카레집 들러서 포장해 올까?"

"응! 응!"


자, 점심셔틀. 당첨.

아이가 먼저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셔틀을 하기로 한다.


점심을 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사방에 큰애가 좋아하는 것들이 오늘따라 눈에 더욱더 들어온다.

'아. 식빵 좋아하는데.'

'커피도 사갈까'


"딸, 커피 마실래?"

"엇, 진짜? 나 그럼 00에서 초코라테..."


"응~~ 알았어~ 엄마가 사갈게~~"

이미 짐을 잔뜩 짊어졌다. 다리도 아프다. 게다가 그 커피집은 여기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머리와 입이 따로 논다.

거의 자동반사로 대답이 나온다.


낑낑거리며 이고 지고 들어가다가, 동네 친구를 만났다.

"자기야! 오늘 무슨, 잔치해? 짐이 산더미네!"

"응? 어머, 정말 그러네~"

"어깨고 손이고 남는 데가 없네. 이건 뭐야, 커피야?"

"아, 지금 큰애 시험기간인데, 먹고 싶대~"


'그렇게 무거워 보이나?'

고개를 들어 눈앞에 쇼윈도를 바라본다.

양팔에 비닐봉지, 쇼핑백...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터덜, 터덜 집으로 향한다.


"음~ 맛있어."

큰애가 초코라테를 한 입 마시면서 행복하게 웃는다.

'뭐, 이거면 됐지.'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홀짝홀짝 잘도 마시네. 진짜 맛있나 보다. 힘들었지만 잘 사 왔다'

하며 뒤돌아 서는 순간.


"엄마! 엄마도 한 입 마셔봐요! 진짜 맛있어요!"


큰애가 홀짝거리던 초코라테를 내게 디민다.

한입 훌쩍 마셔보니, 달고 느끼한 게 내 입맛은 영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머리와 입이 따로 논다.


"우와, 이래서 네가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그렇지? 진짜 맛있지?"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엄마가 좋다고 하니까 함박웃음을 짓네.'


이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셔틀을 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 프로 셔틀러다.


시험성적을 들으면 실망한 표정을 숨길 수 없지만,

내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또 그렇게 좋은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네.


지금 내가 할 일은 맛있는 거 먹이면서,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막막한 바다 같은 미래를 헤처 나가는 것은 아이의 일.


실망도, 기쁨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내 몫이 아님을 잊지 말자.


내 품 안의 자식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되뇌어보는 오늘이었다.


danilo-d-agostino-pcpSYoNt_g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Danilo D'Ago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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